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이병헌 "'천의 얼굴' 비결? 사람의 감정 연기하는 건 같아"
  • 영화 '백두산'서 북한 이중 간첩 리준평 역 맡아
    '남산의 부장들'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 맡아 개봉 예정
    "영화가 요구하는 감정 유지하려 항상 내면 속 자아와 싸워"
  •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 2020-01-20 19:31:21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이병헌을 인터뷰나 공식 기자회견 등에서 만난 후 대부분 공통되게 느꼈던 것이 감정을 표정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포커페이스에 능하다고할까. 크게 웃지 않고 큰 한숨을 쉬지 않는다. 연기와 배역에서는 어떤 장르도 소화해내는 천의 얼굴을 가진 그가 평소 일상에서는 격렬히 어떤 감정을 토하지 않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거나 인터뷰에 충실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또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오가며(TV와 영화를 동시에 오갈 수 있는 톱배우군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최고의 배우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는 그답게 현장 에피소드들도 유쾌하고 대화 속에는 위트와 유머도 넘친다.

질문과 답변 사이 잠시 틈이 생긴다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답에 진지하고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질문한 사람의 숨은 의도까지 파악해내며 비판적인 질문에도 감정적 대응보다는 적당한 동의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은 해내는 유연함으로 대응하는 모습에서도 한 업에서만 30여년 가깝게 일해 온 프로페셔널한 내공이 느껴진다.

출연 작품의 스태프나 관계자들에게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마치 신인과 다름 없는 자세로 현장에서 감독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구현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와 '달콤한 인생', '마스터'를 함께 한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는 스포츠한국과 인터뷰 당시 이병헌에 대해 "자신의 캐릭터 외에는 일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듯한 놀라운 집중력이 있다. 현장에서 감독이나 스태프를 대할 때 스타 의식도 없는 훌륭한 태도의 소유자다. 너무 많은 질문과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사람이고 놀라울 만큼 영화와 자신의 캐릭터만 생각하는 배우"라고 말한바 있다.

최고 시청률을 오르내리며 안방극장을 쥐락펴락한 멜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2018)의 남자 주인공 유진 초이부터 병자호란 시기 순간의 치욕을 참고 후일을 택하자고 주장하는 이조판서 최명길('남한산성'/2017), 네트워크 마케팅의 전설적 인물 진회장으로 분했던 '마스터'(2016), 서번트 증후군 동생과 갑작스럽게 동거하게 된 전직 복서 역을 맡아 영화 내내 늘어진 티셔츠와 트레이닝 복 바지 차림을 선보였던 '그것만이 내 세상'까지 최근 3~4년 전 작품들만 나열해봐도 장르의 다양성이 충분히 느껴진다. 배우의 나이를 굳이 따지자는건 아니지만 5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멜로 감정을 끌어낼 수 있고, 동네 백수부터 가짜 왕, 암살자, 사기꾼, 스파이, 북한 요원까지 사실 소화 못할 역할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드는게 사실이다.

영화 '백두산'에서 백두산 폭발을 막아야 하는 북한 무력부 소속의 리준평 역을 연기한 이병헌을 만났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백두산'은 해를 넘겨서 800만 관객을 모으며 장기 흥행 중이고 1979년 10월 제2의 권력자라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 암살사건을 벌이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남산의 부장들'이 설 연휴 개봉을 위해 대기 중이다.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도장깨기 하듯 여전히 갱신 중인 이병헌에게 그만의 승승장구 비결과 어떤 역할을 맡아도 제 옷처럼 딱 맞춤하게 소화해내는 비결을 물었다. 매차례 고심하던 그는 즉답을 피했지만 꽤 성실히 골똘히 답에 임했다.

- '백두산'은 한국 영화 중 제작비가 최상위권에 속하는 작품이다. VFX 기술력 등에서도 할리우드와 견줘도 될 수준인데 미국 영화 시스템과 비교해 본다면.

