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하고 세련’ ‘공격형 영도’… 하노이 북핵 노딜로 상처난 자존심 회복 노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이슈의 숨가쁜 전개 속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박영자의 북한읽기’를 통해 북한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변화의 양상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편집자 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강도 배움의 천리길 학생소년궁전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1일 보도했다.

최근 소강상태에 있던 북·미 및 남·북 간 협상 재개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지난 6월 12일자 북한의 조선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에는 약 1만자에 해당하는 장문의 논설이 게재되었다. 논설 제목은 “위대한 김정은동지는 우리 국가의 존엄과 위력을 만방에 떨쳐 가시는 만고절세의 애국자이시다”이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약 8년 간 북한은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에 비해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를 자제하였다. 그런데 금번 논설을 통해 우상화를 본격화하는 모양새이다. 또한 우상화 프레임의 변화가 드러났다. 구체적 우상화 프레임을 중심으로 그 의미와 함께 현 시기 의도와 목적을 살펴보자.

충성의 내면화 위한 우상화 논리

우상화 프레임은 ‘충성의 내면화’를 위한 집단적 인식의 틀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상(偶像)에 대한 자발적 충성 논리가 갖추어져야 한다. 즉, 북한 주민들이 ‘왜 김정은에게 충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리화 및 설득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금번 노동신문의 논설에는 그 작업의 결과가 선보였다. 정치공동체에서 충성을 위한 우상화는 신화(神話), 고난, 필연, 영광, 유일성의 서사 구조를 보인다. “오늘 세상사람들은 신화적인 기적을 목격하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금번 논설에는 먼저 신화적 서사가 두드러진다.

뒤이은 문장인 “전대미문의 침략위협과 가혹한 제재봉쇄 속에서 우리 공화국이 세계정치의 중심에 우뚝 올라서리라는 것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이 경이적인 사변은 하늘이 가져다준 우연이 아니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안아오신 력사의 필연이다”에서는 고난과 필연, 그리고 영광의 서사가 두드러진다. 이어 김정은처럼, “최악의 역경 속에서 그처럼 짧은 기간에 나라의 운명과 지위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무궁한 평화번영의 새시대를 펼쳐놓은 정치가는 고금동서에 전무후무하다”는 유일성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바로 이것으로 하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는 만고절세의 애국자, 위인중의 위인으로 만민의 다함없는 존경과 칭송을 받고 계신다”라는 충성의 합리화 논리가 제시된다.

군사에서 외교로 우상화 담론의 중심축 이동

무엇보다 우상화의 핵심 프레임이 변화되었다. 2009년 후계자로 등극한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프레임은 ‘희대의 명사수’, ‘총포술의 대가’ 등이었다. 반면 금번 논설에서 드러난 프레임은 ‘노숙한 외교가’, ‘공격형 영도자’ 등 주로 국제외교 무대에서의 활약 및 공세적이고 창의적인 통치력 등이 강조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군사적 능력’ 강조에서 ‘외교적 능력’ 강조로 우상화 담론의 중심축이 이동하였다.

이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지도자 측면에서 그동안 자신을 낮추며 통치 능력을 인정받으려 했던 김정은의 통치술에 일정한 변화 흐름이다. 둘째, 정책 측면에서 북한 정치에서 외교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의 반증이다. 셋째, 조직 측면에서 북한의 괴벨스라 칭해지는 김기남이 일선에서 물러선 후 주춤했던 당 선전선동부의 이데올로기 작업이 ‘만리마속도창조운동’과 함께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금번 논설에서 드러난 우상화 프레임과 그 논리를 살펴보고 현 시기 의도를 짚어보자.

전쟁억제력 갖추고 세계정치 주도하는 ‘노숙하고 세련된 영도자’

대외적 정치군사 압박과 대북제재 속에서도 “최대의 속도로 나라의 국력을 증대”시켰다는 김정은의 “로숙하고 세련된 령도”라는 프레임이 눈에 띈다. ‘나이가 많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나 ‘학식이 높고 견문이 넓은 사람’을 지칭하는 노숙(老宿)이라는 수식이 사용된 점이다. 북한에서 김정은 통치력을 평하는 담론 중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생소한 수식어이다. 이제 김정은은 2012년 20대의 청년이 아니라는 의미가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논설에서 드러난 ‘노숙하고 세련된 영도자’의 근거를 보자.

