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상향식 공천 룰 확정 ‘정치신인’ 영입… 한국당, 도덕성 기준 강화 ‘현역 의원 물갈이’

총선이 9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총선은 단순히 21대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한국 정치의 지형을 바꿀 만큼 중대한 선거(critical election)의 성격을 갖고 있다. 민주당의 장기 집권이냐 아니면 2016년 총선을 시작으로 대선 및 지방선거에서 세 차례 연속 패배한 보수 세력의 반격이 이뤄질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각 정당의 총선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총선 경쟁은 ‘현역 의원 물갈이’, ’정치신인 영입’ 등을 핵심으로 하는 공천 룰과 지도체제 개편 등으로 집약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포문은 집권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열었다. 민주당은 지난 5월 3일 내년 총선에 출마할 후보를 가려내는 ‘공천 룰’을 확정했다. 민주당 공천 안의 특징은 첫째, 현역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양한 이들의 참여를 확대해서 ‘신인·정치소외계층 영입’을 강화한 것이다. 정치 신인은 공천 심사 시 10~20% 범위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게 신설하고 여성에 최대 25%, 청년·장애인·당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가산 범위를 현행 10~20%에서 10~25%로 상향 조정했다. 둘째,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 전원 경선을 거치도록 했다. 경선은 권리당원 투표와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각각 50%씩 반영해 진행하기로 했다. 현역 의원 평가를 통해 하위 20%를 받은 의원들에게는 공천심사 때 주어지던 감점을 기존 10%에서 20%로 확대키로 했다. 구청장 등 선출직 공직자가 현직에서 중도 사퇴해 총선에 도전할 경우 주어지던 페널티를 기존 10%에서 25%로 상향 조정했다. 다만 경선 불복, 탈당, 제명 징계 경력자에 대한 경선 감산을 현행 20%에서 25%로 높였으나 당원 자격정지에 대한 경선 감산은 20%에서 15%로 완화했다.

셋째, 공천 룰을 상향식으로 확정했다. 이전처럼 최고위와 당무위, 중앙위만 거쳐 정했던 하향식이 아니라 최초로 당무위와 중앙위 사이에 당원 플랫폼을 통한 권리당원 투표를 추가해 다양한 이들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상향식으로 확정했다. 전략공천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지난 2016년 총선 공천 당시 민주당은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현역 의원 컷오프와 전략공천, 단수후보 남발 등 사실상 김 위원장이 전권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시스템 공천을 통해 이런 인위적인 공천배제를 최소화하려고 앴다. 한편, 한국당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을 앞서는 더 크게 혁신하고 선진적인 공천 안을 마련하는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 12일 ‘한국당 원외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큰 틀의 원칙과 기준은 이기는 공천, 공정한 공천,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공천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한국당 신정치혁신특위가 현재 만들고 있는 공천 안에 따르면 정치 신인의 경우, 20대 총선 때의 5배인 최대 50%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신인이란 당내 경선과 예비 후보를 포함한 각종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사람, 또는 비례대표 후보자 중 당선이 안 된 사람으로 엄격히 정의했다. 그런데, 아무리 정치 신인이라도 제한을 두었다. 장관급 인사나 인사청문회 대상자는 정치신인으로 분류하지 않으며, 조합장 선거 출마 경험이 있을 때는 공천관리위원회에서 정치신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한편, 현재 만 45세 미만으로 규정된 청년층은 연령에 따라 최대 40%까지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여성과 장애인, 국가유공자에게도 30%의 가산점이 주어진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부각한 공이 있거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될 경우 특별가산 대상자로 분류돼 가산점을 받는다. 이는 대체로 민주당의 가산점 비중보다 최대 2배에서 그 이상에 이를 만큼 파격적이다.

