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北 비핵화?…‘핵 포기 동의’ 유일 문서, ‘9·19 공동성명’ 주목
  • 한반도 평화 구축의 핵심은 ‘비핵화’ 실현…北김정은, ‘선대 유훈’이라며 대화 의지 천명
    전문가들, 9·19 공동성명 사례 활용 조언…“‘北 핵 폐기·美 북한 불침’ 이행만 하면 돼”
  • 안병용 기자 byahn@hankooki.com
  • 기사입력 2018-03-13 09:00:16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위기설’이 불거지던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남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4강의 정세가 '격변'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 대표단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 6개 항목으로 구성된 합의문을 갖고 귀환했다. 대북특사단은 남북한이 합의한 6개 합의사항을 한반도 주변4강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전파하며 평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남북한이 합의한 6개항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 4월 말 개최 △정상간 핫라인 설치 △북한의 비핵화 의지 천명 △북미대화 용의 △대화기간 전략도발 중단 △남측 태권도시범단·예술단 평양 방문 등이다.

그중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천명하면서 비핵화가 한반도 주변 정상들의 대화 핵심 의제로 집중 언급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남북합의문에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며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임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북미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비핵화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북한이 북미대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걸림돌을 스스로 제거했다는 점에서 세간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로 평가받는다.

문 대통령은 그간 북미대화 재개와 북한의 체제보장이 전제된 북핵 동결·폐기를 북핵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이에 비춰보면 남북합의 6개항은 문 대통령의 ‘비핵화 해법’ 테두리 내에서 진행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문 대통령이 대북특사단의 ‘투톱’으로 활약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을 미국과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가에 잇따라 보내 방북 결과를 설명토록 지시하는 모습 등은 한 단계씩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큰 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속도감 있게 비핵화 로드맵을 진행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비핵화 논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 이미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 과거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한은 물론이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총집결해 한반도 비핵화의 개념과 조건을 정립했던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주목된다.

이른바 ‘베이징 공동성명’으로도 불리는 9·19 공동성명은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6개국 대표가 중국 베이징에 모여 다자 협의를 통해 북한의 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대한 합의를 일궈낸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 지난 2005년 중국 베이징에서 9.19공동성명을 성사시킨 주역들이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중국의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부 차관.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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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공동성명, 북한의 ‘핵 포기와 NPT · IAEA 복귀’ 약속 담긴 문서

2005년 당시 국제사회는 2번에 걸친 북핵위기(1차, 1993년 3월·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2차, 2002년 10월·미 국무부가 북한의 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 가동 발표)를 겪은 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다자 협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고심은 깊었다. 결국 수차례의 협상을 거쳐 도출해낸 결과물이 9·19 공동성명이다.

6개국 대표가 다자 회담을 통해 일궈낸 9·19 공동성명은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라는 높은 평가 속에 비핵화 문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성공적인 합의로 평가받았다.

당시 9·19 공동성명의 주요 합의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자회담 목표는 평화적 방식으로 검증 가능한 비핵화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 △북한은 빠른 시일 내 NPT와 IAEA에 복귀 △미, 핵·재래식 무기로 북한 공격할 의사 없음 확인 △한국은 핵무기 반입·배치하지 않기로 한 약속 재확인 등이다.

또 △한·미는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다고 확인 △적당한 시점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조치 △중·일·한·러·미는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 △한국은 대북 200만kw의 전력 제공안 재확인 △한반도 평화체제 다룰 당사자간 포럼 발족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9.19 공동성명의 가장 큰 성과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NPT·IAEA(국제원자력기구)로 복귀한다는 약속이었다. 나머지 5개국은 그 대가로 미국의 북한 불침, 대북 경수로 제공 등 경제협력 및 지원을 공약했다. 서로 윈윈(win-win)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공동성명 채택으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얼마 뒤 미국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 조치시키면서 다시 냉각됐다. 북한의 강한 반발은 2006년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과 1차 핵실험 감행으로 이어지면서 9.19 공동성명은 사실상 폐기수순으로 접어들었다.

6자회담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인 2007년 2·13 합의와 2단계 조치인 2008년 10·3 합의 등의 성과로 이어지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6자회담은 결국 2008년 12월을 끝으로 좌초되면서 비핵화 논의는 10여년의 세월 동안 끊겼다. 그동안 북한은 추가적으로 5번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2018년 3월 현재까지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은 총 6번에 달한다.

  • 도널드 트럼프(좌측)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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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6자 회담, 9.19 공동성명 구도로 가는 것…이행만 하면 돼”


한반도 비핵화 논의는 보수 정권 9년을 지나 문재인 정부 출범 10개여 월 만에야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9·19 공동성명 사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북핵문제는 6자 회담으로 가면 2005년 9·19 공동성명 구도로 돌아가야 된다는 얘기가 된다”면서 “그렇게 되면 이미 합의가 된 걸 이행만 하면 되기 때문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비핵화 내지는 평화협정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선 “북한으로서는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라면서 “없는 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쓰겠다고 도로를 닦아놓고 그동안 쓰지 않았던 길을 다시 쓰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미국이 결심하기 나름”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빅터 차 美 CSIS 한국 석좌 “9·19 공동성명, ‘北 핵 폐기·美 북한 불침’ 확인 문서”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지난 7일(현지시간) 리사 콜린스 연구원과 함께 작성한 CSIS 소식지를 통해 “앞으로 모든 협상에서 2005년 6자 회담 공동성명의 원칙들을 재확인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차 석좌는 이어 “9·19 공동성명은 북한이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 폐기에 서면으로 동의한 유일한 문서이고 미국이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가장 최근의 문서”라면서 “이 합의에 참가한 당사국인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러시아도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원칙들을 재확인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세현 전 장관과 차 석좌의 이 같은 주문은 9·19 공동성명이 미국과 북한의 상호 신뢰를 담보시켜 줄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하고, 북한은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우려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서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 표명에 대해 “수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한 노력이 관련된 모든 당사자에 의해 펼쳐지고 있다”면서 “헛된 희망일지도 모르지만, 미국은 어느 방향이 됐든 열심히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9·19 공동성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헛된 희망’ 우려를 잠재우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초기지로 활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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