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이제훈 "박정민·안재홍과 찾은 베를린 영화제, 가장 행복한 순간"
  • 영화 '사냥의 시간'서 준석 역 맡아
  •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 2020-05-21 07:00:22
  • 배우 이제훈 /사진=리틀빅픽쳐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사냥의 시간'의 주연 배우 이제훈을 화상 인터뷰로 만난 순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제훈의 초기작인 '고지전'(2011)의 인터뷰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리고 최근작 '박열'로 대면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일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개봉일이 연기되고 극장 개봉 무산부터 넷플릭스를 통한 전세계 190여개국 동시 공개라는 우여곡절의 상황들이 있었고 영화 공개 후에는 호평 못지 않은 혹평도 따르며 양갈래로 평이 분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니터 화면 저 너머에서 답변을 하고 있는 그에게서는 영화 '사냥의 시간'을 위해 오롯이 배우로서의 모든 역량과 시간을 쏟아 부은 후의 충만한 만족감 같은 것이 전해져 왔다. 매번 인터뷰 자리에서 답을 고르느라 고심하는 모습이나 스스로를 겸손히 내려 놓는 모습에는 익숙했지만 화면을 뚫고 나올듯한 자신감과 욕망을 느낀 건 처음이다.

이제훈이라는 배우를 잉태했다가 세상에 소개시켜 준 영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과 '사냥의 시간'으로 9년 만에 새 작품을 내놓는 만큼 벅찬 감정과 또 그 이상의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특히 '파수꾼'의 동지 박정민과 또래 배우들인 안재홍, 최우식 등 충무로의 새로운 대세로 꼽히는 또래 배우들을 리드하며 프로젝트의 가장 첫 줄에서 달려온 만큼 그에 따른 성취감도 말과 말의 틈새에서 조금씩 배어났다.

이제훈이 '파수꾼'부터 '고지전', 그리고 '사냥의 시간'까지 불안한 청춘의 위태로운 순간의 단면을 제대로 포착해내 날 것처럼 보여주며 가장 큰 장기를 발휘해왔다면 앞으로 필모그라피에서 그가 관객들을 쥐락펴락할 지점은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이 되리라는 걸 감지할 수 있게 했다.

관객으로서 시청자로서 알아채지 못했던 이제훈의 내면 속 야심과 목표가 앞으로 하나씩 펼쳐지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든다. 창작자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흥분되는 법.

- '파수꾼' 이후 박정민과 다시 만난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 극중 상수(박정민)을 만나 돈을 갚으라고 협박할 때 '파수꾼' 생각이 났다. 같은 인물이 아닌데 위협을 가하는 그런 내용이다보니 '파수꾼' 때 기태와 희준이 생각났다. 그 때처럼 때리거나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마 관객들도 '파수꾼'이 오버랩되셨을 거다. 벌써 9년 전인데 그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이렇게 연기 하는게 맞나'하며 두려움으로 연기를 했다. '사냥의 시간'은 박정민도 나도 영화를 많이 하면서 경험치가 쌓이지 않았겠나. 더 편하게 느끼고 즐기려 했다. 현장에 정민이가 올 때마다 의지하며 찍었다. 정민이와 안재홍, 최우식 등 넷이 모일 때 가장 행복했다. 연기를 할 때도 좋았고 대기하면서 세팅을 바꾸는 시간에 농담 따먹기를 할 때도 가장 행복하고 좋았다.

- 추격전이 영화의 핵심 장면이다. 촬영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 개인적으로 추격 액션을 다루는 작품을 볼 때 화려한 모습도 좋지만 실제 현실이라면 쾌감이 있을지 늘 의문이었다. 실제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느끼는 건데 진짜 총이 주는 어마무시한 공포감이 있다. '실제 내가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면 훈련한 대로 쏠 수 있을까' 늘 궁금했다. 군대를 다녀왔으니 총기 다루는 법을 알지만 실제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물건이다 보니 늘 공포감이 있다. 총포상에서 준석이 총을 쏠 때도 그렇고 한(박해수)과의 총격신에서도 그렇고 정말 실감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에서 발 킬머와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의 총격신이 있는데 정말 실감나게 무서운 느낌이 있다. 우리 영화에서도 쫓고 쫓기는 총격신에서 실제와 같은 위협감과 죽음을 앞둔 사람의 진짜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 8년만에 다시 함께 한 윤성현 감독과 호흡한 소감은.

▲ '파수꾼' 이후 윤성현 감독과 함께 할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8년 만에 만나게 됐다.(웃음) 프러덕션이 계획보다 길어지고 후반 작업도 CG나 사운드 그 무엇에도 공을 들였다. 심지어 숨소리 하나까지 픽업해서 채웠다. 영화에 공을 들인 시간 많았고 그렇게 공들이고 나온 만큼 뿌듯했다. 촬영은 너무 힘들었지만 결과물을 보는 과정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네' 싶더라. 연기적 측면 또한 제 스스로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지만 한편으로 저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이 작품 찍으며 어떻게 연기하고 계획을 세우고 했다는 것보다 그 상황에 대해 느끼고 체험하려 했다. '한이 나를 향해 총을 겨눴는데 실제 실탄이 들어있고 그 총을 맞아 내가 죽을 수 있다' 찍는 내내 그 생각을 했고 두려움을 가지고 연기했다. 내가 화면 속에서 공포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나올지 정말 생각도 못했다. '극한 상황에 놓인 내 모습이 저렇구나'를 영화를 통해 확인했다. 준석의 심경을 내가 제 3자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 윤성현 감독의 페르소나로 꼽힐 정도로 두 사람은 예술적 동지로 유명하다.

