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현장] "'기생충' 그 자체로 기억됐으면"…봉준호의 넥스트 스텝(종합)
  •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 2020-02-19 12:28:45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칸에서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기생충'은 영화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겠지만, 그보다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19일 오전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그랜드 볼룸에서는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이정은, 장혜진, 박소담, 박명훈,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이 참석했다.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앞서 한국영화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 종려상,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을 수상해 한국영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마침내 여기 다시 오게 돼 기쁘다. 기분이 묘하다"며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모든 영화들이 캠페인을 열심히 한다. 제 인터뷰가 한 600개 이상, 관객과의 대화도 100회 이상 있었다. 경쟁작들은 LA시내에 거대한 광고판도 있고 전면광고도 있고 물량공세를 했다. 저희는 인터넷, 소셜미디어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모아 물량의 열세를 커버했다"고 오스카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소감을 전했다.

이어 '오스카'를 두고 '로컬 시상식'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처음 캠페인을 하는 와중에 제가 무슨 도발 씩이나 하겠나"라며 "그때 질문이 영화제 성격에 대한 이야기였고 아카데미는 아무래도 미국 중심 아니겠나. 비교하다가 나온 단어였다. 근데 미국 젊은이들이 그걸 트위터에 많이 올렸나보다. 제가 무슨 전략이 있었던 건 아니고 대화하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강호 역시 "'오스카 캠페인'은 처음 겪어본 과정이라 새로웠다. 봉 감독님과 한 6개월 정도 영광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기생충'을 통해 전 세계 관객들에게 뛰어난 한국영화를 선보일 수 있었고, 이렇게 돌아와 인사드리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기생충'은 기존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로 인간애와 유머,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재미를 선사하며 한국을 넘어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빈부격차', '양극화' 등의 메시지를 세련되게 그려내며 전 세계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극했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세계적인 흥행에 대해 "'괴물' 때는 괴물이 한강변을 뛰어다녔고 '설국열차'에는 미래 열차가 등장했다. 근데 이번 영화는 SF적인 요소가 없고 우리 이웃에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렸다. 어떻게보면 우리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톤의 영화다. 그래서 더 폭발력을 가졌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오는 26일 국내 개봉을 앞둔 '기생충' 흑백판에 대해서는 "'마더' 때도 흑백 버전을 만든 적이 있다. 다른 거창한 의도보다 고전 영화, 클래식 영화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세상 모든 영화가 흑백이던 시절이 있지 않나. 내가 만약 1930년대를 살고 있다면 어땠을까, 흑백으로 찍으면 어떨까 영화적 호기심이 있었다"며 "저도 흑백판을 두 번 정도 봤다. 컬러가 사라진 것 외에는 똑같은 영화인데 묘하다. 로테르담에서 어떤 관객분이 '흑백으로 보니까 더 화면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그 의미를 더 생각해보게 된다.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섬세한 연기의 디테일을 훨씬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봉 감독은 한국영화 산업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해외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플란다스의 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젊은 감독들이 그런 시나리오를 갖고 왔을 때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촬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질문을 냉정하게 해본다. 제가 1999년에 데뷔했는데 20년간 눈부신 영화계 발전이 있었지만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뭔가 좀 이상한 작품,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엔 어려운 경향이 있다. 재능 있는 친구들이 산업에 흡수되기보다는 독립영화로 간다. 그런 부분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2000년대 초, '살인의 추억'을 찍던 당시엔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 간의 상호 침투, 좋은 의미에서의 다이나믹한 충돌이 있었다. 그런 활력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일단 한국의 인더스트리가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가 가진 리스크를 두려워 말고 더 도전적인 영화들을 산업이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근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워낙 많은 재능들이 이곳저곳에 꽃피고 있다. 결국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배우들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호명됐던 벅찬 순간을 떠올리며 국내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먼저 송강호는 "아카데미 시상식 때 봉 감독님이 수상 소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의 말을 인용한 게 인상적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하셨다. 가장 창의적인 것이 대중적인 모습일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 이게 '기생충'의 공식적인 마지막 자리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다시 칸에 가야할 것 같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살면서 이런 벅찬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눈물이 나더라. 4개 부문 상을 받고 나니 아카데미가 큰 선을 넘은 것 같았다. 편견 없이 저희 영화를 응원해준 아카데미 회원분들께 감사드린다. 멋진 패키지 여행이 마무리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조여정은 "무대에 서 있을 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제 표정을 재밌게 만든 영상도 돌아다니더라"면서 "저희만 한국사람이었지 않나. 영화의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영화라는 한 가지 언어라는 게 체감이 되더라.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신 게 언어를 떠나서 얼마나 인간적으로 잘 접근했으면 이렇게 잘 통했을까 싶었다. 덕분에 굉장히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박명훈은 "한국영화 100주년에 칸에서 큰 선물을 받고 또 다른 100년을 여는 시대에 아카데미상을 받아서 큰 영광이었다. 본업으로 돌아가서 좋은 작품에서 인사드리고 싶다"고 말했고, 박소담은 "촬영기간보다 더 길었던 오스카 캠페인을 잘 끝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다. '기생충' 팀이 제 가슴 속 깊이 오래오래 자리할 것 같다. 모든 분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이정은은 "'기생충'을 만들기까지 많은 분들이 정말 고민을 하셨다. 그런 아티스트는 역시 세계가 알아보는 것 같다. 영화 한편이 만들어질 때 정말 많은 분들이 수고해주신다. 그분들을 대신해 인사드리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장혜진은 "저라는 낯선 배우를 흔쾌히 써주신 감독님,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또 낯설지 않게 봐주신 관객분들께도 감사드린다. 가늘고 길게 가고 싶었는데 의도치 않게 이름이 알려져서 사실 걱정이다.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더 연기하고 싶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봉 감독은 "작년 5월 칸부터 이번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 이벤트, 경사들이 있다보니까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되겠지만 사실 그냥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라며 "배우들의 멋진 순간, 촬영팀 모든 스태프들이 장인 정신으로 만든 장면들, 그 장면에 담은 제 고민들이 기억되길 바란다. 감사드린다"고 강조했다.

  •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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