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준의 골프세상] '리틀 빅 워먼' 지은희가 이룬 기적…LPGA 기아클래식 우승
  • 방민준 | 2018-03-26 18:16:19
  1. 지은희가 LPGA 투어 기아 클래식 우승을 확정한 뒤 샴페인 세례로 축하를 받는 모습이다. ⓒ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프로골퍼로서 지은희(32)는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왜소한 체격으로 골프선수로 입문한 과정에서부터 LPGA투어에 진출해 11년 간 골프의 정글에서 퇴출되지 않고 버티며 메이저 1승(US여자 오픈)을 포함해 통산 4승을 거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즈배드의 에비에라GC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기아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홀인원을 포함해 5언더파를 치며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로, 미국의 크리스티 커, 리젯 샐러스를 2타 차이로 제치고 우승한 지은희의 골프행로는 경이롭다.
20대 초중반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LPGA투어에서 30고개를 넘은 지은희는 ‘흘러간 물’이다.
극히 이례적으로 줄리 잉스터(57), 로라 데이비스(54), 캐리 웹(43), 크리스티 커(40) 등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젊은 피’ 공급이 활성화된 LPGA투어에선 웬만한 능력자가 아니고선 30고개를 넘으면 퇴물 취급을 받는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은희의 골프 행로를 훑어보면 험로의 연속이다.
 
골프 선수로 성장하기에 지은희는 출발부터 핸디캡이 많았다.
우선 시작이 늦은 편이었다. 가평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8년 처음 골프채를 만져봤다. 수상스키 국가대표인 아버지(64)를 따라 아버지 친구의 골프연습장에 따라갔다가 골프채를 휘둘러봤다. 본인은 골프에 별 흥미를 못 느꼈으나 아버지 친구가 알아봤다. 키 163cm로 체격은 작지만 근력이 잘 발달돼있고 동작이 대범함을 간파한 아버지 친구는 지은희를 골프선수로 키우라고 제안했다.

그길로 가평에서 춘천을 오가며 골프를 배웠고 6개월 후인 중학교 1학년 때 주니어아마추어 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다. KPGA에 이어 JGTO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경태가 당시 동갑으로 주니어대회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는데 아버지 친구는 “김경태보다 더 크게 성장할 테니 두고 보라”고 장담했다고 한다.
친구의 장담에 귀가 솔깃해진 아버지가 딸을 위해 남이섬 부근에 골프연습장을 차리면서 골프선수로서 지은희의 담금질이 본격화되었다. 2004년 박희영, 최나연 등과 함께 KLPGA 정회원으로 들어와 2005년부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3년 안에 우승할 것을 다짐했으나 이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다. 데뷔 첫해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 2년차에 톱10에 4번 들었고 2007년 KB스타투어 챔피언십과 피닉스파크 클래식에서 우승 맛을 보았다.
같은 해 LPGA투어 Q스쿨을 통과해 미국으로 건너간 지은희는 이듬해인 2008년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하고 2009년 US여자오픈에서 깜짝 우승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성취다.

그러나 이후 2017년 스윙잉 스커츠 LPGA 타이완챔피언십 우승 때까지 무승의 기간을 견뎌내야 했다. 
LPGA투어에서 우승 없이 8년을 버티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우승은 못했지만 참가한 대회 3분의 2이상 컷 통과를 할 정도로 꾸준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선수 같았으면 일찌감치 짐을 쌌을 텐데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린 세계 랭킹 1위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아버지는 이런 그를 격려했다. 
 
뒤늦게 LPGA투어에 합류한 후배들이 못 버티고 보따리를 싸는 것을 보면서도 지은희는 독했다. 몸과 마음을 담금질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고 그 열매가 지난해 10월 스윙잉 스커츠 LPGA 타이완챔피언십 우승이었다.
그리고 5개월 만에 다시 우승을 보탰다. LPGA 통산 4승째다.

마지막 라운드 14번 홀에서 홀인원의 행운이 겹쳐 그의 우승은 사실상 확정되었지만 세계 곳곳에서 뛰어난 신예들이 몰려드는 LPGA에서 왜소한 체격의 30대 지은희가 승수를 보탰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동안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쏟았을 그의 노력, 적당히 만족하고 현실과 타협하기 쉬운 나이를 초월한 그의 의지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한국선수들에게 귀한 교훈이 될 것이다.

L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선수 중 최고령임에도 “나의 큰 목표는 세계랭킹 1위다. 현재 눈앞에 설정한 목표는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며 이달 말 열리는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 대회에 기대를 거는 지은희야말로 진정한 ‘리틀 빅 워먼(Little Big Woman)’이 아닐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구글플러스 공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