1. 동화작가 정채봉의 그리운 스무 살 어머니

    ● 정채봉의 묘. 소설가 신흥래 ▲한국체육대학교 교수▲중앙일보 스포츠부장 ▲아시아경제 부국장 ▲이학박사 ▲시인

    정채봉이 쓴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은 2000년에 나온 시집『너를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에 실렸다.

    제목이 같은 시도 있다.

    ‘모래알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너’를 어머니로 고쳐 읽고 싶다.

    정채봉은 평생 어머니를 노래했다.

    글 곳곳에 어머니가 있다.

    제목과 본문에 ‘어머니’가 들어간 글 천지다.

    그의 글모두를 어머니에게 바쳤을지 모른다.

    「스무 살 어머니」라는, 같은 제목으로쓴 에세이도 두 편 있다.

    “우리 어머니가 하늘의 별로 돌아가신 나이가 바로 저스무 살이었던 것이다.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나를 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이 세상살이를 마치신 우리 어머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의얼굴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르곤 한다.

    바닷바람에 묻어오는 해송 타는내음. 고향의그 내음이어머니의모습아련히보이게 한 날을 기억한다.

    ” (「스무 살 어머니」중) 정채봉의 고향은 전남 여수와 순천의 중간쯤에 있는 승주군 해룡면 신성리다.

    그가 세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여동생을 낳고 얼마 안 있어 세상을떠나고 말았다.

    어린 남매를 남기고스무 살어머니는 차마 하늘로 갈 수없었던지, 비바람 속에서 며칠이나 심하게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무덤 주위를 지나다닐 수도 없었노라고, 훗날 어머니 묘를 이장할 때 묘지기가 그에게 말해주었다.

    (선안나) 그러니 어머니는 정채봉에게 사무치는이름이었으리라.정채봉은 세상 곳곳에서 어머니를찾아낸다.

    그의작품에서 보이는 어머니의 전형은 관세음보살(관음보살) 이다.

    모성과 관음사상의 합일이다.

    불교에서 보살이란 원력을 세우고 수행할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 봉사하기때문에 남녀의 구별이 필요 없다.

    초기에는 한결같이 남성으로 표현되었으나 후대에 여신 숭배사상이 불교에 유입되면서부터 점차 여성화된 듯하다.

    고대의 관음보살상은 남성적이고 이지적이며 용맹한 모습이었지만 후대에는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상호(相好) 가 많다.

    (미디어붓다) 정채봉은 천주교인이었고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였다.

    그러나 세포 깊숙이 어린 시절 훈습한 불교의향내가뱄다.

    어머니대신 정채봉을 기른 할머니는 손자를 데리고 집에서가까운 선암사에 자주 갔다.

    운명인 양, 정채봉은 불교 도량 동국대학교 국문과에진학해 문학을 익힌다.

    그가 천주교에 귀의한 계기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한다.

    다양한 종교체험때문이겠지만, 정채봉의 작품에서는관세음보살과 성모마리아의 이미지가 교차한다.

    그의걸작 가운데하나로 꼽히는 「오세암」은 정채봉을, 그의어머니를 남김없이 보여주는 토털 패키지다.

    설정스님이 추운 겨울날 포구에서만난 거지 남매 길손이와 감이를 절로 데려간다.

    길손이는 장난이 심해 젊은 스님들의 미움을 받는다.

    설정스님은 길손이만 데리고 관음암이라는 암자에 올라가 겨울을 지낸다.

    길손이는암자에 걸린 탱화 속 관음보살을 엄마라고 부르며하루하루를 보낸다.

    설정스님이 양식을 구하러 장터로 내려간 날, 엄동 속에눈이쏟아져길이끊긴다.

    눈이 녹은 뒤 스님이 감이와함께 관음암을 찾으니법당 문이소리없이 열리고 길손이가 맨발로 걸어 나온다.

    “엄마가 오셨어요. 배가 고프다하면 젖을주고 나랑 함께놀아 주었어요.” 탱화 주변에서 빛이 새어나오더니, 하얀 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소리도 없이나타나 길손이를 가만히품에안으며말한다.

    “이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얹히지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중략) 과연 이어린아이보다 진실한 사람이 어디에있겠느냐. 이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믿음을 나도 믿는데, 나의이 신앙은 동심” 이라고 했던 순수한 영혼에게 지구별은 우주의 폭풍우 한가운데 피신한 영혼의오세암이었을까. 정채봉의 글에는 담담하게 써내려간, 그러나 읽는 이의가슴에 사무치는 삶의 메타포가 곳곳에잠복했다.

    그래서읽는 사람의 가슴에깊고도 긴 울림을 새겨놓는다.

    바다, 어머니, 사랑으로 충만한 관세음보살. 이 또한 쓰라릴 수밖에없는 삶의 비의를 드러내는 거울일지 모른다.

    삶의 쓰라림은 끝내 죽음으로 귀결된다.

    어머니는 죽음을 전제로 정채봉의의식 속에 선명하므로. 「오세암」에서그랬듯,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이 정채봉의인생이었기에, 그 인생이 어머니의 죽음과 끊임없이동조했음도 분명하다.

    정채봉은「스무 살 어머니」에서소원한다.

    “엄마. 엄마께한 가지감사드릴 일이 있어요. 그것은 하얀 눈이 소복소복이 내리는 음력동짓달에 저를 낳아주신 것입니다.

    엄마,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엄마를 만나러그쪽 별로 가는 때도 눈 내리는 달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 정채봉은 1998년 간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회복했으나 재발해2001년 1월 9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나던 날에는 새벽부터 눈이 쉼 없이 내려거듭 쌓였다.

    정채봉은 순천 용수동천주교 묘지, 어머니 곁에 묻혔다.

    할머니의 묘도 멀지 않다.

    가파른 산비탈에 있는 그의 유택(幽宅) 은 길을 헤쳐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안에 있는 정채봉 문학관에 적으나마 작가의체취가 고여순례객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매년 10월, 순천시에서 주최하는 정채봉 문학상 시상식이열린다.

    가을이깊어갈 무렵이다.

    “엄마, 끝으로 하나 고백할게요. 엄마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는 해질무렵이라는 것입니다.

    엄마 나이 스물에돌아가신 산소 앞에 가서마흔이넘은나이로 가서 울고 온 적도 있으니까요. 엄마, 그쪽도 지금 낙엽 지는 가을인가 요☞ ” (「스무 살 어머니」중) 허진석 시인·한국체육대학교 교수
  2. 입력시간 : 2021-10-11 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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