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의 긴 싸움될 것"
  •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여동생 단독 인터뷰…"계란으로 바위 깰 수도 있다"
  • 경제산업부 이슬 기자 | 2019-09-12 12:25:10
  •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전경.
[스포츠한국 이슬 기자]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이미지가 좋은 대표적인 최고경영자(CEO) 중 하나다. 유행을 이끌고 앞선 경영을 하는 셀럽이다. 합리적이고, 신사적인 CEO로도 알려져있다. 현대카드 콜센터 여직원들에게는 “진상고객 전화는 끊어도 된다” 말하기도 했다. 약자편을 드는 ‘정의의 사도’라는 평가도 받았다.

스스로 스티브잡스를 꿈꾸는 듯한 정태영 부회장을 상대로, 여동생인 정은미씨가 지난달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냈다. 정은미씨가 국민청원을 통해 정 부회장의 갑질경영과 편법경영을 주장하면서, 정 부회장의 좋게 보이던 이미지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정 부회장 남매의 부친은 종로학원 창업주인 정경진씨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이는 힘든 싸움을 시작한 정은미씨를 12일 강북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큰 오빠인 정태영 부회장과는 언제부터 사이가 안 좋았나.

“어려서부터 좋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엄청 무서웠다. 하지만 난 큰 오빠가 아빠보다 100배 더 무서웠다. 어릴 때 부터 야단을 많이 맞았다. 5~6세 때 과자부스러기를 흘린다고 혼나기도 했다. 폭언을 듣고, 맞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에는 샤워하고 화장실 뒷정리를 하지 않았다고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다. 물 한 방울만 흘려도 혼났다. 그래서 큰 오빠에 대해서는 트라우마가 있다.”

어릴 때 남동생이 나이 차이가 얼마 되지않는 누나를 만만하게 보고 대드는 경우는 있지만, 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약한 여동생과 힘센 큰 오빠는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여동생에게 이렇게 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성인이 된 뒤, 결혼한 뒤에는 좀 나아졌나.

“큰 오빠와 어쩌다 전화통화를 할 때면 언제나 긴장했다. 전화할 때 두 세 마디 안에 요지를 얘기하지 못하면, 다신 겪고 싶지 않을 만큼 혼났다. 쌍욕도 많이 들었다. 거의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편이었다. 10번을 만나면 10번 다 기억하기 싫은 일이 생겼다. 그래서 되도록 안만나려고 했다. 4년전 어머니 생신 때도 큰 오빠 때문에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 어머니 생신이라 꾹 참고 있다가 끝난 후 그 자리를 나오면서 다시는 안보겠다고 결심했다.”

정은미씨는 정태영 부회장을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지난해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또 올 2월 어머니가 별세한 뒤 빈소에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작은오빠와 큰오빠의 관계는 괜찮은가.

“작은 오빠도 큰오빠와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작은 오빠는 나보다 더 오래전부터 큰 오빠를 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다들 불편해하니까 큰 오빠를 빼고 어머니와 작은 오빠하고만 같이 만났다.”

-정 부회장이 동생들에게만 욕을 했나.

“우리한테는 물론,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도 하고, 어린 조카들이 있는데도 거리낌없이 해왔다. 전에는 흘려들었는데, 요즘에는 지인들이 ‘너 오빠는 폭언이나 욕을 많이 하더라’라고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까지는 언론이나 외부에 정 부회장의 좋지않은 행태가 알려지지는 않았다.

“가끔 일부 재벌의 아들, 딸들의 갑질이 터져 문제가 됐지만, 그럴때마다 큰 오빠 생각이 났다. 현대카드 내에서도 폭언 문제가 심각하다고 듣기도 했다. 한맺힌 사람들이 적지않다고 한다. 서울PMC의 전신인 종로학원에서 그만둔 사람들이 종로학원에 대해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는 말도 들었다.”

-서울PMC(종로학원의 후신) 지분은 언제 받았나.

“2000년 전후에 받은 것 같다. 2001년에는 지분이 큰 오빠는 55%, 나는 15%였다.”

-작은 오빠는 서울PMC 지분이 없나.

“작은 오빠는 받은게 없다. 삼남매 중 아버지 밑에서 종로학원에서 일한 건 작은오빠뿐이다. 아버지 탈세와 외환위기 전후 어려운 시절에도 작은 오빠가 경영하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작은 오빠는 집안에 대한 상처가 많다.”

-정태영 부회장 지분이 70%가 넘은 건 언제 알았나

“어느날 보니 지분이 변해있었다. 그때는 지분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집안에서 하는 사업이라 경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개인회사처럼 운영해오셔서 지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큰 오빠는 현대자동차 계열에서 경영을 해서 그런지 지분에 예민했던 것 같다. 작은 오빠가 회사를 상장시킨 경험도 있어서 지분변동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분이 달라진 것에 대한 문제를 아버지께 설명해줬다. 그 뒤 아버지도 다시 되돌리려는 노력을 했으나 이미 영향력이 없었다.”

2001년 서울PMC의 지분은 정태영부회장 55%, 정은미씨는 15%였다. 2013년엔 정 부회장의 지분은 73%로 높아졌다. 절대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이다.

