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선정 2019년 3분기 ‘우수 작품상’
  • | 2019-10-21 06: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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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부문> 진짜 안 보고 싶어 박소명

회오리바람이 달려오며 먼지를 휙 뿌렸다. “퉤! 퉤! 트아!” 먼지를 뱉으며 준호는 애꿎은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짝꿍 병오 때문에 속상한 터였다. 끄떡하면 ‘야, 필리!” 라고 불러서이다. 필리는 필리핀의 줄인 말이다. 느릿느릿 걷고 있는데 저만치 정류장에 버스가 섰다. 누군가 버스에서 내렸다. 준호 눈이 커다래졌다. “쫑아 할머니!” 준호는 정류장으로 달렸다. 쫑아는 준호가 좋아하는 할머니네 개다. 준호는 쫑아를 좋아하는 만큼 할머니도 좋아한다. 할머니도 환하게 웃으며 준호를 맞아 주었다. “할미 집에 가서 편지 좀 읽어 줄겨?” “편지요?” “그려. 미국 아들한테서 편지가 왔는디 돋보기가 깨져버렸지 뭐여.” “네. 그럴게요. 아, 참! 근데 쫑아는 새끼 언제 낳아요?” “오늘내일혀.” “얼른 가요.” 준호는 앞장서서 달렸다. 그런데 늘 달려 나오던 쫑아가 조용했다. 할머니는 마루 밑 쫑아네 집을 들여다보았다. “새끼를 낳으려는 거여.” 할머니는 준호를 마루 위로 올라가게 했다. 그리고 마루에 난 작은 구멍을 가리켰다. 준호는 엎드려서 작은 구멍에 눈을 댔다. 처음엔 캄캄했는데 가만히 있으니 조금씩 환해졌다. 쫑아는 낑낑거리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불룩한 배가 움찔거렸다. 한참을 그러더니 드디어 쑤욱 하고 새끼가 한 마리 나왔다. 쫑아는 새끼가 뒤집어쓰고 나온 미끌미끌해 보이는 막 같은 걸 핥아주었다. 곧 다시 쫑아가 한 마리를 더 낳았다. 새끼가 나올 때마다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무척 힘들어 보였다. 쫑아는 그렇게 세 마리를 더 낳았다. “에미라서 저 힘든 줄도 모르는 거여.” 할머니 말에 준호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를 못 본지 몇 달이 되었다. 한동안은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이젠 모르겠다. 아니, 안 보고 싶다. 전화조차 안 하는 엄마가 밉다.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저도 에미라고 저러지. 에미는 다 그려.” 준호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우리 엄마도요?” “그럼. 니 엄마도.”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엄마 생각 안하려고 했던 다짐이 무너진 게 속상했다. “엄마들은 다 똑같혀.” 할머니는 밥그릇을 쫑아 앞에 놓았다. 하지만 쫑아는 꼼짝도 안했다. “기특도 허지. 지 새끼 어찌 될까 봐 움직이지도 않는구먼.” 할머니는 머리를 숙여 마루 밑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으로 밥을 퍼서 쫑아 입 앞에 내밀었다. 그제야 쫑아가 할머니 손에 입을 댔다. 준호는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쫑아를 지켜보았다. 쫑아 품에 새끼 다섯 마리가 꼬물거렸다. 준호도 엄마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릴 때가 있었다. 손잡고 유치원에도 같이 갔다. 유치원 소풍 때는 함께 달리기도 했다. 엄마가 입학 선물로 가방이랑 운동화도 사주었다. 입학식날 아빠랑 함께 학교에 와서 축하해주었다. 엄마가 가끔 필리핀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지난여름엔 워터파크에 물놀이도 갔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곁에 없다. 준호는 입술을 꽉 물었다. 필리핀에 있는 외할아버지가 아프다며 엄마는 걱정했다. 엄마는 당장 필리핀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빠는 당장은 안 된다고 했다. 엄마랑 아빠는 큰소리를 내며 다투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엄마는 필리핀으로 가버렸다. 준호에게는 몇 밤만 자고 온다고 했다. “쫑아 쉬게 우리는 들어갈까? 우리 준호 맛있는 부침개 부쳐줘야겠구먼.” 할머니가 일어서자 준호도 따라 일어섰다. “아, 참 편지 읽어드릴게요.” 준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쫑아 새끼 낳는 거 보다가 깜빡 잊을 뻔 했구먼.” 부침개를 부치던 할머니가 가스 불을 줄이고 서랍에서 편지를 꺼내왔다. “보고 싶은 어머님께, 어머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허리 아픈 건 좀 어떠셔요.” “그려. 그려. 허리도 괜찮고 잘 있구먼.” 할머니 눈이 촉촉해졌다. “가을쯤에 어머님 뵈러 가겠습니다. 마침 일도 있고 해서요.” 할머니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우리 준호 고맙구먼. 2학년이라 편지도 잘 읽네.” 할머니는 편지를 잘 접어서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노릇노릇 부쳐진 부침개를 접시에 담아왔다. 준호는 부침개를 입 가득 넣었다. “준호야, 엄마한테 편지를 써 봐.” “싫어요.” 준호는 괜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엄마가 연락이 없는 건 사정이 있을 것이여.” 준호는 고개를 세차가 흔들었다. 이젠 엄마가 안 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외할아버지 보살피다 엄마도 병이 났을지도 모르지.” 준호는 엄마가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못들은 척 했다. “편지 쓰면 강아지 한 마리 줄 거여.” “강아지요?” “그래. 젤 이쁜 놈으로 줄 것이구먼.” 준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엄마가 전화를 한다 해도 안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왜? 강아지 안 받고 싶은 겨?” “받고 싶어요.” “그럼 뭐여? 나 같으면 까짓 거 편지 쓰고 강아지 한 마리 받게구먼.” 할머니가 편지지와 연필을 준호에게 내밀었다.

