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운 좋았던 초선, '3선' 타이틀 거머쥐다
  • [6·13 당선자] '시민운동가·인권변호사' 박원순이 뚝심의 '행정가' 되기까지
  • 안병용 기자 byahn@hankooki.com
  • 기사입력 2018-06-13 19:59:32
  •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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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한국 6·13특별취재팀 안병용 기자] 서울특별시의 민심은 박원순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향후 미래 4년을 책임질 수장은 ‘또 다시’ 박원순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6·13 지방선거를 통해 3선에 다다랐다.

3선의 경륜은 남다르게 평가받는다. 초선·재선을 경험하며 쌓아온 실력을 조금 더 능수능란하게 펼칠 것이란 기대감에서 오는 게 바로 3선이라는 이름의 ‘선수(選數)’다. 이를 국회에선 흔히 ‘중진(重鎭)’이라 부른다.

3선에 이른 박원순 당선자는 이제 ‘중진 시장’이 됐다. 최초의 3선 서울시장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지금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그가 서울시청에 첫 발을 들이는 과정을 살펴보면 도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할 뻔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2011년 오세훈 당시 시장이 ‘무상급식 논란’으로 중도 사퇴했을 때만 하더라도 차기 서울시장직은 당시 ‘개혁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안철수 후보가 따 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격적으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박 당선자는 안철수 후보와 훗날 ‘아름다운 양보’라 불리는 단일화 과정을 거쳐 범야권 단일 후보로 민선 5기 ‘박원순 시정’을 여는데 성공했다.

보궐선거 당시 박 당선자는 5%의 지지율에 불과했다. 안 후보의 5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였다. 그러나 박 당선자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난관을 이겨냈다.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해낸 ‘서울시장 박원순’은 단순히 ‘운 좋은’ 선거 당선자가 아니다. 그의 삶 속에서 겹겹이 쌓여온 ‘도전 DNA’가 만들어낸 뚝심의 히어로다.

서울대학교 1학년이던 1975년 유신체제 반대 학생 운동과 관련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제명당한 뒤 복학이 가능해진 이후에도 돌아가지고 않고, 단국대학교에 입학해 졸업한 이력에서 그의 ‘근성’을 엿볼 수 있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제12기를 수료하고 검사가 됐지만, 1년여 만에 검사복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해 전두환 군사 정권에 맞서 싸운 그의 모습에선 ‘정의와 민주’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변호사이자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은 그의 경력에서는 ‘희생’의 덕목을 찾아볼 수 있다.

근성과 희생, 정의와 민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박 당선자는 지난 7년 동안 인권·사람·나눔·공유를 위한 정책을 펴왔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박 당선자의 지난 7년 시정에 서울 시민 1000만 명은 ‘3선 당선’으로 응답했다.

이제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도 아닌 ‘행정가’인 그가 서울의 미래 4년에 대해 응답할 차례다. 박 당선자가 시민의 열망을 받들어 서울의 내일을 제대로 만들어나갈지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울여보자.

◇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 약력

-1956년 경남 창녕생
-경기고, 서울대 사회과학계열 1년 제적(1975), 단국대 사학과졸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대구지검검사, 변호사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제35대·36대 서울특별시장
-막사이사이상, 불교인권상, 심산상, 단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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