먼저 ‘세계적 인정’이다. 즉, “사상과 리념, 지역과 제도의 차이를 불문하고 세계언론들은 한결같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 매혹되여…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성의 관념으로는 전혀 가늠할 수도 리해할 수도 없는 여기에 위대한 김정은 정치의 심도가 있고 변혁적 위력이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음으로 핵^미사일 고도화로 ‘전쟁억제력’을 갖추었다는 논리이다. 즉, 김정은의 의지로 “그 어떤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어이 강력한 전쟁억제력을 마련하여”, 현재 북한이 과거의 전쟁위협에서 벗어나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되었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이것이 김정은이 “조국과 민족 앞에 쌓아올리신 공적 중의 최대 공적”이라고 한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공격형 영도자’

다음으로 강조된 김정은 우상화 프레임은 ‘공격형 영도자’이다. “공격전을 혁명승리의 최선의 방도”로 내세우고 밀고 나가는 영웅이라는 논리이다. 그 구체적 성과와 업적으로 “기성관례에 구애됨이 없는 전격적인 외교활동방식, 한없이 소탈하고 무한히 솔직하며 만사람을 끌어당기는 감화력, 국가의 존엄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사소한 에누리도 모르는 원칙적 립장” 등이 논거로 제시된다. 이어 이러한 김정은의 공격정신은 그의 ‘혁신적 안목과 진취적 창조방식’과 결합되어 있다는 논리이다. 돌출적이고 급변하는 김정은의 통치 행태가 ‘기성세대나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난 창조와 혁신’으로 포장되는 양상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김정은의 인정욕구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비되는 모양새이다.

‘초인간적 헌신’에 대한 충성

그리고 김정은의 공격정신은 그의 국가와 인민을 위한 헌신성과 연계된다. 즉, “김정은동지의 굴함없는 공격정신은 불면불휴의 로고와 희생적 헌신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공격전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 가장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원쑤들이 기를 쓰고 발악하고 혁명 앞에 방대한 투쟁과업이 나설수록…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위험천만한 화선에도 한 몸을 서슴없이 내대시였으며 하늘길, 배길을 헤치며 빨찌산식 현지지도로 온 나라 방방곡곡을 찾으시여 빛나는 예지로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눈도 틔워주고 새힘도 안겨주시였다. 그 불같은 헌신의 장정에서 폭열강행군, 심야강행군이라는 새로운 시대어가 태여나고 가지가지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꽃펴나게 되었다”는 식의 논리이다.

이러한 우상화 논리가 다양하게 제시된 후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 및 그를 모델로 한 헌신강제로 마무리된다. 즉, 북한의 간부와 주민들은 “정세가 어떻게 변한대도, 어디서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김정은의 “열혈충신, 원수님과 사상도 뜻도 발걸음도 끝까지 함께 하는 진정한 동지, 전우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모두 다 불세출의 위인, 만고절세의 애국자를 진두에 높이 모시고 혁명하는 크나큰 영광과 긍지를 가슴깊이 간직하고 공화국의 존엄과 국력을 만방에 떨치기 위한 오늘의 만리마대진군에서 위훈의 창조자, 시대의 영웅이 되자”로 장문의 서사는 끝난다.

현 시기 김정은 우상화의 의도

이러한 김정은 우상화는 정치적 측면과 시기적 측면에서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전개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정치적 측면에서 의도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노이회담 노딜로 상처받은 김정은의 자존감 높이기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만리마속도창조운동 과정에서 간부들과 주민들의 사상 강화 필요이다.

다음으로 시기적 측면에서 의도이다. 대외적으론 북^미 간 및 남^북 간 협상 재개의 동력이 살아나는 과정에서 협상의 최고정책결정권자이자 선두에 있는 김정은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이다. 대내적으로는 7월 21일 예정된 북한의 도, 시, 군 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맞추어 김정은에 대한 충성 논리를 제시할 필요이다.


●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2004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북한 체제를 연구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통일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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