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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입이 골프를 망친다
방민준 2019-03-14 05:08:48
사진=골프한국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골프한국] 김춘수 시인의 〈꽃〉은 국민적 사랑을 받는 시 중의 하나다.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의미의 뉘앙스가 약간씩 다르겠지만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대상의 존재가치가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이리라. 

무심코 지나치는 길가의 화초도 내가 어떤 이미지를 갖고 명명(命名)하는가에 따라 꽃이 되거나 풀포기나 가시가 될 수도 있다.
대상의 객관적 모습을 떠나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고 그렇게 말하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면 추한 것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물을 묘사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대상에 대한 화자(話者)의 주관을 대상에 투사하는 행위인 셈이다. 

한편 법구경(法句經)은 입과 말의 재앙을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우리는 도끼를 입에 물고 태어나 살아가며 
 제 몸을 찍게 되나니 
 이것은 오직 스스로 내뱉은 말 때문이니라.’

골프장에서도 김춘수 시인의 ‘꽃’이 의미하는 명명의 마법이나 법구경이 경고하는 말의 재앙이 존재한다.

골프 코스에서 대개 말수가 적은 사람이 실력자일 가능성이 높다. 함부로 지레짐작하지 않고 겸허하게 동반자들의 수준을 살피며 자신의 경기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말을 해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기를 불어넣을 것들만 입에 올린다. 

“오늘 날씨를 보니 좋은 라운드가 될 것 같습니다.”
“모두 표정들이 밝으신 걸 보니 좋은 스코어를 낼 것 같군요.”
“이 코스는 나와 궁합이 맞는 것 같아.”

반대로 말이 많은 사람은 미스샷도 많이 내고 스코어도 나쁜 편일 가능성이 높다. 다변인 사람은 좋은 말보다는 불평이나 불만, 자랑이나 약점을 털어놓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골프장 오는 길에 앞차가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드는 바람에 사고 날 뻔했다니까. 뭔가 좋지 않은 징조 같아.”
“나는 이 골프장하고 좋은 인연이 별로 없는데….”
“어젯밤 늦게까지 술에 절어 오늘은 포기해야겠어.”
“요즘 슬럼프에 빠진 것 같아.”

만족한 라운드를 하려면 대화든 독백이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것을 입에 올려야 한다.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것은 입에 담는 것은 물론 머릿속에조차 담아두지 않아야 한다. 

특히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입에 자물쇠를 채워두는 게 상책이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 어드레스를 하며 뭔가 계속 중얼대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된다. 물론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들이다. 

“드라이버만 잡으면 심장이 멎을 것 같다니까.”
“제발 헤드업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전에는 훅이 심하게 나더니 요즘엔 슬라이스가 날 괴롭힌다니까.”
“다리가 잘 버텨줘야 하는데 흔들려.”
“연습장에선 잘 맞아나가는 데 필드에서는 안 된단 말이야.”
“이젠 시니어 티에 갈 때가 되었나 봐.”

골프장에서 내뱉은 부정적인 발언은 결국 자신을 부정적인 틀 속에 가둔다. 지난 홀의 미스샷이나 참혹한 장면을 계속 반추하며 후회하는 행동은 자신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리고 제 발등을 찍는 행위나 다름없다. 

도마뱀이 위기에 처했을 때 꼬리를 잘라버리고 위기를 벗어나듯 떨쳐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호숫가 나뭇잎을 흔드는 정도의 상쾌한 바람 같은 말이라면 몰라도 듣는 이나 말하는 이 모두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듯’ 어떤 날의 라운드 품질도 내 머릿속이나 입을 거쳐 나온 발언의 내용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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