▲ 우리 영화에서 가능한 벼락치기라고 할까, 촬영현장도 국내 현장은 특유의 순발력이 있지 않나. 미국은 프리프러덕션 기간이 워낙 길다. 이미 탄탄이 결정돼서 현장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낸다고 한다면 적용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아이디어를 적용하려면 스튜디오까지 가서 회의를 하고 다시 현장에 와서 바꿔야 하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가능하고 대사나 상황을 변형시킨다던가 소품을 바꾼다던가 하는 게 잘 이루어지지 않나. 합리적인 구조다.

- 한 달 간격으로 선보이는 '백두산'과 '남산의 부장들'만 해도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다. 로맨스나 멜로부터 액션, 사극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의 캐릭터를 소화해낼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 극과 극을 오간다고 이야기해주는 분들도 있어서 되게 차이가 나게 느껴지지만 이런 이야기에서 이런 캐릭터의 감정은 뭐고 또 어떤 인물일까 고민하는 게 제 주된 일이다. 다양한 장르나 캐릭터를 쉽게 오가는 것처럼 보여지는 건 콘셉트에 따라 주변 스태프들이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재난 액션 장르이건 코미디나 드라마이건 내가 사람을 연기하는 것은 똑같다. 인간이 가진 감정을 연기하는 건 똑같지 않나.

- '백두산'의 출연 결정을 내린 계기는.

▲ 비주얼이 중요한 스케일이 큰 재난 영화인데 거기다가 버디 무비가 플러스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다른 배우가 아닌 하정우라면 재미있는 케미스트리가 생기겠구나 싶었다. 재난이 있기 전 각자의 삶이 옴니버스처럼 보여지다가 결국 포개지지 않나. 재난으로 인해서 각자 살아가던 사람들이 마치 적과의 동침처럼, 만나기 힘든 두 인물이 만나서 공동의 목표 하나 때문에 치고 박고 싸우면서 그 목표를 이뤄나가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점이 끌렸다.

- 시나리오를 읽을 당시 백두산 화산 폭발이 잘 납득이 됐나?

▲ 처음 선택할 때는 크게 와닿지 않다가 촬영하면서 뉴스에 나오는 것 보면서 놀라게 되더라. 상상 속에서 쓴 시나리오일 텐데 실제 활화산 활동을 시작한다는 뉴스를 듣고 놀랐다.

- 리준평은 북한 사투리는 물론 목포 사투리와 러시아어, 중국어도 능통한 사람이다. 어려움은 없었나.

▲ 처음엔 북한 사투리가 많아 부담됐는데 오히려 목포 사투리, 러시아어, 중국어 등 다양하게 해야 하더라. 막상 촬영 했을 때는 중국어가 NG가 많이 나더라. 반복적으로 연습했어야 했다.

- 하정우와 첫 호흡을 맞춘 소감은.

▲ 하정우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주변을 재미있게 하는 캐릭터다. 그 에너지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할 ?도 온전히 묻어 나오고 이 영화 안에서도 하정우라는 사람의 매력이 많이 발휘된 것 같다..

- 리준평의 엔딩 장면에 '이병헌은 이병헌'이라는 평이 쏟아지고 있다.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어 당기는 이병헌만의 영업 기밀을 살짝 털어놓는다면.

▲ 밖에서 볼 때 많은 좋은 수식어로 이야기해주시고 '저렇게 잘 했냐'고 하시지만 내 안에서는 한 감정을 유지시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영화 연기라는게 같은 감정으로 가는 큰 시퀀스가 있는데 하루 안에 다 못찍는다. 중간에 밥도 먹고 찍다가 다음날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일주일 있다가 다시 찍기도 한다. 그 감정의 수위를 늘 똑같이 끌어올리는 싸움을 제 내면에서 계속 하고 있다. 그걸 기억해내고 찾아가려고 애쓰며 발버둥친다.

연결되는 신은 찍을 때 요즘 모니터 시설이 잘 돼 있으니까 모니터를 계속 반복해서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전 테이크 때 찍은 감정과 크기를 알아야 그걸 연결 할 수 있다. 사람에겐 당연히 리듬이라는게 있다 어느 날은 컨디션이 좋았다가 어느 날은 다운되고 아무일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걸 되게 경계해야 한다. 이 일은 감정으로 하는 일이기에 내 기분이 다운되고 또 신난다고 좌우되면 안된다. 항상 영화 속 장면이 요구하는 그 감정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게 가장 힘들고 내 내면에서는 가장 싸우고 있는 부분이다.

