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 2020-03-26 06:00:06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스포츠한국에서는 ‘韓축구 명경기 열전’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수많은 경기 중 한국 축구사에 전설로 기억된 위대한 한 경기를 파헤쳐 되돌아봅니다.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①] 홍명보-서정원, 5분의 기적으로 무적함대를 세우다(1994 스페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②] 황선홍-홍명보에 당한 독일 "5분만 더 있었다면 졌다"(1994 독일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③] 역사상 최고 한일전 ‘도쿄대첩’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1997 일본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④] TV 역대 최고 시청률의 전설, 투혼의 벨기에전(1998 벨기에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⑤]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겼나(1999 브라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⑥] 안정환 칩슛-박지성 잉·프에 연속골, 2002 믿음을 갖다(2002 5월 평가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⑦] 이때부터였죠… 사람들이 축구에 미치게 시작한게(2002 폴란드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 박지성, 히딩크 품에 안겨 월드컵 16강을 이루다(2002 포르투갈전)
[韓축구 명경기 열전⑨] 역적에서 영웅된 안정환, 히딩크의 상상초월 전술(2002 이탈리아전)

  • 이탈리아전 두 영웅을 꼭안은 히딩크. ⓒAFPBBNews = News1
▶경기 전 개요

韓축구 명경기 열전⑧에 소개한 포르투갈전을 승리하며 한국축구사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거스 히딩크호는 이미 목표를 초과달성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선수들은 월드컵 첫 승리도 모자라 16강까지 해내자 다소 해이한 마음이 들었다고 훗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16강에 대비한 회복훈련때 취재진을 향해, 그리고 선수들을 향해 단 한마디로 가야할 길이 멀었음을 천명한다.

“난 아직 배고프다(I’m still hungry).”

이 한마디에 선수단은 정신을 번쩍 차렸고 히딩크 감독이 원하는건 단순히 16강 진출이 아닌 아시아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16강 상대는 G조 2위의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유로 2000 4강에 이어 2002 한일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8조에 속해 루마니아-조지아-헝가리-리투아니아와 맞서 6승2무0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월드컵 진출을 확정했었다.

지안루이지 부폰(2002년 당시 24세),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당시 28세), 프란체스코 토티(당시 26세), 파울로 말디니(당시 34세) 등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 남는 선수들이 최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압도적 성적이었다. 2002년전까지만 해도 EPL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이었고 이탈리아 세리에A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고 리그로 군림하던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 본선이 시작하니 이탈리아는 삐꺽거렸다. 최약체 에콰도르를 2-0으로 이기며 산뜻하게 출발하나 했지만 크로아티아에게 충격의 1-2 역전패를 당하며 16강 진출 마저 불투명해졌다. 그나마 조별리그 최종전 멕시코전에서 종료 5분을 남기고 터진 델 피에로의 극적인 동점골이 아니었다면 이탈리아는 16강 진출도 못할뻔 했다.

힘겹게 16강에 올라왔지만 그래도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였다. 전세계는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이탈리아라면 아무리 홈 어드밴티지와 상승세를 탄 한국이라 할지라도 이기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경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 ⓒAFPBBNews = News1
▶안정환이 놓친 PK기회, 이탈리아의 빗장에 묶인 한국

2002년 6월 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탈리아의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 한국은 전반 시작 5분만에 설기현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안정환이 키커로 나서 절호의 기회를 맞는다. 하지만 안정환이 찬 공은 부폰 골키퍼에게 완벽하게 읽혀 막히고 만다.

이때부터 한국은 완전히 꼬였고 이탈리아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카테나치오’, 이탈리아어로 ‘빗장’이라는 이 단어는 이탈리아 축구가 말디니를 중심으로 한 수비축구의 끝판왕임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특유의 거친 축구와 강력한 수비로 한국을 질식시켜왔다.

PK실패 후 2분만인 전반 7분에는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헤딩경합을 하던 수비수 김태영이 비에리의 손에 코를 가격당해 코뼈 부상을 당한다. 이 부상으로 인해 이후 김태영은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와야했을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에리에게 카드도 주어지지 않았다.

PK도 놓치고 핵심수비수도 다친 상황에서 결국 골이 터진다. 전반 18분 이탈리아의 왼쪽에서 코너킥을 가까운 포스트에 있던 비에리가 엄청난 피지컬로 수비경합을 이기고 헤딩골을 넣은 것. 비에리는 한국 관중을 향해 ‘조용하라’는 손가락을 코에 갖다대는 제스처로 골 세리머니를 대신한다.

