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간접고용’ 방식 만연…‘무늬만 정규직화’ 논란 분분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지만 노사 간 협의 과정에서 파열음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사진=연합)

강민경 기자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노동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문재인 1호 정책’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실현할 첫 번째 기관으로 인천공항공사를 꼽았다.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그 자리에서 그 해 연말까지 비정규직 1만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화답하고 이후 TF를 발족했다. 인천공항공사를 시작으로 여러 공기업 및 공공기관은 정부가 배포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제로화에 가세했다.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화에 대한 성공 사례를 강조했고 언론 역시 이를 연이어 조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사뭇 달랐다. 노사 간 협의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이 지나치게 무시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컸다. 특히 파견ㆍ용역 노동자들에 대한 공공부문 정규직화에 있어서 사측이 ‘자회사(인력전문회사) 정규직’이라는 특수한 형태를 유도 및 강요하는 사태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자회사’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자회사 간접고용을 위해 협의기구 구성 단계에서부터 사측 입장 대변이 유리하도록 구성원 비율을 지정해 이른바 ‘짜놓은 판’이라는 노동계의 비판 여론이 강했다. 용역업체 소속일 때와 대비해 임금이 하락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협의기구 구성 부실로 편향된 논의 우려

지난 1년간 공공부문 비정규직(기간제 및 파견ㆍ용역) 노동자 13만3000여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이는 정부가 2020년까지 정규직으로 단계적 전환하겠다고 밝힌 목표 인원(17만4935명)의 75.8%에 해당된다. 고용 형태별로 살펴보면, 기간제 노동자는 1년차(2018년 상반기) 잠정전환인원 7만2354명 가운데 6만6745명(92.2%)을 전환 결정했고, 파견ㆍ용역 노동자의 경우엔 잠정전환인원 5만9621명의 110.6%에 달하는 6만5928명을 전환 결정해 소폭 상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노동계는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으론 곪고 있다”며 “속도전으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이고, 중요한 것은 정규직의 양이 아닌 질”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간제 노동자들보다 파견ㆍ용역 노동자들의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다.

정부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기간제와 파견ㆍ용역 노동자에 대한 전환대상 결정방법 및 전환방식이 상이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기간제는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통해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시돼 있는 반면, 파견ㆍ용역의 경우엔 ‘노사 및 전문가 협의를 통해 직접고용 및 자회사 등 방식을 결정’하라고 적혀 있다.

파견ㆍ용역 노동자들은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사측이 왜곡해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사 및 전문가 협의회 구성원 지정에서부터 사측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고 이후엔 자회사 간접고용안에 대한 사측의 밀어붙이기식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9월 은행권 최초로 파견ㆍ용역 근로자를 대상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한다고 밝히며 노동계 안팎의 호평을 받았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경비ㆍ시설관리ㆍ미화ㆍ사무보조ㆍ조리ㆍ운전 등 6개 이상의 직군 2000여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이었다.

기업은행은 노사전 협의기구를 구성해 파견·용역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방법과 절차 등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협의기구는 △노동자 측 대표단 10명(파견·용역 대표 8명, 정규직 노조 2명) △기업은행 측 대표단 7명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것은 애초부터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는 것이 기업은행 파견ㆍ용역직 직원들의 입장이다.

배재환 기업은행 노동자 대표단 간사(경비직군)는 “노동자 대표 10명 가운데 8명이 파견ㆍ용역 대표이고 나머지 2명이 정규직 노조 간부인데 이들은 사실상 사측 입장과 궤를 같이하고, 전문가 3명은 과거 기업은행의 업무를 맡았던 노무사 및 변호사로 구성됐었다”며 “결국 파견ㆍ용역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구성원이 협의기구 총 인원 20명 가운데 8명에 불과해 균형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산업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산업은행 노사전 협의기구는 △노동자 측 대표단 6명(파견·용역 대표 4명, 정규직 노조 2명) △산업은행 측 대표단 6명 △전문가 4명(산업은행 측 선정 3명, 정규직 노조 측 선정 1명)으로 구성돼 지난해 10월 30일부터 1차 회의를 시작했으나 “총 인원 16명 가운데 파견ㆍ용역직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원이 4명에 불과하다”는 항의에 지난 7월 25일 14차 회의 때부터 노동자 측 대표단에 파견·용역 대표 1명, 전문가(파견·용역 측 선정) 1명이 각각 추가됐다.