- 영화 속 재난과 드라마와 액션이 분리된 느낌이 있다. 코믹 요소가 강해 재난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냐는 비평적 시각도 있다.

▲ 장르의 재미를 따라가는 관객이라면 그 장르에 안 맞는 공식이나 요소들이 들어왔을 때 그 장면(재난) 위주로 보고 싶은 아쉬움이 있을수 있다. 하지만 재난 영화이자 오락 영화이기에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다양한 재미를 담은 종합 선물세트로 봐주시면 더 좋을 것 같다. 촬영 중 준평과 인창이 티격태격하고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면서 코믹한 색채를 담은 부분에서 걱정을 한 적은 있지만 감독님들이 편집을 하면서 잘 속아내시겠지 싶었다.

- 이해준, 김병서 감독 두 명이 연출하는 현장의 느낌은 어땠나.

▲ 드라마에도 A팀과 B팀 감독님이 있는 경우가 있고 어떤 영화는 드라마만 찍는 감독, 액션만 찍는 감독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백두산'은 두 감독이 항상 매일 같이 있었다. 현장에서는 몰랐는데 간담회 때 들으니 두 감독이 마이크를 격일제로 사용했다더라. 요일에 따라 최종 컨펌을 내리는 사람이 바뀌었던 거다. 촬영하다가 깨달은 건 어떤 찍어야 할 상황에 대해 한 감독님에게 길게 다 설명했는데 다른 감독님이 없었다면 다시 말을 해야 하는 거였다. 그래서 이후 두 명 다 있을 때 말을 하곤 했다.(웃음)

- 리준평의 과거 서사를 드러내는 장면이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감정 연기를 크게 펼쳐야해 어렵지 않았나.

▲ 준평은 첫 장면에서도 이북 사투리가 아닌 목포 사투리를 쓰는가 하면 러시아어도 능숙하게 해낸다. '저 사람 뭐지'싶은 호기심과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로 보여지길 바랐다. 어느 순간에는 인간적 면모가 보였다가 또 어떨 때는 오싹하게 하는 날카로운 눈빛도 보여야 했다. 그런 점이 준평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아내 역으로 깜짝 등장한 전도연과 장면에서는 '순옥이 어디있네'라고 말하며 처음으로 본모습을 드러냈다가도 남한 군들이 몰려오자 갑작스럽게 돌변할 줄 아는 그 모습이 리준평이다. 준평의 서사는 짧고 분산돼 있기에 철저히 미스테릭한 인물로 만들려 했다. 그렇게 해야 관객들께 히스토리의 레이어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정말 짧은 순간 등장하지만 전도연의 임팩트는 압도적이더라.

▲ 전도연 씨야 보통 내공이 있는 배우가 아니잖나. 분량이 너무 짧은데 감정적으로는 엄청나게 센 장면을 표현해줬다. 관객들도 도연씨 등장 장면을 너무 좋아들 해주셔서 다행이었다. 아내에게 총까지 겨눌 정도로 냉혹한 인물이지만 딸과 만나는 장면은 정말 임팩트가 셌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스태프들이 약속한 것처럼 박수를 치더라. 아역을 맡은 친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연기를 잘 해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감정적으로 센 장면이었는데 영화의 2/3 지점에 등장하는 장면이어서 전체 발란스를 위해 슬림하게 편집을 하셨더라.

- 최근 들어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국내 작품 위주로 선택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 할리우드에서 계속 작품을 하려면 국내 작품은 아예 잠깐 끊고 가 있지 않으면 안되더라. 한 작품 끝나고 한참 아무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다음 것을 하자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스케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자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할리우드로 건너온 배우들에게는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 점은 일본 배우이거나 중국 배우 모두 마찬가지다.

- 올해 한 해도 엄청나게 개봉작과 촬영 대기 중인 작품을 향한 기대가 높다.

▲ 이성민, 이희준 배우와 함께 한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 예정이고 올 상반기 중 한재림 감독의 차기작 '비상선언'에서 송강호 배우와 호흡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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