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82년생 김지영' 정유미 "여성만의 이야기 아냐, 차별받은 남동생 떠올랐죠"
  •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 2019-10-23 08:01:18
  • 배우 정유미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매니지먼트 숲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올해 국내 극장가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를 던진 영화라면 단연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이 아닐까. 원작 소설은 100만 부 판매고를 올리며 큰 화제를 모았지만 ‘페미니즘 소설’로 낙인찍혀 이유 없는 미움을 받기도 했다. 일부 여자 연예인들은 이 책을 읽었단 이유로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영화화 소식과 함께 보도된 캐스팅 기사에는 주연배우들을 향한 날선 댓글이 쏟아졌다. 배우 정유미는 “현실감이 없었다. 악플을 신경 안 쓴다기보다는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거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거창한 메시지도 아니고 그냥 나와 내 주변 이야기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한다”는 당부와 함께 인터뷰에 나섰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출간 이후 2년 만에 누적 판매 100만부를 돌파한 조남주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정유미는 꿈 많던 시절을 지나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 엄마로 살아가는 김지영을 연기했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감독님과 만나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어요. 소설을 읽은 건 그 다음이에요. 다른 작품은 단독 주연이라 부담스럽다고 한 것도 있는데 이건 처음부터 이끌렸어요. 영화가 좀 더 촘촘하고 세밀한 느낌이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전하려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고 봐요. 촬영에 들어가면서 김지영을 연기할 수 있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운 지점도 있었지만 누군가로 인해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 나는 어디에 있고 나는 누구일까 돌아보는 시간이었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가 제게 온 게 감사해요.”

정유미가 연기한 김지영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0대다. 결혼 전 직장에서는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이었고 '워킹맘' 선배들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됐다. 아이가 태어나고 본격적으로 육아를 시작하면서 그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사소한 것도 깜박하는 일이 잦아졌고 노을 지는 창밖을 내다보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그런 지영의 모습은 누군가에겐 한없이 공감할 상황이지만, 미혼남녀에게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 깨뜨리는 현실이기도 하다.

“저도 미혼이라 다 그렇게 사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웃음) 하지만 아이는 계속 클 거고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고, 그게 삶 아닐까요. 3개월간의 짧은 엄마 체험이었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세상 모든 엄마와 아빠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 어머니들은 다들 ‘그냥 하면 되던데’라고 하시는데 왜 힘든 게 없겠어요. 저도 당연하게 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 내내 육아하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친구 어머니까지 생각났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캐릭터를 잘 표현해내면 그들도 뿌듯하지 않을까. 제 바람이에요.”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엄마’를 연기하는 정유미의 모습은 생각보다 진하게 다가온다. 손에 꽉 감긴 손목보호대, 다 늘어난 옷, 화장기 없이 파리한 얼굴로 실감 나게 그려낸 김지영은 너무 현실적이라 더 아프다. “실제로 제 주변 엄마들은 다 손목보호대를 하시더라고요. 특히 감독님이 육아를 해보셨기 때문에 디테일한 설정들을 넣을 수 있었어요. 제가 ‘아이 이유식 먹일 때 옷이 이 정도로 난리가 나요?’ 했더니 실제로는 더 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의 육아 경험에서 온 소소한 디테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속 김지영의 내면은 혹독하다. 육아, 재취업, 남편의 육아휴직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일상 속에서 그는 동네 빵집 아르바이트로 돌파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출산 후 건망증이 심해진 거라 가볍게 여겼지만 점점 우울감은 잦아지고 때때로 자기도 모르는 새 다른 사람이 돼 속내를 토해낸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지영의 모습은 남편 대현(공유)에게도 아픔이다.

“지영이가 다른 사람이 되는 부분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었어요. 소설에서도 지영이가 무슨 병 때문에 아픈 건지, 정확히 의학적인 병명이 나오진 않아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마다 표출하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뭔가 해놓고 기억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지영이를 통해서 엄마, 외할머니, 친구, 언니 등등 여러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감정 전달이었죠. 예수정 선생님께 녹음을 부탁드렸어요. 촬영 직전에 선생님이 보내주신 녹음을 듣는데 눈물이 났어요. 그 무드를 최대한 제 목소리로 담는 게 제 몫이었죠.”
  • 사진=매니지먼트 숲
‘82년생 김지영’의 중심축은 분명 여성이다. 하지만 여성 편향적인 영화는 아니다. 남성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직장 내 비일비재한 성희롱, 공공화장실 몰래카메라 등은 남녀 간 논쟁의 여지조차 없는 명백한 범죄다. 정유미는 “남녀간의 갈등을 조장하거나 논쟁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82년생 김지영’은 꼭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남녀를 떠나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 건, 첫째인 저 때문에 차별 받은 남동생이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2살 터울인 동생은 어릴 때부터 저한테 다 맞춰주면서 자랐어요. 저는 첫째라서 부모님이 원하는 걸 다 사주시곤 했는데 동생은 아니었거든요. 그런 걸 보면 이런 게 꼭 남녀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각자 살아온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정이 이입되는 인물도 저마다 다를 거고요. 일상 속 통념이란 게 결국 상대적인 것인데 저조차 모른 채 살아온 게 많더라고요. 궁극적으로 어디서든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조차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러지 않아야겠죠. '82년생 김지영'이 나와 내 주변을 되돌아볼 기회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관객 분들에게도 그런 영화로 남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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