이러한 협의기구 구성의 문제점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는 비판을 받았고 협의 진행 역시 편향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양사 내부에서는 “은행 측이 모회사 직접고용과 자회사 간접고용 두 가지 방안 가운데, 직고용은 처음부터 접어두고 자회사로의 고용만 노동자 대표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기 시작했다. 양사 파견·용역직 대표들은 협의회 구성부터가 균형적이지 않으니 객관적인 연구용역 및 공청회를 실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협의 과정 내에 객관적 수치 및 데이터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김세진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정책국장은 “가이드라인에 파견ㆍ용역직에 대한 노사전 협의회 구성 관련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아 이 빈틈을 사측이 악용해 본인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것”이라며 “직접고용이냐 간접고용이냐 등에 대한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차인데, 객관적인 제3의 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기는 등의 절차를 생략하고 입맛대로 밀어붙이면 파견ㆍ용역 노동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규직 전환자 임금이 하락하는 황당한 경우도

파견ㆍ용역직을 포함한 노동계가 자회사로의 정규직화에 우려를 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질적 노동조건의 결정권을 원청인 모회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서의 자회사는 공공기관이 출자한 기업을 의미하며 통상 모회사의 업무를 위탁받거나 대행한다. 이 때문에 모회사가 자회사 임원 및 임금체계 등에 대해 임명 및 지도ㆍ감독하는 구조이며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법적인 책임은 부담하지 않는다. 모회사가 자회사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지니지만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자회사 노조가 사측과 교섭을 하더라도 모회사에게 실질적인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실효성을 갖기도 어렵다.

일부 공공기관에서 거론되는 ‘자회사’는 기존에 존재하던 공공부문 내 자회사와도 성격이 상이한 경우가 있다. 특히 기업은행의 경우 ‘인력전문’의 특성을 지닌 신규 자회사를 설립한 후 여기에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배치하겠다는 것을 방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측은 “직군의 특수성을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파견·용역 노동자들은 “인력전문 자회사는 용역업체의 또 다른 껍데기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공기관들이 자회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인건비를 꼽는다. 대부분의 직접고용 정규직 임금체계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으로 작용하는 반면, 자회사 간접고용의 경우 독립적인 임금체계 수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애초에 임금체계 구분을 위한 자회사 방안이기에 용역에서 자회사 직원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체감 가능한 근로조건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 노동계 안팎의 얘기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파견·용역 노동자들의 임금 내에서 용역업체에게 즉시 지급되는 기업이윤 및 일반관리비 등을 처우개선에 사용하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만 자회사 간접고용 시 임금은 대부분 동일하고 오히려 하락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자회사 내 임금테이블 신설에 따라 임금이 조정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이 발생했고, 한국공항공사도 자회사 관리직이 불필요하게 늘어 임금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세진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정책국장은 “자회사로의 간접고용에서도 ‘고용안정’이라는 장점은 물론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에 맞춰 임금이 소폭 상승하거나 이마저도 힘들어 임금 동일 혹은 오히려 하락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노동자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은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공공연대노동조합이 공공부문 정규직화에 대한 각 기관 측의 자회사 간접고용안을 반대하며 규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공공연대노조)
이어 김 국장은 “기존 정규직(사무직)의 고액 임금과 동일하거나 그와 비슷한 임금을 받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역차별 및 공정성에 대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노동계 내에서도 기존 사무직과 미화ㆍ경비ㆍ시설관리 등 직군은 특성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단지 열악한 처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니 직접고용 시에도 호봉제 신설 등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논의해줄 것을 건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한 발 빼고 공공기관은 정부 눈치 보기

노동계 및 정치권에서는 다소 성급한 노동 정책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자회사 전환’ 방식이 노동자 간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규직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적 시각이 주를 이루며 정부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정책 진행에 대한 지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공공부문은 정부 눈치를 보며 실적 쌓기에 나서고 정부 상급단체는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통해 정책 추진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는 법적 효력이 없고 문서 내에 ‘노사 협의를 통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어 사측이 밀어붙이기식 진행을 이어가도 정부 상급단체에서는 노사 간의 문제이므로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과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에 성공했다고 생색내겠지만 이대로 진행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 입장에선 빛보다 그늘이 더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상 노사 간 협의는 양측의 힘겨루기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비정규직의 경우엔 노조 결속력이 기존 정규직 노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취지에 맞는 정규직화가 이뤄지려면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종민 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통해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는다는 측면은 분명 진전된 부분이긴 하나 실생활에 와 닿는 처우 수준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결국 협상력의 문제”라며 “그 이유는 전체 비정규직 노조의 결속력이 2%에 불과해 협상력에서 밀리는 상황이기 때문인데, 이 점을 정부가 간과하지 말고 시행령 이상으로 강도를 높여 상급단체·기관이 중립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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