  • ⓒAFPBBNews = News1
가뜩이나 전반 초반부터 꼬인 경기에 이른 선제실점까지 하다보니 한국은 최악의 경기력을 이어간다. 이탈리아의 빗장에 빠져 한국 축구는 허덕였고 토티는 공중볼 경합 상황에서 김남일의 머리를 손으로 가격해 옐로카드를 받는 등 거친축구로 한국을 눌렀다.

▶히딩크의 역대급 용병술과 대담한 전술적 변화, 동점골을 만들다

전반전을 0-1로 뒤진채 마치고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좋은 경기력은 온데간데 없는 대표팀을 보고 히딩크 감독은 생각에 잠긴다. 일단 선발 멤버를 그대로 믿고 후반전에도 내보냈지만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잡지 못했다.

이때 먼저 이탈리아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이 먼저 움직인다. 수비에 자신있었기에 1-0의 넉넉지 않은 스코어임에도 공격수 델 피에로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인 젠나로 가투소를 투입한 것.

이 교체를 보고 히딩크 감독은 훗날 ‘얼씨구나’하고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고 회상한다. 먼저 공격숫자를 줄이고 수비숫자를 늘리니 한국 입장에서는 수비 숫자를 빼고 공격을 하나 더 넣어도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투소 투입 후 2분만에 한국은 수비수 김태영을 빼고 공격수 황선홍을 투입한다. 곧이어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남일을 빼고 윙어 이천수를 투입한다.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빼고 공격진의 두명을 투입한 것은 가히 도박에 가까운 용병술이자 히딩크 감독이 얼마나 대범한 명장인지 알 수 있는 일화다. 그럼에도 동점골이 나오지않자 후반 38분에는 한국대표팀의 상징과도 같은 ‘주장’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투입하는 초강수까지 둔다.

이런 엄청난 선수 기용과 전술변화는 한국선수들의 ‘멀티플레이어’적인 면모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이 전술 변화로 유상철이 중앙수비수로 내려오고 박지성이 유상철의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왔다. 유상철은 골키퍼 제외 모든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였다.

그리고 홍명보까지 빠지자 설기현-안정환-황선홍-차두리로 이어지는 사실상 4명의 공격수에 이천수가 공격형미드필더까지 본다. 박지성이 오히려 뒤에서 받칠 정도였는데 실제로 박지성은 프로 초창기 수비형미드필더를 봤었다. 이천수는 공격진 모든 포지션에 기용 가능했다.

홍명보까지 나갔을 때는 무려 4-2-4의 극단적 공격전술로 바뀌었다. 어차피 ‘지면 탈락’인 토너먼트에서 동점골을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쉽사리 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추가골을 허용할 경우 경기는 그때 끝이며 이후 이어질 비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AFPBBNews = News1
'명장' 히딩크의 이런 획기적인 용병술과 전술변화는 기적을 불러온다. 종료 2분을 남긴 후반 43분 박지성이 중앙에서 황선홍을 보고 전진패스를 하고 황선홍은 이 공을 그대로 문전에 띄워넣는다. 사실 이 패스는 박지성을 향한 2대1패스로 보였지만 패스가 다소 길고 빠르면서 오히려 이탈리아 수비의 실수를 유발한다. 수비수 크리스티안 파누치가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공이 설기현 앞에 떨어진다. 설기현은 그대로 왼발 슈팅을 날렸고 부폰 골키퍼도 어쩌지 못한 코스로 동점골이 들어간다.

사실 이 경기전까지 설기현은 대표팀의 주전 왼쪽 윙포워드이자 등번호 9번의 선수로 조별리그에서 많은 기회를 놓쳐 비난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이 골 한방으로 설기현은 그동안의 비난을 완전히 날려버린 것은 물론 연장전이 가능케한 영웅이 된다.

▶토티의 퇴장과 골든골의 전설이 된 안정환의 헤딩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로 인해 결국 한국은 연장전까지 끌고 간다. 이 경기는 연장전까지 갈 필요가 없을뻔도 했다. 후반 추가시간 차두리의 오버헤드킥이 부폰 골키퍼 정면에 안겼던 것. 만약 그 오버헤드킥 골이 들어갔다면 차두리는 지금보다 더 대단한 선수로 추앙받고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멋있는 슈팅이었다.