▲ 제가 '파수꾼'을 만나기 전까지 독립 영화와 단편 영화들을 통해 연기에 대한 경험을 쌓는 과정이었다. 배우라 말하기애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파수꾼'이 첫 장편 영화 주인공이었고 미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기태라는 인물로 온전히 살 수 있게 저를 믿어주고 기태에게 제 삶을 투영시킬 수 있게 도와주셨다. 이후 작품에 있어서 '파수꾼'이 영향을 많이 미쳤다. 한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는 과정에서 태도와 자세, 메쏘드 연기와 리얼리즘의 관계 등 윤성현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스타일의 연기관을 추구하며 성장했고 그렇지 않은 작품들에서도 변주하며 필모그라피를 쌓아왔다. 윤성현 감독의 영향으로 '사냥의 시간'의 준석처럼 매순간 그가 겪는 감정을 느끼려 했고 소통하려고 했다. 이번 영화도 시나리오보다는 윤성현 감독을 보고 뛰어들었다. 박정민도 마찬가지 아닐까.

-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 감정 이입을 가장 크게 한 장면은 지하 주차장에서 한과 직접 대면했을 때이다. 내가 그렇게 벌벌 떨고 할 줄은 몰랐다. '그가 내게 겨눈 총에 실탄이 들어 있고 트리거를 까딱해 발사 된다면 나는 죽는다'는 공포에 계속 사로잡혀 있었다. 영화를 통털어 가장 몰입된 순간이다. 그렇게 표현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보통 한 캐릭터를 만들 때 어떤 이미지적 상상도 있고 계획도 있을텐데 이 작품은 영화 속 상황을 현실로 생각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려 했다. 지금 영화로 보면 참 고생했던 것 같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윤성현 감독은 좋아했을 것 같다. 어떤 순간에는 '영화가 뭐라고 내 인생을 갈아 넣나'하고 느낀 순간도 있다. 매순간 준석이 겪는 느낌을 스스로 느끼려고 했다. 영화를 찍으며 체력이 남아나질 않더라. 준석처럼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빨리 끝났으면 싶더라.

- 관객 입장에서도 지하 주차장 장면은 몰입감이 가장 큰 장면 중 하나다.

▲ 촬영 당시 지하 5층에서 너무 추워서 오돌오돌 떤 것이 기억의 전부다. 패트병 속 물들이 다 얼어 있었다. 긴장감과 공포로 인해서 열기는 가득했다. 한과 맞닥뜨린 순간 실제 내가 죽음을 앞두면 어떤 모습일지 엄청나게 상상했다. 아무도 그런 순간은 경험해 본 적이 없잖나. 가장 긴장한 경험이라고 해봤자 중학교 때 무서운 불량배들에게 돈을 뜯길 때 심장이 쿵 내려 앉은 경험 정도 아닐까. 중학교 때 실제 경험하면서 많이 무서웠다. 또 수영을 못하는데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나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앞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나도 밟게 되는 순간 정도? 영화 속 극강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이 총을 발사하면 내가 죽는다'를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그 공포감을 필름에 담고 싶었고 그 때의 공포 체험이 고스란히 담겼더라. 액션 대역 연기자가 연기해줄 수도 있는 장면이었는데 안재홍이 직접 운전을 하며 연기해줬다. 그래서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 3~4회차 만에 끝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배의 시간이 걸렸다. 장호가 총을 맞고 쓰러져서 제가 절규하는 장면도 스스로 촬영하며 '어떻게 이렇게 미친듯 절규하지'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쓰러진 장호를 제가 부축해 데려가는 부분에서는 안재홍이 온 몸의 힘을 빼고 연기해 제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던 경험이 있다. 힘을 다 빼고 정말 메소드 연기를 하더라.(웃음)

- 준석과 실제 이제훈 사이에 닮은 점이 있나.

▲ 윤성현 감독이 그런 모습을 찾아내서 만들어준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파수꾼' 때도 내 중고등학교 시절 모습이 묻어난 부분이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거칠게 떠들고 했던 모습을 기억해서 준석을 연기했다. 박정민이 연기한 상수의 돌아다니다 맞을 것 같은 그런 짠한 모습이나 가족 생각을 많이 하는 이 친구들의 공통점, 또 장호처럼 주목 받고 싶어하는 마음 등 많은 부분이 다 나의 일부분인 것도 같다. 다만 한과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

- 영화의 결말에 동의하면서 촬영에 임했나.