엄마에게 나는 엄마가 한 개도 안 보고 시퍼요 아빠랑 나랑은 엄마보다 엄청 재미써요 쫑아도 있고,쫑아 새끼들도 있고, 쫑아 할머니도 있어요 물놀이 같이 안가도 괜차나요. 판싯* 안 만들어 줘도 괜차나요 엄마 안 와도 아무러치도 안아요 준호 드림 *판싯 :필리핀의 볶음국수

준호는 편지를 재빨리 가방 속에 넣었다. 밖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려왔다. “쿵쾅쿵쾅 털털털.” 할머니와 준호가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아빠가 경운기 시동을 끄며 말했다. “오늘도 준호를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준호가 제 돋보기인디요. 미국 아들 편지를 읽어줬구먼요.” “아하, 아드님 한국에 안 나온대요?” “가을에 나온다고 하네요.” “아이구 잘 됐습니다. 올해는 그렇게 그리던 아드님을 만나겠네요.” 아빠가 손을 높이 들었다. 준호는 아빠 경운기에 올라탔다.

저녁을 먹고 나자 아빠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엄마한테 편지를 쓰는 게 좋겠어.” “갑자기 왜요?” “갑자기가 아니야. 벌써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농사 때문에 미루고 미루고 했지. 쫑 아 할머니가 편지 이야기를 하니 지금 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엄마랑 싸웠잖아요.” 준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필리핀에 못 가게 하다 그렇게 됐지. 그런데 아빠 마음은 말이야 엄마에게 돈을 좀 마련 해 주고 싶었단다. 하지만 그땐 돈이 없었어. 아무튼 오해가 있었단다. 전화해도 안 받으니 무슨 일이 있는 게 맞아. 혹시 외할아버지 간호하다 엄마가 병이 났을지도 모르지.” 아빠도 쫑아 할머니하고 똑같은 말을 했다. “아빠가 쓰세요.” 준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나보다 네가 쓴 편지를 더 좋아할 거야. 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잖니.” 준호는 어쩔 수 없이 연필을 들었다.

엄마에게 엄마 저 준호예요. 잘 지네요? 아빠랑 저는 잘 지네요 학교에도 잘 다니고 이써요 아빠는 농사도 잘 짓고 이써요 외할아버지는 괜찬나요? 왜 전화가 않되나요? 엄마 아픈 거 아니지요? 우리는 엄마 걱정을 해요. 답을 해 주세요 준호 드림 들여다보던 아빠가 말했다. “‘엄마, 보고 싶어요. 얼른 오세요.’ 라고 한 마디 더 써라.” 준호는 한 줄 더 써넣었다. 그러자 아빠가 주소를 쓴 봉투를 주었다. “자, 여기 넣어라. 내일 읍내 우체국에 나가서 부치마.” “더 쓸 거 있나 한 번 읽어보고 내일 아침에 줄게요.” 준호가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방으로 와 가방을 열었다. 낮에 쓴 편지를 꺼내 방금 쓴 편지와 나란히 펼쳐 보았다. 아빠 앞에서 쓴 편지는 준호 마음이 아니었다. 쫑아 할머니랑 같이 쓴 편지가 준호 마음이었다. 아빠랑 쓴 편지는 보내고 싶지 않았다. 준호는 낮에 쓴 편지를 봉투에 넣어 책상 위에 놓았다. 아빠랑 쓴 편지는 찢어버리려다 가방 속에 넣었다. 풀은 아침에 붙이기로 했다. 준호는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안 보고 싶어!” 하지만 아파서 누워 있는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새끼를 핥아주고 안아주던 쫑아도 떠올랐다. ‘에미라서 저 힘든 줄도 모르지.’ 할머니 말도 생각났다. “한 개도 안 보고 싶다고요!” 준호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편지가 놓인 책상으로 다가갔다.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고, 가방에 있는 편지도 꺼냈다. 또 나란히 펴 놓고 들여다보았다. “진짜, 진짜 안 보고 싶어.” 준호 눈에서 눈물이 똑 떨어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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