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예산’ 정책 구체화해야…돌봄시설 등 육아인프라 확대 시급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052명이다. 사상 최저 수치다. 합계출산율이 곧 0명대로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적인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한 집에서 평생 1명의 아이를 낳는다는 통계 수치다.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대에서 1.2대 수준에 머물렀다. 2016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간한 ‘월드팩트북(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2016년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5명이었다.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세계 224개국 중에서 220위의 기록이다.

정부의 출산율 대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역대 최저 합계출산율인 1.052명을 기록했다. 연합

여성의 ‘출산 도구화’ 상기시키는 정책 바뀌어야

한국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가장 최근 대책은 지난 2015년 10월에 발표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 목표치는 1.5명이다. 하지만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지속적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출산ㆍ고령화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해온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2006년부터 저출산 관련 정책이 본격화됐지만 지금까지도 정책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 낳으라’는 식으로 여성을 ‘출산 도구화’했다”며 “대표적인 것이 3차 기본계획이다. 출산율 목표 1.5달성 비전제시가 나온다. 출산을 장려하고 극복하는 대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관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일자리,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남성들은 결혼하려하겠지만 여성들의 독박육아, 경력단절 등의 우려는 여전하다”며 “이 문제에 대한 비전제시 없이 아이를 낳으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출산 예산의 비효율성...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구분 없어

정재훈 교수는 정책수단의 효율성에도 의문을 제기 했다. 현재 출산예산은 목표에 따른 체계화가 미흡하다. 예산 편성의 기준을 명확하지 않고 정책편성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지금 출산예산은 각 부처에서 보내 온 예산 목록을 합친 것이다. 정 교수는 “130조의 예산 안에 각종 소프트웨어 지원 사업, 학교폭력예방사업, 성폭력예방사업 등도 포함됐다”며 예산의 효율성을 지적했다. 이 중에서 저출산 대책과 관련된 가족복지와 사회복지 예산은 체계적으로 확립돼 있지 않다. 130조를 다 쏟았는데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저출산 대책은 ‘아동수당’ 지급 등 현금 지원 중심이다. 하지만 단발적인 현금 지원 정책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일과 양육을 실제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정부가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를 실제적으로 뒷받침하고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은 육아와 관련된 일이라면 업무 중에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출퇴근이 고정되지 않고 탄력적이다. 자연스러운 인식이다. 최 교수는 “미국은 대학에도 아이를 맡아주는 곳이 따로 있다. 아이가 있는 학생과 교수를 위한 공간”이라며 육아 인프라가 널리 깔려 있다고 말했다. 출산 유인책으로서 수당지급과 같은 단기적 처방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결국 일과 양육의 병행을 위한 실제적인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출산율이 높아진 나라도 재정지원 때문이 아니었다”며 “양육할 수 있는 분위기가 확립돼야 한다. 육아에서도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 정책과 더불어 그런 사회문화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구 급감 충격, 여성과 노인의 경제 참여 제고해야

지속적인 저출산은 ‘인구절벽’을 초래한다. 인구절벽이란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감소하는 현상이다. 최진봉 교수는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연금도 점점 고갈되고 노후보장이 불확실해진다. 고령사회에서 노인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교수는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사회 경제적인 충격을 우려했다. 충격을 견디기 위해 적절한 인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정재훈 교수는 노동생산성의 획기적인 향상에 대해 언급했다. 여성고용률 통계 수치와 노인 인구 개념의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여성고용률을 핵심으로 들었다. 그는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여성의 고용률이 50%밖에 안 된다. 여성고용률이 80%정도로 올라가는 과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에 따르면 2060년대에 100명이 80명을 먹여 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수치엔 여성의 고용률 상승이 반영돼 있지 않다. 이어 그는 “64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는 개념도 바뀔 것이다. 미래엔 노인들도 일하는 사회가 된다”며 극도로 비관적인 시나리오만을 부각시킬 필요도 없다는 뜻을 내놨다.

