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엔 기억해야 할 게 너무 많다
  • 방민준 | 2017-10-14 15:31:28
[골프한국] 불가사의한 치명적 중독성으로 멀쩡한 사람을 못 말리는 마니아로 만들어버리는 골프는 동시에 끝없는 숙제를 안겨준다. 골프채를 놓지 않는 한 계속 주어지는 숙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난제를 풀었다 싶으면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고 수많은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해 이제 끝이겠거니 마음 놓으면 저 멀리에 아스라한 목표물이 나타난다.
소림사 같은 무술을 수련하는 곳이라면 정해진 관문이나 시험을 통과하면 하산(下山)이라도 할 수 있지만 골프에선 결코 하산할 때는 오지 않는다. 포기하거나 추락할 수만 있을 뿐이다. 평생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려 올리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골퍼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하다. 

골프가 안겨주는 숙제 중 가장 지난한 것의 하나가 샷 하는 순간 숙지(熟知)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다는 점이 아닐까.

정말이지 골프만큼 샷을 하는 순간마다 놓치지 않아야 할 주의사항이 많은 스포츠가 어디 있을까 싶다.
좋은 샷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기능적 지침들, 코스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요령, 호흡이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비법, 동반자와 좋은 관계 유지하기 등 골프를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 숙지 사항은 헤아릴 수 없다.
대충 큰 카테고리만 열거한 게 이 정도지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그야말로 머리가 지끈거릴 판이다.

물론 어릴 때부터 골프에 취미를 붙인 사람이나 생업으로 골프를 하는 프로선수들이야 이 같은 숙지사항들이 피와 살로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표출되겠지만 주말골퍼들로서는 매번 시험지를 받아든 가슴 울렁대는 학생일 수밖에 없다.
숨 쉬듯, 걸음을 옮겨 놓듯 자연스럽게 플레이할 수 있는 선수들도 시합에선 심사숙고 한 뒤 샷을 날리는데 연습은 물론 필드 경험이 적은 주말골퍼들이야 머리가 하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마추어 골퍼들은 나름 머릿속에 커닝페이퍼를 만들어놓는다. 상황에 따른 중요한 지침이나 법칙, 요령, 비법 등을 몇 가지로 정리해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이다.
현장에서 쉽게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연속에서 미스 샷이 나올 때 머릿속에 보관해둔 커닝페이퍼를 펼쳐 실마리를 찾고 도움을 얻는 것이다. 문제는 커닝페이퍼를 만들어놓고도 찾지 못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꽤 많은 커닝페이퍼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
내 경우 백 스윙과 팔로우 스윙을 제대로 하기 위해 클럽헤드가 원하는 지점까지 갈 때까지 기다린다는 ‘기다림의 미학’개념을 떠올린다. 샷의 일관성과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한 중심축 유지를 위해 왼쪽 다리가 콘크리트파일처럼 땅에 박혔다는 이미지를 갖는다. 헤드업을 막기 위해 코에 낚싯바늘을 꿰고 그 줄이 발아래 땅에 고정돼 있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헤드업을 하면 코가 찢어지는 일이 벌어진다는 상상을 하며.

특히 그린에선 주머니에 최소한 다섯 개의 볼트와 너트가 있다고 상상하고 이 다섯 개의 볼트와 너트를 다 맞춘다. 
홀과의 거리, 내리막 또는 오르막의 정도, 잔디가 자란 정도, 라인이 측면으로 기울어진 정도, 연못이나 산의 위치 같은 주변지형의 참조 등 때로는 다섯 개의 볼트와 너트로 부족할 경우도 있다.
이런 나만의 커닝페이퍼는 라운드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는데 요즘은 커닝페이퍼를 찾아내지 못하고 아예 머릿속에 커닝페이퍼가 들어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기도 한다.

최근 볼이 직선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겨냥한 방향보다 왼쪽으로 쏠리는 현상 때문에 시달렸다. 클럽을 살짝 열기도 하고 다운스윙 때 in-out 이 되도록 노력했으나 개선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순간 ‘3시20분’이란 오랜 커닝페이퍼가 떠올랐다.
볼은 직선으로 날려 보내야 하지만 몸체에 붙은 팔이 만들어내는 스윙은 완만한 타원형을 이룰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클럽헤드가 볼에 접근할 때는 목표방향과 연결되는 직선이 아닌,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들어가고 볼을 맞히고 난 후에는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이른바 ‘in-out-in'이 되어야 한다.
이 원리야 모두가 알지만 어느 정도 in이 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 out이 되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3시20분’은 볼을 시계의 문자판으로 보고 볼이 목표선과 직선으로 놓였다고 가정할 때 그 직선이 볼을 통과하는 오른쪽이 3시인 셈이다. 작은 침은 20분을 가리키고 큰 침은 3시를 잠깐 지난 지점에 있게 된다. ‘3시20분’을 가리키는 큰 침과 작은 침 사이로 클럽 페이스가 파고들게 하는 나만의 커닝페이퍼다.
‘3시20분’의 지침은 바로 효과를 발휘했고 고질적인 훅이 해결된 것은 물론이다.

나만의 커닝페이퍼 만들기도 필요하지만, 적절히 활용하고 잊혀 지지 않도록 연습 때마다 수시로 뒤적여 보는 습관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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