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노스의 감동단편 다이제스트] ⑥ 천국에서의 소원
  • 비울수록 채워지는 것에 감사하고,감사할수록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
  • | 2019-05-13 11:17:43
타협이 사라진 정치, 양극화에 시달리는 경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이해충돌 속에서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부모의 경험이 더이상 자식의 지혜가 되지 못하는 시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이다. <주간한국>은 따듯한 감성의 기족 이야기를 애정 어린 필체로 풀어놓으면서 온가족이 다시 한번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민호 작가의 글을 격주로 소개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호흡하고 있는 필자의 작품들을 ‘미노스의 감동단편 다이제스트’로 재각색한 주옥 같은 글들을 통해 우리 삶의 영원한 디딤돌인 가족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꽃 피고 따스한 천국의 정원에 어머니들이 모여 나비들을 보고 있었다. 한 아들을 키우며 오직 세상의 선한 섭리를 믿으며 작은 거짓도 용서받지 못할 죄악으로 여기고, 봉사함을 은총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거룩한 어머니들이었다.

신은 이들의 선함을 잘 아시는지라, 이 어머니들이 아들을 낳을 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었다. 해산의 진통이 쥐어짤 때 천둥같이 큰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가여운 어머니여, 네 어려움을 내가 아노라. 아들에게 들어줄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 내 어여삐 들어주겠노라.”

어머니는 태어날 아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축복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떤 소원을 말할 것인가?’

어머니는 번민에 빠지고 말았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하려면 무엇을 소원해야 할까?

결단을 내릴 수 없어 진통에 땀을 흘리며 초조해했다. 출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순간에 신에게 외쳤다.

“오, 신이시여……”

어머니들이 신께 외친대로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제 천국의 정원에 모인 것이었다.

한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저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돈을 마음껏 쓰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부자를 소원하지는 않았어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보다는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했지요.”

“오, 좋은 소원을 기도하셨군요.”

또 한 어머니가 말하였다.

“저는 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힘 있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권력이라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빌었지요.”

세 번째 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오, 사랑받을 때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들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어머니가 말하였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답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샘솟게 하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기를 소원했지요.”

네 명의 어머니는 꿈에 젖은 표정으로 신의 축복과 은혜를 감사하였다.

첫 번째 어머니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래서 아드님은 부자가 되었나요? 돈을 많이 쓰면서 행복하게 살았나요?”

“아들은 돈을 많이 버는 부자가 되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돈을 엄청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은행가가 되었어요.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마음껏 쓸 수 있게 해주었지요. 금융과 투자의 천재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마음껏 돈을 주물렀죠. 그리고 재무부 장관이 되었어요. 아들의 경제이론에 반론을 펴는 사람은 없었어요. 한 나라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진 부자는 없지요. 어마어마한 나랏돈을 마음대로 썼어요. 아들은 말했죠. 세상의 부자는 둘로 나뉜다고요. 돈을 많이 ‘가진’ 사람과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요. 누가 진정한 부자일까요? 자기가 진정한 부자라고요.”

“그래서 행복해했나요?”

“……”

“우리 아들은 정말 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대통령이 되었나요? 정치인? 아니면 검사? 장군이 되었나요?”

“아니에요. 우리 아들은 명쾌하고 날카로운 명논설가가 되었어요.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잖아요. 언론은 무관의 제왕이었어요. 돈도 없고 지위도 없었지만 정말 힘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죠. 아들의 말이 곧 여론이 되었어요. 그 무서운 힘이란$ 대통령도 공무원도 아들의 혀끝으로 자리를 내놓았죠. 많은 사람을 구속시키고 석방시키곤 하였어요.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무척 노력했답니다.”

“행복하셨나요? 아드님?”

“……”

사랑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세 번째 어머니가 말하였다.

“저는 세상 누구에게도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진정한 행복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소원을 이루어 주셨어요.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름다웠어요. 누구든지 반해 버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아들에게 사랑을 고백했어요. 말도 아름답게 잘했어요. 아들이 이야기하면 넋을 잃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들은 최고 인기자가 되었어요. 누구나 아들을 도와주고, 가까이 하고 싶어 했지요. 모든 성공을 다 거두었죠. 사업도 정치도 공부도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모두 우리 아들을 사랑했으니까요. 돈, 권력, 명예, 지위 모든 걸 가졌답니다. 누구든지 아들을 부러워했지요.”

“정말 좋은 소원을 이루어주셨군요. 아드님은 그래서 행복하셨나요?”

“……”

네 번째 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아들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유명 인기 연예인이 되었어요. 진정한 즐거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어야죠. 아들은 말했어요. 세상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인생의 비밀스런 속살을 몰래 엿보는 것이라고요. 그런 연기를 했어요. 아들은 세계적인 연예인이 되었죠. 사람들은 아들의 얼굴과 손을 만져보는 것이 기쁨이었어요.”

“오, 정말 그렇게… 아드님은 정말 행복했겠네요. 작품 활동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즐거워했을 테니까요.”

“……”

어머니들의 마음은 맑고 선하며 정직했다. 그러나 아들의 행복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모두들 침묵하며 묵상을 하곤 했다. 그 아들들은 모두 행복하였나요? 첫 번째 어머니가 말했다.

“아니었어요. 아들은 아끼지 않고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욕심 부리거나 나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아들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들끓었지요. 어려워서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 큰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많았죠.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들이었어요. 여인들은 아들의 사랑스런 눈을 보며 돈을 이야기하고, 아들의 지갑을 보며 사랑을 이야기하더군요. 늘 누군가가 아들 곁에 다가왔지요. 아들은 아내를 여러 번 바꾸었어요. 그런 말 있잖아요?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가 바뀌고, 돈이 많아지면 아내가 바뀐다’고요. 아들은 진정한 아내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따스한 가정 없이 진정한 행복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보람을 느끼곤 했지만 보람찬 생활이 행복한 생활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모두 숙연해졌다.

