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한일 과거사 갈등 톺아보기(上)-독일·일본의 엇갈린 행보
  • 獨, 진정성 있는 배상·사과·전범 처벌로 ‘유럽 평화·협력’ 토대 마련
    日, 배상 아닌 보상· 야스쿠니 참배· 역사왜곡 등 ‘동북아 갈등’ 유발
  • 김동용 기자  dy0728@hankooki.com
  • 기사입력 2019-12-09 07:30:13
  • 사진=연합뉴스, 구성=강영임 기자 equinox@hankooki.com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한일 과거사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 등 어두운 역사를 꾸준히 왜곡해왔던 일본정부는 최근에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반발해 불합리한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단행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데일리한국은 상중하 3회 연재를 통해 가해자로서 책임 의식이 결여된 ‘현재의 일본’을 있게 한 원인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연재 순서>

(上) 독일·일본의 엇갈린 행보

(中) 독일·일본, 왜 달랐나

(下) 반성하지 않는 일본

[데일리한국 김동용 기자] 독일은 과거의 만행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는 일본을 비판할 때, 자주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는 국가 중 하나다. 양국 모두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추축국(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과 싸웠던 국가들이 형성한 국제 동맹)의 핵심국가로, 전후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일궈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각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라는 점도 닮은 꼴이다. 하지만 양국은 ‘전후 책임’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 교수인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대변동(2019, 김영사)’에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전후 책임의 차이에 따른 상반된 결과를 지적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해 유럽에서 화해와 평화·협력의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군사적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패전의 책임을 자국의 ‘일부 정치인들의 배신’으로 돌렸다. 또한 자신들도 결과적으로 ‘전쟁의 피해자’라고 주장했으며, 이 과정에서 희대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해 유대인을 혐오하는 나치스 파시즘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유럽은 다시 한번 화염에 휩싸였다. 최근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제9조)의 개정을 추진하는 등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의 ‘아베 정부’가 눈여겨봐야 할 역사의 흐름이다.

독일은 ‘나치’의 만행을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유럽 국가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과거를 부인하고 치부를 은폐하려는 노력에만 급급한 나머지 아시아 주변국들과 불편한 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까지 서슴지 않은 일본과 달리, 독일은 1999년 12월 17일 나치 하에서 강제노역 했던 피해자들에게 공개 사과를 했으며, 이에 대한 배상이 늦어진 부분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했다.

독일은 ‘희생자가 생존하는 한 배상한다’는 원칙에 따라 1952년 이후 총 800억 달러(약 93조원)를 홀로코스트(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피해자들에게 지급해왔다. 지난 7월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사망하더라도 그 배우자에게 9개월간 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홀로코스트 사회복지서비스기금도 내년에는 5억 2400만 유로(약 7000억 원) 늘리기로 했다.

또한 나치의 박해로 고통받은 83개국 6만명에게 매달 지급되는 보상연금도 현재 446유로(약 59만원)에서 내년에는 513유로, 2021년에는 580 유로로 인상된다.

  • 그래픽=강영임 기자 equinox@hankooki.com
독일의 반성은 물적 배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95년 1월 27일에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50주년을 맞아 이날을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날’로 공식지정했으며, 역사교과서 개정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역대 지도자들의 반성과 사죄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1970년 12월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었으며, 1998년 헬무트 콜 총리는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 유대인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다. 앙겔라 메르켈 현(現) 총리는 2013년 8월 뮌헨 인근에 위치한 다하우 추모관(과거 유대인 강제수용소)을 방문해 “독일인 대다수가 당시 대학살에 눈을 감았다.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참회했다.

일본은 1952년 2월 제1차 한일회담 본회의를 시작으로 한국과의 국교정상화와 전후 보상 문제를 논의했고, 1965년 6월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청구권 협정)’을 체결했다.

당초 일본은 오히려 식민지배 당시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남겨놓고 간 사유재산의 역(逆)청구권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식민지배 배상’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으나, 미국의 압박이 영향을 미쳐 협상 논의가 진전됐다.

당시 미국은 소련 및 중국 등 공산진영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까지 자신들의 진영에 포함시켜 ‘이념적 방어라인’을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경제발전이 시급했으나, 이를 위해 수립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할 자금이 없었다.

  • 도쿄 국제군사재판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의 차이점. 구성=강영임 기자 equinox@hankooki.com
결국 일본은 ‘경제협력 목적’으로 8억 달러(무상 3억 달러, 유상 차관 2억 달러, 상업 차관 3억 달러)를 한국에 투자했다. 다만 한국 측이 원했던 배상(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의 성격이 아닌,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독립축하금’, 즉 보상의 형식이었다. 이는 일본이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찬탈했던 과정이 합법적이었다는 주장을 토대로 한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공물 봉납도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내 ‘극우세력의 성지’로 추앙받는 야스쿠니 신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동아시아 및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상대로 침략 전쟁을 벌인 전범들을 신으로 추모하고 있는 곳이다. 진주만을 습격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만주사변을 기획한 이타가키 세이시로 등이 합사돼있다.

일본은 전쟁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도 독일과는 확연히 달랐다.

1946년 5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연합국에 의해 이뤄진 ‘도쿄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기소된 A(평화에 대한 죄)급 전범 28명 중 이미 사망하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3명을 제외한 25명에게 유죄가 선고됐으나, 그중 사형이 집행된 7명을 제외한 나머지 19명은 전원 석방됐다.

또한 천황(일왕)은 전쟁의 책임을 면했고,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이 속하는 B(보통의 전쟁범죄)·C(반인도적 범죄)급 전쟁범죄는 확실히 다루지 않았다. 잔혹한 생체실험 등으로 악명 높았던 731부대 등도 불문처리됐다.

반면 런던협정에 근거해 1945년 11월부터 나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독일에서 열린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은 기소된 이들에게 △평화에 대한 죄 △통상의 전쟁범죄 △반인도범죄를 모두 적용했다. 기소된 22명 중 19명에게 유죄가 선고됐고, 사형수들은 곧바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독일은 이후에도 자체적으로 유대인 학살 등과 관련된 재판을 벌여 1963년부터 1990년까지 6468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등 전쟁범죄 처벌에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1969년에는 ‘나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마저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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