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광복절(光復節) 75주년을 맞으며 세계의 광복(光復)을 꿈꾼다]
  • [ 김우주박 ] 비둘기기자
북로군정서 2,500명의 독립군으로 5만 명의 일본군을 대파한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을 소개한다. 김좌진 장군은 1889년 충청남도 홍성군의 손꼽히는 부잣집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장군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영민하였고 전쟁놀이와 말타기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15세 때인 1904년에는 대대로 내려오던 노비 30여 명을 모아놓고, 그들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장군은 어릴 때부터 의협심이 강하셨던 분이었다.

김좌진장군은 1905년 서울로 올라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17세인 1907년 고향인 홍성으로 돌아와서 교육운동과 계몽운동에 힘썼다. 그 결실이 호명학교(湖明學校)의 설립이었다. 99칸짜리 본인의 집을 개조하여 설립한 호명학교의 교명은 “호서지역을 밝게 한다"는 것, 즉 호서지역을 개명(開明)한다는 뜻으로 개화와 신학문에 대한 교육을 목적으로 갖고 있었다.


출처: Pixabay mogoon- 고향 홍성에 있는 김좌진 장군의 동상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자 그는 군자금을 모아 서간도 지역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겠다는 큰 뜻을 세우고 모금 활동을 벌였다. 1911년 군자금 모금 활동 중 친척의 배신으로 투옥돼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지만, 후일 거사를 도모할 인물들을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항일 독립전쟁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로 기록된 ‘청산리대첩’은 청산리 골짜기에서 2,500여 명의 독립군이 5만여 명의 일본군을 상대한 전투이다. 20배에 가까운 숫자적 약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대파하게 된 이 전투는 1920년 10월 21일 새벽 김좌진과 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독립군에 의해 실시된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한다. 10월 22일 천수평 전투와 이랑촌 전투, 23일 맹개골 전투와 만기구 전투, 홍범도 부대가 치른 완루구 전투, 25일부터 이틀간의 고동하곡 전투 등 청산리 일대에서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약세인 독립군은 일본군을 매복, 기습 습격 등 게릴라 전술로 상대하였는데 마지막 전투에서 골짜기를 독립군이 포위하는 형태로 진을 치며 승리로 이끌었다. 청산리전투의 대승리는 일본의 핍박 아래 고통받던 우리 민족들과 해외동포들에게 큰 기쁨과 광복에의 의지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용인동백초등학교 6학년 김우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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