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고장 위인찾기] 서울
  • | 2018-11-07 14: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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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세운 고구려의 왕자
온조왕 백제 ㅣ ? ~ 28 ㅣ 왕 온조왕은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고 위례성과 한성을 도읍으로 삼았어요. 위례성은 지금의 서울시 북한산, 중랑천 주변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아요. 한성은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오륜동, 방이동 근처로 추측되고 있어요.

인물 소개

백제는 고구려의 왕자였던 온조가 세운 나라예요. 온조왕은 형 비류가 세웠던 나라의 백성들을 받아들이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면서 백제의 힘을 키워 나갔어요. 기원전 16년 중국의 말갈이 침입했을 때 맞서 싸워 승리했어요. 기원전 6년 첫 도읍이었던 위례성을 떠나 한강 남쪽 한성으로 도읍을 옮겼어요. 기원후 8년 마한을 공격해 백제의 영토를 크게 넓혔어요.

온조는 뭘 했을까?

■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온조왕

온조왕은 백제를 세우고 46년간 나라를 다스렸어요. 나라를 튼튼히 하여 백성이 편안하게 살게 해 주었지요. 온조왕은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준비했어요. 울타리와 성을 쌓아 위험에 대비했고, 식량을 저장하여 전쟁이 나도 군사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했지요. 덕분에 주변 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백제는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

온조왕은 농업을 발전시켰어요.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물 대는 시설을 만들어 주었지요.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으려면 농사 이외에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백성들에게 누에치기 기술을 알려 주기도 했어요. 백제가 678년 동안이나 지속하면서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온조왕이 나라의 뼈대를 튼튼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랍니다.

■십제에서 백제로

온조가 고구려를 떠날 때 10명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따라나섰어요. 온조왕은 그가 세운 나라가 평안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은 10명의 신하 덕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라 이름을 열 십(十) 자를 써서 ‘십제’라고 정했어요. 훗날 온조왕이 말갈을 물리치고, 비류를 따라갔던 백성들까지 받아 주면서 나라가 더욱 커졌어요. 그러자 ‘많은 백성들이 세운 큰 나라’라는 뜻으로 ‘백제’라고 나라 이름을 바꾸었어요.

■마한 땅을 차지

온조가 나라를 세운 땅에는 원래 마한이라는 땅이 있었어요. 온조는 마한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왕을 찾아가 부탁했어요.

“저는 고구려의 왕자인데 쫓겨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새로운 터전을 잡고자 하니 왕께서 도와주십시오.”

“쯧쯧, 갈 곳이 없다니 불쌍하구나! 내 색리국 자리를 내줄 테니 거기서 살아 보겠느냐?”

색리국은 마한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었어요. 북쪽으로는 말갈, 동쪽에는 낙랑이 있어 늘 전쟁의 위험이 있는 땅이었지요. 그러니까 그는 이곳을 온조에게 지키게 할 속셈으로 땅을 준 거예요. 하지만 온조는 성을 쌓고 군사를 준비해 이곳을 평화로운 땅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백제의 힘을 키워 나갔지요. 어느 날 온조왕이 백제와 마한 땅을 구분하려고 울타리를 쌓자 마한에서는 화가 나서 울타리를 치우라고 명령했어요. 그러자 온조는 울타리를 없애는 척하면서 마한과의 전쟁을 준비했지요. 기원후 8년, 드디어 온조왕은 마한을 공격해요. 백제의 거친 공격에 마한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무너졌어요. 마한은 작은 나라들이 모인 국가여서 군사력이 약했거든요. 마한 땅을 차지하면서 백제는 영토를 크게 넓힐 수 있었어요.

[온조왕의 발자취]

■ 서울 몽촌토성(서울특별시 송파구 오륜동ㆍ사적 제297호)

약 2천 년 전에 세운 백제 시대의 성이에요. 자연적으로 솟아오른 언덕을 잘 다듬어 성벽으로 만들었어요. 백제 초기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나왔어요. 주변의 공원과 어우러져 산책하기 좋답니다.

■ 서울 풍납토성(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ㆍ사적 제11호)

백제의 왕이 살던 성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규모가 크고 백제 왕실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거든요. 1925년 홍수로 일부가 사라졌지만, 원래는 굉장히 컸대요. 이렇게 거대한 성곽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백제가 그만큼 왕의 힘이 강력했고 많은 돈과 높은 건축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해요.

[온조왕과 함께 보기] 도읍을 네 번 정한 백제

온조왕은 처음에 도읍을 위례성으로 정했다가 한성으로 바꾸었어요. 한성은 약 500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지요. 그 뒤로도 백제는 도읍을 두 번이나 더 옮겼어요. 왜냐고요? 바로 한강 때문이에요. 삼국 시대에 한강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탐내는 지역이었어요. 한강 주변은 농사짓기 좋았고, 배를 타고 중국에 가기 편했거든요. 오랫동안 한강을 차지한 나라는 백제였어요. 하지만 늘 한강을 욕심내던 고구려가 475년 장수왕 때 백제를 공격하여 한성을 비롯한 한강 주위의 땅을 빼앗았어요. 고구려에 쫓긴 백제는 금강 남쪽의 작은 마을 웅진(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으로 도읍을 옮겼지요.

웅진에서 힘을 추스른 백제는 한강 주변을 되찾으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리고 538년 수도를 사비(지금의 충청남도 부여)로 옮겼어요. 사비는 웅진보다 땅이 넓어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좋았고, 뱃길을 이용해 중국에 오가기가 편리했기 때문이에요. 이렇듯 백제는 위례성, 한성, 웅진, 사비 순으로 도읍을 네 번 정했답니다.

[TIP] 한성 백제 박물관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 02)2152-5800

약 500년간 도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한성 시대는 웅진이나 사비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어요. 이곳은 서울을 처음 수도로 삼은 백제의 한성 시대와 서울의 오랜 역사, 문화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에요.

/자료 제공=‘알려줘 서울 위인!’(글 이정주, 그림 이은주ㆍ조윤주, 지학사아르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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