-2대주주인데도, 지분이 바뀐 걸 모를 수 있나.

“큰 오빠쪽에서 제대로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내가 도장을 맡긴 기억도 없는데, 내 명의의 도장을 멋대로 만들어서 사용했는지, 큰 오빠의 지분은 절대적인 수준으로 바뀌었고, 나는 이미 다 바뀐 후에서야 상황도, 의미도 알게됐다. 당시 상황에 대한 녹취록도 있다.”

-2017년 회계장부와 서류의 열람 및 등사 청구소송(이하 회계장부 열람소송)을 하게된 결정적인 동기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지분에 대해 사실 거의 내려놨다. 하지만 몇 년을 얼굴도 안 보고 살다보니까 어차피 남보다 못한 사이라면, 더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래서 회계장부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회계장부 열람 소송 2심에서도 패소했는데, 절대적인 주주는 다른 주주가 장부를 제대로 볼 수 없도록 할 수 있나.

“상법 466조에 따르면 다른주주들도 볼 수 있다. 거부할 경우 회사 측에서 합당한 이유를 대야하는데, 그런 합당한 이유가 없다. 나는 학원이 가업이었고, 2대주주니까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다른 소수주주들은 더욱 알 수 없다. 재판부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가 아니다’라면서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명할 자료가 있으면 형사고소를 하지 왜 열람 청구를 하겠나. 떳떳하면 장부를 보여주면 되는데 왜 못 열어보게 하고 결사적으로 막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더 의심스럽다.”

-정태영 부회장 측에서는 2017년 열람을 할 수 있게 해줬다는데.

“등사나 반출이 안된다는 얘기도 미리 안 해주고 약속된 시간에 가보니 50~60권 되는 장부를 쌓아놓고 그 자리에서만 보라고 하니 그게 말이 되나. 회계사 할아버지가 와도 안되고, 국세청에서 10명이 와도 안 될 것이다. 복사·등사는 끝까지 못하게 했다. 그때 열람을 하게 한 것은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인 것이었다.”

2시간은 그 많은 양의 장부, 목차를 보기는커녕, 그냥 넘길 수도 없었을 시간이다. 그래서 정은미씨는 열람도, 등사를 못하게 하니까 가처분신청도 하게 됐고, 열람소송을 하게 됐다.

-정태영 부회장 측이 2대주주인 정은미씨에게 알리지도 않고 하려던 중요한 사례가 있나.

“나에겐 한 마디 말도 없이, 회사 경영권과 자신의 지분을 팔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회사를 정리하는 와중에 내 것까지 팔 생각이었으면, 나에게도 얘기해야 하는데 전혀 안했다. 다른 곳에서 듣고 알게 돼 큰 오빠에게 물어보니, 욕설과 함께 그렇게 시시콜콜한 일까지 일일이 너에게 얘기해줄 수 없다고 하더라. 매수의사자에게 물어보니, 내 지분에 대해서는 들은 적도 관심도 없다고 했다. 회계장부 소송을 하기 전의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하도 답답해서 제3자에게 팔겠다고 하니까 그 다음 주에 주총을 소집하더니 정관을 바꿨다. 파는 게 어렵게 절차를 까다롭게 한 것이다. 남에게 팔지는 못하게 하고, 이제는 지분을 80% 가치로 정리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는 것은 못하게 하고, 정 부회장 측에게 넘길 때는 제값이 아닌, 80%로 넘기라는 뜻인가.

“그것도 지분을 가치의 80%로 사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감자를 하라는 것이다. 감자하는 과정도 같이 의논하는 것이 아니었다. 방식도, 가격도 일방적으로 이걸 받든지 아니면 기회도 없다는 식의 협박조였다. 기분이 좋지않았다. 그래서 거절했다. 그리고 감자를 하면 받은 금액의 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한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는 사람들도 도와주는 세상인데, 친 동생에게 이렇게 한다니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상황 같았다.

-회사의 중요 사안에 관한 정보 공유는 전혀 없었겠다.

“내가 2대주주인데 주요자산을 팔 때도 알지 못했다. 사업권을 팔 때도, 정태영 부회장은 개인적으로 최대 이득을 챙겼다. 사업권 중 정태영 부회장 개인 소유로 돼 있는 상표권 비율을 최대한으로 늘려서 판 것이다. 1~2년 새에 처분한 자산만 1000억원에 가까울텐데, 그 과정은 제대로 되었는지 쌓여있어야 하는 현금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어느 날에는 친환경사업과 관련한 주주총회를 한다는 공문이 왔다. 늘 그렇게 사전에 한마디도 알려준 적 없이 주주총회 공문만 왔다. 그리고 주총에 나가서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얘기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친환경사업을 새로 하겠다는 건 생뚱맞아 보인다.

“친환경사업을 한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순수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돈을 빼돌리려고 그런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설령 순수하더라도 수십년 학원을 하던 회사와 파이낸스만 하던 CEO가 친환경사업을 한다는데 능력도 미덥지않았다. 그래서 주주를 다시 구성해서 하는 게 어떤가하는 의견을 냈다. 그랬더니 주총을 연기하고 설명하겠다고 했는데 아무 설명도 없었다. 주총에서도 신규 사업에 대해 제대로 설명도 안하고 자료 한 장도 주지 않고 투표를 진행했다.”

