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는 섬세한 만큼 무던하게 다가서야
  • 방민준 | 2018-05-16 08:19:20
  1. 그림 제공=방민준

[골프한국] 골프는 스포츠 중 가장 섬세한 운동이다.

각자가 스스로 심판이 되어 자신의 경기를 하기에 육체적으로 부딪힐 소지가 없다. 많아야 80~100회 정도에 이르는 스윙을 하며 산보하듯 걷거나 카트를 타고 이동하므로 많은 운동량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운동 도구는 모두 독점적 소유물이고 자신의 결정대로 다룰 수 있다. 그 결과는 물론 자신이 책임진다. 그렇기에 한 샷 한 샷 날릴 때마다 신중하게 숙고하고 결단을 내린 후에도 고도의 평정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골프 룰을 위반하지 않는 한 아무도 자신의 경기에 간섭하지 않는다. 골프가 자립 독행의 스포츠인 까닭이다.  
 

구기나 격투기 육상경기는 거칠게 몸을 내던져야 한다. 이것저것 가릴 틈이 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하므로 심사숙고할 여지가 없다.

아마도 궁도나 사격, 검도 정도가 골프와 흡사한 집중과 섬세함을 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스포츠의 소요시간이 길어야 10분 이내인 것을 감안하면 한 라운드 소요시간이 4~5시간에 이르는 골프가 요구하는 정신적 육체적 섬세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골프에서 섬세함을 요구하는 영역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한대로 넓다. 

첫 홀 티 박스에 기도하는 자세로 오르는 것부터 쉽지 않다.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야 하고 근육도 이완되어 있고 호흡도 거칠지 않아야 만족스런 티샷을 날릴 수 있다.

첫 홀의 미스 샷을 방지하기 위한 준비는 전날부터 시작된다. 지나친 음주나 과로는 피하고 가능한 숙면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구력이 아무리 오래 되어도 소풍 가는 어린이처럼 밤잠을 설치기 마련이지만 조용하게 집을 나서고 평화롭게 골프장에 도착하려고 노력한다. 음악은 클래식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골라 듣고 운전하면서는 결코 남과 다투지 않는다.

혹 다른 차가 끼어들거나 경적을 울려 반응하기 시작하면 고요했던 마음은 금방 격랑에 휩싸이고 만다. 골프장에 도착해서도 심장 박동이 거칠고 심리적으로 서두르게 된다. 아침 식사도 허겁지겁, 차도 후루룩, 첫 홀 티 박스에 도착해서도 아침에 겪은 일이 잔상으로 남아 잡념을 일으킨다. 무념무상의 첫 홀 티샷은 기대할 수 없다.


라운드 중에도 온갖 데서 섬세함의 지배를 받는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남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섬세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혹 동반자가 시야를 방해하지는 않는가, 시야 밖에서라도 잡음을 내거나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가를 예민하게 감지하려 든다.

남이 티샷을 할 때 역시 혹시 자신이 방해되지는 않는지도 되돌아본다.

특히 그린에서는 섬세함이 극에 달한다. 볼이 놓인 지점과 홀 사이의 길이 어떤가를 파악하는 것부터 여간 치밀하지 않고선 읽어내기 어렵다.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그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좌우 어디로 휘는지, 잔디는 얼마나 자랐고 결은 어디로 누워있는지, 어디에 변곡점이 숨어 있는지 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모든 감각이 섬세함을 발휘해야 한다. 여기에 섬세한 스트로크 동작이 수반되어야 의도한 퍼팅을 할 수 있다.
물론 동반자들은 퍼트를 하는 사람의 시야를 방해해서도, 집중을 해치는 움직임을 해서도 안 된다. 기침소리마저 참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처럼 섬세함을 요구하는 골프에 충실하다 보면 그 섬세함 때문에 골프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과 육체의 상태를 섬세하게 유지하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섬세함에 매달리다 보면 섬세함을 방해하는 외부의 움직임에 과민반응을 보여 오히려 자신의 플레이에 독으로 작용하게 된다. 섬세함을 욕심내다 스스로 태풍의 회오리에 휩쓸리는 꼴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자신이 추구하는 섬세함을 위해 동반자들이 협조해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골프가 배려와 에티켓을 요구하는 신사의 스포츠라지만 동반자들의 굳어버린 개성을 뜯어고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이 지점에서 골퍼들의 갈등과 마찰이 발생한다.


이때 필요한 처방이 무던한 자세다. 섬세함을 방해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길 줄 알고 호방하게 툴툴 털고 갈 줄 아는 자세다. 그래야 자신의 리듬대로 플레이를 펼쳐 갈 수 있다.

지나치게 칼날이 날카로우면 스스로 다칠 수 있듯 섬세함 그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섬세함을 방해하는 남의 행동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난조에 빠지게 된다.


선(禪)에서 소는 진리에 비유된다. 소를 찾아 나서는 심우(尋牛)의 과정은 진리를 찾아 나서는 구도의 길이다. 심우도(尋牛圖)는 바로 이 구도의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산사의 벽화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우도는 8단계 혹은 10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어느 것이든 마지막은 일상 속으로 돌아와 보통사람들과 어울리며 진리를 전하는 단계다. 일상의 삶이 곧 깨달음인 단계로 입전수수(入纏垂手)라 일컫는다.

골프로 치면 스코어나 기술, 섬세함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어떤 동반자와 어떤 환경에서든 함께 어울려 골프를 즐길 줄 알고 동반자를 배려하며 깊은 골프의 오솔길로 동반자들을 인도하는 경지가 아닐까.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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