다 잡은 경기를 연장전까지 간 이탈리아는 허탈했고 오히려 기세가 오른건 한국이었다. 하지만 한국도 문제가 있었다. 동점골을 위해 지나치게 공격적인 전술 변화를 가져가다보니 밸런스 유지가 쉽지 않았던 것.

그럼에도 한국은 의지로 수비해냈다. 끈질긴 한국에 이탈리아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냉정함을 잃는다. 결국 이탈리아는 이미 옐로카드가 있던 토티가 연장 전반 13분 헐리우드 액션으로 추가 경고를 받으며 경고누적 퇴장을 당하고 만다. 핵심선수인 토티가 퇴장당하자 이탈리아는 완전히 동력을 잃게 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것은 이날 경기 ‘역적’이 예견됐던 안정환이었다.

  • ⓒAFPBBNews = News1
전반 5분 페널티킥을 놓쳐 이렇게 힘든 경기를 만든 장본인이었던 안정환은 연장 후반 12분 왼쪽에서 이영표의 크로스를 높은 타점의 헤딩골로 연결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연장전에서 골은 골든골 제도였다. 이 안정환의 득점으로 경기는 종료되고 한국은 이탈리아를 꺾고 8강 진출의 기적을 이룬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안정환은 펑펑 울게 되고 전국민도 함께 운다. 이 헤딩골은 골든골 제도를 논할 때 항상 언급되는 득점으로 축구 역사에 남게 된다.

▶경기 후 개요

후반 18분 교체투입된 황선홍은 이 경기를 통해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미국전 머리 부상으로 A매치 100경기가 예정됐던 포르투갈전을 출전하지 못했던 황선홍은 후배들 덕에 얻게된 16강전에서 설기현의 득점에 도움과 다름없는 결정적인 패스를 해내며 제 몫 이상을 해냈다. 아름다운 A매치 100번째 경기였던 셈.

대표팀 막내였던 이천수는 그 유명한 ‘말디니 머리차기’를 하기도 한다. 이천수는 훗날 “워낙 이탈리아 선수들이 거칠게 경기를 해서 말디니가 누워있을 때 공을 차는척하며 일부러 머리를 찼다”고 말해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머리차기 이후 안정환의 골든골 당시 말디니가 안정환과의 헤딩경합에서 진 것을 생각하면 이천수가 골든골의 숨은 공로자이지 않았을까.

또한 토티가 퇴장을 당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이탈리아를 분석한뒤 토티와 비에리가 다혈질적인 성격이기에 주장이자 수비수인 홍명보에게 ‘의도적으로 거칠게 하라. 그들이 파울을 하면 심판에게 달려가 항의를 많이 하라’고 주문했다는 것. 실제로 이같은 플레이에 말려 퇴장이 나온 것이다.

  • ⓒAFPBBNews = News1
이탈리아에서는 토티의 퇴장에 대해 아직까지도 ‘심판 매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토티가 헐리우드 액션으로 퇴장당하는 상황을 다시보면 송종국이 토티의 돌파때 먼저 공을 건드린 상황이후 송종국이 발에 살짝 걸렸다. 하지만 발에 걸리기도 전에 토티는 이미 반쯤 누워있는 상황일 정도로 헐리우드 액션이 다분했다. 실제로 모레노 주심도 훗날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토티는 발에 걸리기전에 넘어가고 있었다”며 자신의 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누차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세리에A의 페루자에서 뛰던 안정환은 골든골로 인해 이탈리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숙소에 있던 이삿짐도 아내가 가서 챙겨야 할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그만큼 이탈리아 내에서 안정환에 대한 여론은 극악에 치달았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이 경기를 ‘심판 매수로 인한 빼앗긴 경기’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직후에는 얼마나 더 심했을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 축구는 이 경기를 승리하면서 월드컵 토너먼트 16강제도가 생긴 이후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는 팀이 된다. 또한 이탈리아는 1966년 북한에게 진 후 2002년 한국에게 지며 한국과 북한에게 모두 월드컵에서 패한 최초의 팀이 된다.

한국 축구사 최초의 월드컵 우승경력이 있는 나라를 월드컵에서 이긴 경기이자 최초의 역전승 경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경기는 훗날 세계 언론에서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경기’로 뽑을 때 항상 탑10에 들어가는 명경기로 남게 된다.

  • ⓒAFPBBNews = News1
  • ⓒAFPBBNews = News1

https://youtu.be/V_CkCizkdF4


https://youtu.be/-tTnbXarlP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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