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화가 우리 그림]신성한 자손임을 나타내다 '벽화의 하늘 세계'
  • | 2018-10-11 15: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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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장 벽화, 통구다섯무덤의 4호 무덤, 6세기.
고구려판 그리스 로마 신화

고구려 건국신화는 <삼국사기> 등 여러 역사책에 자세히 전한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신화는 고작 이게 전부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해신과 달신, 칠성신, 불의 신, 농사의 신 등 당시 고구려에는 그리스 로마의 신 못지않은 수많은 신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은 까닭에 현재로선 정확한 실체를 알기 어려울 따름이다. 그러나 다행히 고구려 신화가 아주 까마득히 잊힌 건 아니다. 무덤 속 벽화에 고구려인이 믿었던 신의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이다. 벽화로 당시의 신화를 추측하는 것은 퍼즐 맞추기처럼 어려운 게임이겠지만, 그렇게라도 신화를 살려 낼 수 있음은 큰 행운이다.

무덤 속 천장의 벽화에는 하늘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볼수록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중국에도 벽화가 있지만 이처럼 세련되고 생동감 있는 그림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그림을 가만히 보노라면 한 편의 장편 서사시를 읽듯 가슴이 설렌다. 수많은 용이 몸을 뒤튼 채 꿈틀대는가 하면, 학이나 용을 탄 신선은 유유히 하늘을 난다. 둥근 점으로 표시된 별자리도 보이고, 해신과 달신을 비롯한 수많은 신이 제각기 맡은 바에 몰두한다. 그림 자체로도 예술적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고구려 시대의 신화적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했는지 느낄 수 있다.

고구려는 하늘이 내린 자손

하늘 세계를 묘사한 벽화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해신과 달신’이다. 이 그림에는 당시 사람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고구려인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신의 자손이라 생각했다. 동명왕 신화를 보면 동부여를 도망친 주몽이 추격군을 피해 달아나다 강가에 이르러 길이 막혔다. 다급해진 주몽은 채찍을 들어 강물을 치며 말했다.

“나는 하늘나라 황제의 아들이요, 물의 신 하백의 외손자이다. 내가 큰 뜻을 품고 가는 길에 강물이 나를 막으니! 하늘이여, 나를 도와주시라!”

그러자 강물 속에서 자라와 물고기가 나와 다리를 놓았다. 덕분에 주몽은 추격군을 따돌리고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보면, 주몽을 일컬어 ‘하늘나라 황제의 아들(天帝之子)’이라 했고, 그의 신하였던 모두루의 무덤 글에서도 주몽을 ‘해와 달의 아들(日月之子)’로 분명하게 못 박아 놓았다. 해와 달로 상징되는 하늘신을 모시는 것은 곧 태초의 자기 조상을 모시는 일이기도 했다.

그림을 보면 해신과 달신은 사람의 얼굴에 용의 몸통이다. 다소 해괴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당시로선 신성한 존재를 이렇게 묘사했다. 해신은 남자, 달신은 여자의 얼굴이다. 이들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마주 달려드는 듯한 모습이 박진감 있게 표현되었다. 대륙으로 뻗어 나가던 고구려의 힘과 하늘의 자손이라는 민족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해신과 달신은 머리 위에 각각 해와 달을 들었다. 해에는 세 발 까마귀, 즉 삼족오를 그렸다.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이다. 달 속에는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를 그렸다. 설화에 따르면 불사약을 먹고 달나라로 도망친 항아선녀가 나중에 두꺼비로 변했다고 한다.

/자료 제공: ‘암각화부터 이중섭까지 우리 화가 우리 그림’(지은이 장세현ㆍ학고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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