-답답해서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을 하게 된 건가.

“너무 답답했다. 겪어 보니 법이 정의도 아니더라. 오죽하면 청와대 게시판까지 가겠느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어디계신지 연락처도 모른다. 형제 간은 이미 다 깨졌다. 무엇을 더 잃을게 있겠는가?”

-어머니를 사실상 거의 혼자 간호하셨는데.

“작년 초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폐렴이셨는데, 나아지는가 싶다가 갑자기 패혈증이 왔다. 1년 동안 중환자실에 계셨다. 휴일도 명절도 없이 매일 병원에 있었다. 지난해 추석 때도 연휴 내내 몇 번의 위험을 넘기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나 혼자 중환자실에 있었다. 1년 동안 매일 아침 집에서 대충 말아 나온 김밥 두 줄을 짬짬이 두세 개씩 집어먹으며 곁을 지켰다. 3~4일에 한번씩 동네 병원에서 삼십분 동안 맞는 수액을 십분 안에 놔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버텼다. 그런데 큰 오빠가 나더러 ‘너도 힘들면 관둬라’라고 하더라. 그 말에 분해서 열흘은 잠을 못잤다. 한번은 어머니 병실에 있다가 내가 다 토하고 쓰러질 뻔 한 적이 있다. 그 다음 날 어떻게 알았는지 걱정이 아닌 비아냥거리는 문자가 한 밤 중에 왔다. 아직도 그 문자는 내 휴대폰에 들어있다. 이미 건강을 잃으신 아버지를 돌보시다가 어머니가 갑자기 먼저 돌아가셨다.”

정은미씨는 몸이 편찮은 아버지를 돌보며 무리하시다가, 결국 1년간 중환자실에 계시면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버지 걱정을 하며 떠난 어머니 얘기를 할 때 눈물을 글썽였다.

-어머니는 외동딸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겠다.

“어머니는 큰 오빠를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형제간 불화를 늘 가슴 아파 하셨다. 폐렴으로 입원해 아프신 와중에 무엇이 그리 걱정이 되셨는지, 혼자서 자필로 격식까지 맞춰 유언장을 써서 작은 오빠에게 전했다. 어머니가 평생 아끼며 조금씩 모아놓은 쌈짓돈을 작은 오빠와 나에게 남긴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유언장까지 큰 오빠가 문제를 삼았다. 어머니도 남매간에 싸우는 게 싫으셨지만, 내 몫이 큰 오빠에게 빼앗기는 것도 원하지 않으셨다. 내가 장부열람 소송을 시작할 때도 다 알고 계셨다.”

-정 부회장이 무슨 이유로 문제를 삼았나.

“첫째 이유는 어머니 필적이 아니란다. 유언장을 작성할 당시 어머니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당시 본인도 어머니와 말을 주고 받았으면서, 어머니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이유를 대고 있으니… 그런데 세 번째가 더 웃기다. ‘평생 같이 산 배우자에게는 한푼도 안 남기고, 어떻게 자식들에게만 줄 수 있느냐’며 아버지가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몸도 정신도 좋지않으신 아버지가 내용을 알고 당신이 도장을 찍어준 것인지, 참 궁금하다. 혹시 그래서 아버지와 사이를 이간질하고 차단하는건 아닌지하는 생각도 든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정 부회장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방명록 명단을 보여주지도 않았다는데.

“소송은 소송이고 방명록은 방명록인데, 장례가 끝난 후 한참이 지나도 주지 않아서 달라고 했더니 겨우 준 것이 자기 마음대로 명단을 다 빼고 아주 일부 명단만 주었다. 심지어 우리 애들 아빠 이름도 없었고, 분명히 다녀간 가까운 친구나 지인 이름들이 수두룩하게 빠져있는 말도 안 되는 조각 명단이었다. 나와 작은 오빠는 지인에게 인사도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아무리 싸웠다고 해도 방명록도 안 주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작은 오빠는 방명록 반환소송을 하자고도 했다.”

-아버지도 못 만나게 한다는데.

“지난주가 아버지 생신이었는데 아버지가 어디에 살고 계신지, 지금 상태가 어떠신지 알 수도 없다. 아버지 상태로는 어쩌면 마지막 생신일수도 있는데…. 사실 폭군이셨고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던 아버지가 예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처음 중환자실에 누워계셨을 때는 아버지가 그렇게 만든것 같아 미워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면서도 아버지를 그리 걱정하던 어머니가 나에게 아버지를 잘 보살펴드리라고 당부하셨다. 그 후로는 아버지와 잘 지냈다. 아버지도 불쌍하다.”

정은미씨는 “이번 싸움은 긴싸움이 될 것”이라면서 “계란으로 바위가 깨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끝까지 가겠다”고 덧붙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데 정태영 부회장 남매간의 감정싸움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우리민족의 최대명절이라는 추석을 앞두고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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