실효적 정책으로 중산층 움직여야…프랑스 사례

저출산 대책의 공통된 지적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소득대체효과가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정재훈 교수는 중산층에도 소득대체효과를 누리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금지급 중심의 대책은 단기적으로 저소득층에만 효과를 준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중산층의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으면 인구의 질적 저하 현상이 벌어진다”며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등의 국가적인 인프라 서비스를 높여야 한다. 서유럽 국가가 그랬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저출산 문제를 효과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정 교수는 “프랑스는 양육에 있어서 인프라든 현금 지급이든 골고루 지원하는 나라”라며 “독일이 프랑스 정책을 벤치마킹했다. 프랑스는 가족복지지출이 OECD 평균보다 높다. 중산층을 움직이려면 인프라 중심의 정책이 잘 마련돼야 한다.

독일이 프랑스의 정책을 벤치마킹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은 저출산 대책에서 현금 지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중산층의 출산이 늘지 않았고 출산의 양극화가 벌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 독일은 어린이집 등 돌봄시설을 확대하면서 효과를 봤다. 정 교수는 “20년 간 1.3에 머물던 독일의 출산율이 2007년 이후 최근까지 1.6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금 지급과 출산율이 비례한다는 국내의 일부 보고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광주전남 지역이나 지방의 소도시에 한정된 이야기”라며 “서울 및 인천 지역의 경우엔 현금 지급과 출산율의 비례관계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금 지급과 출산율의 비례성이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청년층 주거 및 일자리 문제, 노동인구 부족 문제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경제기반이 갖춰져야 한다. 출산율 문제는 주거 및 일자리 등 경제와 복합적으로 맞물린다. 그래서 정부도 최근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장기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대표적이다. 최진봉 교수는 “젊은이들의 장기임대주택,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지는 전체적으로 외곽에 있다. 외곽에 있더라도 인프라를 잘 갖춰줘야 한다. 교통문제나 생활인프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성태윤 교수도 “주거 및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청년층에 대한 사회복지 차원의 넓은 개념이다. 사회경제에서 중요한 대상이라는 범위에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인구 부족’은 출산율 저하의 또 다른 문제다. 이주민들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제도 보완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진봉 교수는 “이주 노동 현상은 저출산이 심화되면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다만 법적인 관리가 잘 돼야 한다. 다른 목적의 불법 이주 노동은 철저히 관리하는 등의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재훈 교수도 관련 제도의 보완을 언급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석박사 학위를 한 사람들이 한국에서 취업할 수 있게 유도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에 온 고급 노동인력을 제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인구절벽'이 현실이 되고 있다. 연합

고령사회에서 노인 노동력 활용 문제 중요해져

저출산 문제는 자연스레 고령사회로 이어진다. 노인층의 재취업 등 노인 인구의 활용도 언급된다. 고령층의 재취업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이 나오면서 고령층에 특화된 일자리가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공공분야의 파트타임 업무 등이 그 예다.

최 교수는 “은퇴한 분들은 파트타임 근무도 충분하다. 공공영역에서의 관광안내요원 같은 업무가 그렇다”가 그렇다고 말했다. 성태윤 교수는 노동생산성을 강조했다. 성 교수는 “노인이지만 일할 수 있는 분들은 하면 된다”면서도 “노동시장에서 생산성을 반영하는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데도 무조건 일을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이 문제는 사회복지를 통해 해결 할 수 있다.

그는 이어 “결국은 생산성에 맞게 일을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회안전망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재훈 교수는 예방의학에 기초한 노인의 건강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건강진단을 통해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노인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는 복합적이고 폭넓은 문제다. 따라서 정부의 구체적인 비전제시가 뒤따라야 한다. 오는 10월엔 수정 보완된 저출산 기본계획이 발표된다. 정재훈 교수는 정부가 가장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으로 ‘성평등’과 ‘예산의 재구성’을 꼽았다. 정 교수는 “최근 정부는 출산율 목표 제시도, 저출산 극복, 출산장려란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출산의 도구화로 느껴지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와의 출산 정책 엇박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 교수는 “지자체는 아직도 출산율 목표치 제시, 이혼남녀 맞선행사와 같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출산을 도구화하는 정책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출산 예산 목록을 세부적으로 체계화하고 점검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문학적인 출산 관련 예산이 실효성을 갖기 위함이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