두 번째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아들을 보면서 권력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감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어요. 언론은 대통령보다도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아들은 펜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고 말했어요. 법도 재판도 필요 없이요. 세상의 교사이자 검사이자 판사 세 사람의 힘을 모두 합한 힘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잘 모르지요. 자기가 아는 것은 대부분 언론으로부터 배운 것일 뿐이라는 걸요. 그러나 아들이 행복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어요.교만했거든요. 힘없는 자를 위한다고 했지만, 자신을 비난하는 걸 참지 못했어요. 자신의 선과 정의가 세상의 선이자 정의로 단정했어요. 외로웠어요. 아들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너무 많았던 거죠. 아들에게 진심을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들이 그만둔 후에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어요. 외로움이 닥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한 사람이겠어요?”

어머니들은 또 숙연해졌다.

단 한 가지 소원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이 되었다.

“제 아들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사랑은 온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모든 것을 아들이 뜻한 대로 이룰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들은 진실된 행복이 없었어요. 사랑의 기쁨은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에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거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을 고백할 때 고통스러워 했어요. 사랑하려 해도 사랑이 생기지 않을 때 고문을 받는 것 같다고 했어요. 아들의 마음은 늘 얼음장처럼 차가웠어요. 차라리 미워해 주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했지요.사랑을 받는 것으로 모든 걸 이루었지만 행복은 이룰 수 없었어요. 사랑에 지쳐 불행했어요. 사랑은 주어야 하는 것이었어요.”

마지막 어머니가 조용히 말을 하였다.

“아들은 유명한 인기 연예인으로서 명성과 부를 얻었습니다. 아들은 인간내면의 오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아들의 연기에 사람들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기뻐 손뼉을 치는가 하면, 분노와 흥분에 몸을 떨었죠.

‘어찌 인간의 심장을 멈추게 하면서 피는 더 솟구치게 한단 말인가?’

아들은 가수이기도 했고 문필가이기도 했어요. 아들이 발표하는 작품들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위안을 주었죠. 그렇지만 웃기면서도 웃을 수 없었고, 즐겁게 하면서도 즐거울 수 없었고, 격정에 사로잡히게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냉정했어요. 아들의 생활은 겉과 속, 낮과 밤, 무대의 앞과 뒤가 다른 것이었어요. 타인을 위한 몰입이라는 것이 주는 희열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는 늘 자신이 타인이라고 말했어요.”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소원에 대해 깊은 묵상을 하였다.

과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 어머니가 말하였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의 평화’가 아닐까요? 마음이 평화로울 때 비로소 내면의 행복이 느껴지는 것 아닐까요?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사랑도 모두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으니까요. 성취나 보람도 행복은 아닐 것 같아요.”

“그렇군요. ‘마음의 평화’……”

진정한 행복일 수 있겠네요. 하지만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부족하지만 만족스러운 평화를 얻으려면 무슨 소원을 말해야 할까요?”

“그래서 그토록 번민했었지요. 해산의 진통보다도 더 아프게… 그렇지만 무엇일까요? 그 부족한 소원이…”

이때였다.

하늘에서 천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선하고 가여운 거룩한 어머니들이여.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을 말하라. 아들에게 다시 들어주겠노라.”

어머니들은 신에게 무릎을 꿇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저희들이 생각하고 생각하여 소원을 말하겠나이다.”

신은 하루의 시간을 주셨다. 현명하고 참을성 있고 양보심 강한 어머니들은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였다.

이튿날이었다.

“무엇을 소원하겠느냐? 지혜롭고 충직한 어머니들이여.”

네 어머니는 모두 한 목소리로 동시에 외쳤다.

“신이시여. 저희들의 소원은 어떤 역경에 빠져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신은 소원을 들어 주셨다.

소원이 이루어지자 아들들은 하루 아침에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돈을 마음껏 쓰던 아들에게 갑자기 불투명하게 돈을 쓴 것에 대한 비난이 창살처럼 쏟아졌다.

펜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아들에게는 궤변으로 국민을 호도하였다는 비판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사랑을 받았던 아들에게는 위선자라는 고발이 줄을 이었다.

명성을 날리던 연예인은 사생활이 문란하고, 부도덕했다는 욕설이 난무했다.

아들들은 급작스럽게 닥친 파멸의 늪으로 떨어져버렸다.

회복할 수 없는 파탄이었다.

이때였다.

아들들의 마음속에서 이제까지 못 느꼈던 따뜻한 불꽃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비난과 실패와 누명의 화살이 꽂혀올수록 불꽃은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감사의 모닥불이었다.

그들을 비난하고 뒤돌아서는 저들이 밉기는커녕 그렇게 사랑스럽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눈물이 용천수처럼 솟아올랐다.

아들들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충만된 행복감이 차올랐다.

아들들은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신이 말했다.

“행복이란 물 항아리 바닥에 쌓여 있는 금화 같은 것이노라. 금화를 얻기 위해서 물을 비워야 함에도 물을 채우느라 금화를 보지 못하는 아들들아. 비울수록 채워지는 것에 감사하고, 감사할수록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노라.”

천국에서의 어머니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 미노스 최민호 작가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퇴임후 미노스라는 필명으로 작가로 변신해 단편집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딸이니까”를 출간해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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