▲ 윤 감독님과 대화하며 느낀 메시지는 있다. 준석이 다시 돌아가잖나.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할 수 있다. 쫓기고 쫓기다가 다시 복수를 하러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주위 친구들이 다 떠나고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목적은 달성을 하잖나. 그럴 때 인생이 더 허무하고 외롭지 않을까. 자신이 사냥감으로 쫓기지만 결국 사냥꾼으로서 있던 자리로 회귀한다. 단순히 볼 수도 있겠지만 해석에 대해 특별히 윤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늘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선택으로 지금의 이제훈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다. 그 선택을 나는 어떤 태도로 받아들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때로는 감사히 받아들였고 때로는 회피하고 도망간 적도 있다. 그 선택의 결과를 무시한 적도 있다. 배우로서 인생의 길을 걸으며 때로는 유토피아 같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스타로서의 삶이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젠가 연기를 그만둘 수 있느냐는 질문도 듣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러지는 못하겠다. 세상이 나를 외면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늘 연기하고 싶은 사람일 것 같다. 극 중 한의 존재가 현실이라고 받아들였다. 다음 스텝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은유적으로 대입하며 느끼곤 했다. 삶에 여러가지 모습과 방향성이 있겠지만 어떤 선택을 한 결과가 부정적이라 해도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

- 박정민이 쓴 책 '쓸만한 인간'에서 대놓고 이제훈을 칭찬하는 대목이 있더라. 반대로 박정민 칭찬을 해준다면.

▲ 정민이와는 오래 본 사이지만 지금 충무로에서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고 또 그런 역할을 하는 배우 아닌가. 타이틀롤로서도 좋은 작품들을 내놓고 있지 않나. 윤성현 감독과 또 저와의 인연으로 '사냥의 시간'에서 임팩트 있는 상수를 연기해줘 정말 고마웠다. (출연 분량이 길지 않음에도) 홍보도 열의를 다해서 해줬다. 베를린 영화제에 같이 갔을 때 제 영화 인생 중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일 거다. 영화적 동지들과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그런 결과물로 '사냥의 시간'으로 베를린 영화제 때 정민이를 비롯해 동료 배우들과 레드카펫을 밟은게 감개무량하고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현지 숙소 제공이 안돼서 박정민이 에어비앤비로 감독과 배우들이 머물 숙소를 잡았고 이틀 동안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동 퀵보드도 타고 웃고 떠든 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 안재홍, 최우식, 박해수와의 호흡도 궁금하다.

▲ 안재홍이나 최우식도 독립 영화를 통해 성장한 배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언젠가 함께 연기 하고 싶었고 제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진 걸 보면서 부러워함과 동시에 그들과 함께 할 때 나는 어떨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이게 된 게 신기하고 꿈만 같았다. 정말 쉽지 않지만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박해수 형도 마찬가지다. 이미지적으로 볼 때 '정말 이 사람이야말로 한이다'라는 느낌이 확 왔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며 이미 엄청난 팬이었다. 실제로 만나 보니 제가 만났던 배우 중 가장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다. 아마 박해수 형을 아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거다. 극 중에서는 엄청나게 무서운 사람이니 그 간극을 옆에서 지켜보는게 신기했다. 안재홍, 최우식 두 사람은 배려심이 깊고 다른 이들을 존중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 배우는 제가 형인데도 불구하고 형이고 싶지 않았다. 친구이고 싶고 동생이고 싶었다. 너무 저를 존중해주고 아껴주니 제가 그들을 많이 의지하게 됐다. 영화를 찍기 전부터 촬영한 순간, 그리고 그 후까지 가장 애틋한 영화다. 어려운 순간을 같이 위로하며 함께 했기에 이 친구들이 너무 소중하다.

-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개봉이 어려워지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190여개국 동시 공개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과 만났다. 소감은.

▲ 제 일상에서 중요한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넷플릭스에서 제 영화를 보여드리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플랫폼을 통해 빨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190개 국가의 관객들에게 영화가 보여지는 것도 굉장히 설레는 일이다. 영화를 본 분들의 리뷰를 찾아봤는데 너무 신기했다.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즐기며 봐주신 것 같고 윤성현 감독의 목적도 도달된 것 같다. 윤성현의 장르 영화가 가진 특징이 잘 전달됐다고 본다. 윤 감독이 앞으로 최소 2~3년에 영화를 한 편씩 만들면 좋겠다. 저도 계속 그의 작품에 출연하면 좋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장르는 기존 극장에서 2시간을 앉아 보는 것이었다면 이제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기기, TV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2시간 이상일수도 혹은 이하일수도 있는 다양함을 가진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가 탄생했듯 새로운 형식의 영화들이 계속 탄생될 것 같다.

- 이제훈에게 '사냥의 시간'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 '고지전' 때 '다시는 전쟁 영화를 못하겠구나'라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이번에는 그 이상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막상 끝나고 보니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더 성장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사냥의 시간'을 촬영하는 동안 경험의 축적이라는 것이 엄청 났다고 느낀다. 나를 크게 성장시켜준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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