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전대협 세대 이후, 민주당의 '브랜드'는?
  • 안병용 기자 byahn@hankooki.com
  • 기사입력 2019-05-21 11:53:54
  • 정치사회부 안병용 기자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20대 총선을 1년여 앞둔 2015년 7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들은 당내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운동권 출신)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날선 칼질은 86그룹의 수장으로 불리던 이인영 의원으로 향했다. 당시 이동학 혁신위원은 적진 출마를 요구하며 이른바 ‘86 전상서’를 공개했고, 임미애 혁신위원은 86그룹이 ‘숙주정치’에 머물고 있다며 운동권 동지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뒤, 흥미로운 상황이 연출됐다. 세대교체의 대상으로 지목됐던 이 의원이 오히려 신진세력을 키워야 할 원내대표로 선출되는 반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세대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요 근래 몇 년 간 민주당에는 전대협 시대라 할 만큼 전대협 출신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인영(56세) 원내대표와 임종석(54세)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상호(58세) 전 원내대표 등 한때 광장에서 “민주 쟁취! 독재 타도!”를 외치던 ‘구국의 강철대오’ 멤버들이 고스란히 문재인정부 출범(2017년 5월)을 전후해 당과 청와대의 얼굴로 나섰던 것이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젊은피 수혈론’을 내세우며 전대협 세대를 전면에 내세운 이후 약 20년 만에 그들이 정치 주역으로 거듭난 셈이다.

세상을 바꾼다면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전대협 세대는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30년의 지난 세월동안 이들 역시 기득권 세력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됐다. 민주당 내에서 그간 별다른 인적쇄신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물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들의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가치가 매몰돼선 결코 안 된다. 지난 미국 대선 때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이는 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74세)보다 고령인 버니 샌더스(79세) 상원 의원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자칫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없고 민생 현장에서 서민과 진정성 있게 호흡할 수 없는 정치인들이 또다시 공천장을 받아드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우려되기도 한다. 매번 국회가 마감되고 새로운 의회가 개회될 때마다 지역 곳곳에서 유권자들의 이 같은 볼멘소리가 터지는 데는 아마도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다. ‘유노동 저임금’ 서민들이 ‘무노동 고임금’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냉소적 시선을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특히 총선을 앞둔 민주당이 반드시 고민해야 할 사안은 전대협 세대 이후를 상징할 새로운 ‘브랜드’가 없다는 사실이다.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며 젊은 개혁 세력으로서 철옹성 같던 동교동계를 뒤흔들었던 이른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은 각각 정계은퇴와 탈당을 선언하며 민주당과의 인연을 스스로 끊었다.

노무현정부 이후 보수 성향 지역에서 함께 도백(道伯)이 되며 주목받았던 ‘노무현의 왼팔·오른팔’ 쌍두마차로 꼽히던 안희정·이광재는 둘다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자체가 쉽지 않은 처지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이 지난 3일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줄이는 내용으로 잠정 확정한 ‘공천룰’(현역 최대 20% 감점·신인 최고 25% 가산점)은 정치 신인들이 크게 반길만한 내용이다. 선거 때마다 인지도를 기반으로 한 현역 의원들의 돌려막기식 공천이 이어졌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정치 시장의 문호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제도권 정치의 노력은 가히 혁신적 발상의 대전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현 국회의원 중 45세 이하는 10명으로 3%에 불과하고, 30대 의원은 고작 2명, 20대는 아예 없는 점을 감안하면 ‘공천 혁명’이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민주당으로선, 아니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내년 총선은 오래 묵혀뒀던 86그룹의 능력을 보여줄 귀중한 시험대가 아닐 수 없다. 총선 승리를 통해 문재인정부 집권 하반기 동력을 마련하면서, 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이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묵직한 소임이다.

新(신)동력을 여전히 원내에서만 살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임기 초반부터 새로운 가치에 대한 희망을 찾아서 제시해야 한다. 관건은 2040 정치 꿈나무들의 발굴과 성장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로 모아질 것이다.

민주당의 위기는 단순히 지지율 하락이 아닌 ‘늙어가는 정치에 따른 고루한 가치’라는 점을 올해 68세인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잘 알고 있는 듯 싶다. 이해찬 대표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한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정치와 시대의 호흡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총선을 앞둔 이 대표의 속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뿐이다. 이 대표의 통찰과 혜안이 이인영 원내대표를 통해 발현됨으로써 대한민국 정치지형의 진정한 업그레이드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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