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지푸라기' 정우성 "세상에 맨몸으로 나왔던 10대 시절, 절박했죠"
  •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 2020-02-19 07:00:18
  • 배우 정우성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배우 정우성이 180도 달라졌다. 완벽한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가벼운 말투에 허술한 계획, 방정맞은 몸짓까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에 우리가 알던 정우성은 없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정우성에게 어떤 일이 생긴 걸까.

‘지푸라기’는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범죄극을 그렸다. 영화는 흔들리는 가장, 공무원, 가정이 무너진 주부 등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행하는 최악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정교한 터치로 담아냈다. 정우성은 자신의 앞으로 거액의 빚을 남긴 채 사라진 애인 때문에 한탕의 늪에 빠진 출입국 관리소 공무원 태영 역을 연기했다.

“태영이 주도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치고 빠질까, 그런 고민을 했어요. 태영이 어떤 사람인지 보면 이도저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악한 놈도 아니거든요. 어느 정도 씁쓸한 연민이 배어나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태영의 허점을 부각시켜서 헛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이길 바랐어요. 그런 허점이 스토리상 잠깐 쉴 수 있는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너무 절박한 사연들이 계속 이어지니까. 태영이는 굉장히 개인적이고 가족적으올 얽혀있지도 않아요. 좀 가벼운 캐릭터였어요.”

태영은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하다. 강한 척하지만 강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정우성의 고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재미가 컸다”는 김용훈 감독의 말처럼 이번 영화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정우성의 새로운 발견 또한 관전포인트로 꼽을 만하다.

“감독님이 첫 촬영 때 당황하시더라고요. 택시에서 태영이 연희랑 통화하는 신이었는데 정우성이 막 호들갑을 떠니까 얼마나 당황하셨는지. 감독님이 재밌어해주셔서 더 용기내서 연기했어요. 제가 능글맞아졌나봐요. 아마 그들이 제게 바라는 기대 혹은 선입견이 있었을 건데, 전 그걸 넘어서 입증해야 했어요. 그래서 더 스스로 확신을 갖고 태영을 디자인했고 전체적인 균형 안에서 진지하게 계산했어요. 저 혼자 주인공인 영화가 아니고 태영의 임무를 충실하게 하는 것만이 이 캐릭터의 완성이었어요. 그 정도를 했다면 충분히 만족해요.”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출입국 관리소 공무원으로 여행객들의 체류를 심사하는 태영은 어떤 이들에겐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는 일을 하지만 정작 그의 삶은 답답하다. 당장 갚지 않으면 안될 거대한 사채 빚은 그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억누른다. 지친 듯 축 늘어진 넥타이에 낡고 구김 많은 와이셔츠까지, 태영은 온몸으로 절박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태영은 메이크업이 필요 없었어요. 원래 메이크업을 잘 안 하긴 해요. 요즘엔 자꾸 꾸미려고 하면 들켜요. 어색한 분장 때문에 감정 전달이 안 될 수도 있고요. 분장이 필요한 캐릭터라면 몰라도, 보통 나이에 맞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게 맞죠. 특히 40대는 그간 겪은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큰 메이크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메이크업을 위한 메이크업은 안 해요. 시간을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지나온 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하거든요. 따로 피부 관리도 하진 않아요. 숍에 누워 있는 시간이 너무 답답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솔직히 귀찮아요(웃음)”

무엇보다 예비관객들의 기대를 모으는 건 정우성과 전도연,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두 배우의 만남이다. 90년대 청춘 스타로 데뷔해 동시대 한국영화계를 뒤흔들었던 정우성과 전도연은 ‘지푸라기’를 통해 첫 호흡을 맞췄다. 정우성은 “전도연이란 좋은 동료를 새삼 발견한 작업이었다”며 애틋한 감정을 내비쳤다.

“서로 존중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걸 직접 얘기한 적은 없지만 (전)도연씨가 여태 맡았던 역할들의 무게가 좀 컸잖아요. 그런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는 캐릭터들을 계속 하다보면 배우 자체도 짓눌려요. 도연씨가 이번 영화로 지난 캐릭터들을 연기하면서 받은 상처나 짐을 좀 벗어던졌으면 하는 동료로서의 바람은 있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함께 하고 싶어요.”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세상에 냄새 안 나는 돈 있냐’며 한탕을 계획하던 태영은 결국 일생일대의 선택을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을 위트있게 그려낸 덕분에 관객들은 태영의 선택과 심정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정우성은 태영의 절박한 환경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저는 ‘한탕주의’는 없어요. 물론 절박한 시기는 있었죠. 10대 때 자퇴하고 세상에 정말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나왔어요. 어디에 서있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아르바이트도 하고 모델도 하고 그러다 받을 돈을 못 받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졌던 건 막연한 꿈이었어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개개인이 가진 절박함은 다 다른 거니까 쉽게 얘기할 수 없지만 스스로를 온전히 믿었을 때 뿌듯함은 분명이 있는 것 같아요. 그땐 힘들었지만 다른 비교 대상을 놓고 탓할 필요는 없었어요. 탓하면 온전히 받아들일 자세가 안 돼 있는 거고 그럼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것이거든요.”

오는 2월 19일 개봉을 확정한 ‘지푸라기’는 최근 경사를 맞았다.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Special Jury Award)을 수상하고, 제34회 스위스 프리부르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제 국내 관객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정우성은 “재밌고 밀도 있는 작품”이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시나리오부터 제목에 충실했어요. 돈 가방을 둘러싼 욕망보다 절박한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영화를 보면 각자의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지만 밀도 있게 보여주거든요. 좀 더 선정적이고 보기 편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면 욕망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사투에 집중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지푸라기’는 사연을 밀도 있게 보여줘요. 그런 구성이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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