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관행이 평균이면 직위가 보장돼야 하나
  • 선관위의 판결대에 올라간 ‘저승사자’ 김기식 금감원장의 운명은
  • 안병용 기자 | 2018-04-16 11:16:20
  • 정치사회부 안병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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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7년 전 또렷이 남아 있는 기억 하나. 사비를 털어서라도 취재가 필요했던 기업체가 있었다. 비리 제보가 들어왔던 차였다. 거리가 멀었던 탓에 사전 취재가 필요했다. 홍보팀 직원과 두어 차례 확인 전화 절차를 거쳤다. ‘비리 몸통’과의 연락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 ‘귀가 쫑긋해지는 소식’이 휴대폰을 통해 전달돼 왔다.

해당 기업체의 홍보부서 임원으로부터 ‘일체의 취재비용’을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이 적힌 장문의 문자 메시지였다. 사실 그렇다. 기자에게 '취재 편의'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헌데 이 사람은, 아니 이 기업은 나에게 ‘취재 대상’이었다. 명백한 검증으로 혹독한 비판이 필요한 ‘비리의 대상’이 발 빠르게 손짓을 해온 그 의도가 궁금했다. 그의 문자 마지막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임원의 문자에는 ‘조건’이 언급돼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비리에 대해 내부 감사중이니, 시간을 두고 지켜봐 달라”고 부탁해왔다. 기자는 도덕적 감시자이지, 불의(不義)의 조력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황당함과 동시에 쓴 웃음이 났다. 그의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7년 전 황당함이 다시 치밀어 오른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수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외유성 출장’ 의혹 제기 이후, 청와대의 반박과 문재인 대통령의 해명이 매우 궁색하게 느껴진다. 타당성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국민을 설득하려는 행보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청와대는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의 기강을 다잡는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근거로 삼아 김기식 원장의 외유성 출장 의혹에 대해 ‘적법’이라는 입장을 수차례 강조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기자들과 매일같이 만나면서도 ‘해임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굳은 표정으로 되풀이하기에 급급했다.

앵무새 같은 해명만 일주일 째 되던 날, 공개적으로 물었다. ‘적법하다. 해임사유 없다’의 구체적 논리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춘추관에서 긴급 브리핑이 열린 뒤 청와대의 새로운 입장이 전해졌다. 이번엔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문 대통령의 친필이 대변인 손에 쥐어져 기자들에게 공개됐다.

문 대통령은 ‘김기식 논란’의 위법성을 따지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낸 질의사항을 토대로 위법 판정이 나오거나 국회의원 관행에 비춰 도덕성이 평균이하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모습을 목도하면서 앞서 느껴진 황당함과 유감은 의심과 실망의 심정으로 번졌다. 득보다 실이 큰 '눈가리고 아웅식' 대처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얼핏 정면돌파 카드를 꺼낸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헌데 ‘국회 관행’이라는 말에 ‘물타기’ 의도가 느껴진다. 국회 관행이 문제라면 수십 년간 대를 거쳐 온 외유성 출장 행태를 또 이어온 의원들을 질타하면 될 일이다. 잘못된 국회 관행에 비해 도덕성이 평균이라면 그대로 직위를 유지시키겠다는 말로 들리는 문 대통령의 해명은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지적을 들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듯 싶다. 7년 전 ‘조건 문자’로 우회돌파를 시도하려던 모기업 임원의 문자 메시지가 갑자기 머릿속을 스쳤다.

김 원장은 고강도 개혁 활동으로 재계와 금융계에선 ‘저승사자’로 불린다. 또렷이 새긴 강성 이미지로 막강 재벌들을 눈치보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실제 19대 국회의원 시절 탁월한 전문성과 집요함으로 국회 정무위원회를 혼자서 좌지우지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맹활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김 원장은 국회의원 임기 종료 시점이 되자 남기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듯 싶다. 그는 임기 막판 한 달 동안, 정무위 4년간의 성과와 쟁점을 정리하고 20대 국회를 위한 제언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록을 받은 자의 마지막 밥값이었다. 그의 개혁에 대한 절실함이 문 대통령의 금감원장 인사(人事)로 이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김 원장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있다. 재벌 개혁과 사회 정의를 누구보다 앞장서 외쳤던 ‘시민운동가 김기식’이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굳이 야당에서 줄곧 지적하는 ‘여성 인턴’과의 동행 출장 얘기까지는 꺼낼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문제의 핵심은 피감기관과 민간기업 돈으로 ‘황제 외유’를 다녀왔다는 의혹에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올바른 개혁 정신이 훼손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일각에선 이 모든 것이 저승사자의 칼춤에 기득권이 훼손될 것이 두려운 특정 세력의 노골적인 비토 움직임이 아닐까 라는 얘기도 공공연하게 들린다.

청와대와 문 대통령의 김기식 옹호도 이 같은 시각에 대한 반대급부 성격에 있는 듯 싶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냉정히 대응해야 한다. 이왕 법적 판단을 받기로 했으니 공언한대로 티끌 하나라도 위법사항이 적발될 경우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저승사자의 칼날을 더욱 시퍼렇게 만들려면 필수불가결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저승사자 타이틀이 특정인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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