한편, 비례대표 공천심사의 경우 가칭 ‘숨은 인재 찾기를 위해 국민 참여 오디션 방식을 도입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방침으로 전해졌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관리위원회를 각각 별도로 구성하고 먼저 비례대표 공천을 마무리한 뒤 지역구 공천을 실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당의 경우, 일단 현역 의원에 대해선 아직 방향이 명확히 정해지지는 않았다. 여론조사나 외부 위원회의 평가와 의정활동 등을 통해 평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덕성 기준을 강화해 음주운전, 성범죄, 뇌물수수 전력이 드러나면 원칙적으로 공천 배제할 방침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민주당과도 비슷하다. 반면 막말 경력이나 복당·징계 경력자 등에 대한 불이익은 당 통합 차원에서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정치혁신특위는 탈당 경력자, 경선 불복, 징계 경력자 등에 10~30%의 감점을 주려고 했지만 아예 감점을 주지 않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한국당이 이런 새로운 공천 안을 이대로 확정할 경우 현역의원 교체비율이 높아져 이들의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 한국당 공천 룰의 방향과 주요 내용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해질지 큰 관심사다. 특히 ‘현역 의원 컷오프’의 기준과 물갈이 폭이 가장 주목 받는 사안이 될 것이다. 결국 2020년 총선 승리의 최대 변수는 어느 정당이 국민이 공감하는 공천 개혁을 할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대한민국 총선의 역사는 공천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통상 30% 정도의 현역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아무리 총선 환경이 유리해도 공천 파동을 겪은 정당은 패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령, 2008년 2월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4월 총선에서 이른바 친박근혜(친박)를 제거하기 위한 공천을 단행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면서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탈락한 친박 인사들이 불복하여 한나라당을 집단으로 탈당하여 ‘친박 연대’를 만들어 돌풍을 일으켰다. 총선 결과, 친박연대는 13.2%의 정당 지지를 얻어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자유 선진당(6.8%)을 제치고 지지율 3위를 기록했다. 지역구 6석, 비례구 8석 등 총 14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특히, ‘친박연대’ 후보자들은 대구^경북 27석 가운데 4석을 차지했다.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한구 공천심사위원장과 친박 최경환 의원을 앞세워 이른바 ‘진박 공천’을 강행했다. 야권분열이라는 유리한 총선 환경으로 본래 180석 이상을 목표로 잡았던 새누리당은 공천 파동으로 122석을 얻으며 제2당으로 주저앉는 참패를 당했다. 선거전보다 의석이 24석 줄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직전에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친노 패권주의’ 청산을 외치며 탈당해 국민의 당을 창당해 분열되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육책으로 김종인 전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문 대표는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2016년 1월 26일 공식 사퇴했고 민주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격 전환되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3선 이상 중진의원 중 하위 50%, 재선 이하 의원 중 하위 30%에 대해 공천 배제를 전제로 고강도 공천 혁신을 단행했다. ‘50% 탈락’ 기준을 적용시키면 최대 14명까지 탈락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정청래, 이해찬 의원 등 강골 친노 세력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일여다야 구도 때문에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왔지만 민주당은 수도권 122석 중 82석에서 이기며 새누리당과 국민의당(38석)을 압도했다. 새누리당이 진박 공천 파동을 겪는 동안 김 비대위원장의 과감한 공천이 총선 승리와 연결됐다는 견해가 많았다. 2000년 총선을 목전에 둔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는 담대한 개혁 공천을 실시했다. 계파 보스인 대구·경북의 김윤환 고문과 구민주당계의 이기택 고문을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했고 당내 5선 이상 의원 중에서는 김영구, 양정규, 박관용 의원 등 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배제했다. 다수의 현역의원들이 공천에서 탈락되었는데 현역의원 교체 비율이 30%를 넘었다. 한편 오세훈, 원희룡 등을 포함해 반짝반짝하는 386 젊은 인재들을 다수 공천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새정치국민회의’를 버리고 ‘새천년민주당’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했다. 신당 창당의 목표는 다수 여당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공천 학살 파동에도 불구하고 영남권(64석)을 싹쓸이하면서 133석(+11석)으로 제1당이 됐다. 반면,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17석)으로 제2당이 됐다. DJP 공동 정부의 한축이었던 자민련은 원내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17석(-33석)을 얻는데 그쳤다.

당시 상황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10년 발행된 <김대중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나는 이번 (2000년) 총선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지난 2년 동안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이것을 국민들이 평가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민심을 읽는 데 또 실패했다. 험난한 앞길을 생각하니 참담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이회창식 공천에 대해 2002년 대선에 대비해 “자기를 위해 헌신한 사람도 내치는 의리가 없는 냉혈한’에 의한 사천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회창식 개혁은 민심으로부터는 개혁 공천으로 받아들여져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처럼 공천은 정치 세력 전체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사임에 틀림없다.

2020년 총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과연 이회창식 ‘개혁 공천’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여부다. 그 핵심은 탄핵에 책임이 있는 친박 인사들의 제거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무총리로 탄핵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지난 2월 27일 당 대표가 됐을 때 자유 한국당은 ‘도로 박근혜당’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그야말로 일반 국민들의 예상을 깨는 과감한 ‘물갈이 공천’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황 대표 앞에는 두 개의 난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하나는 지난 패스트 트랙 정국에서 58명의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국회선진화법 위반은 피선거권과 관련이 깊다. 국회에서 회의 방해를 위한 폭력 행위를 금지한 이 법을 위반하면 최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경우에 따라 5년에서 길게는 10년 동안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자유한국당 현역 의원들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 의원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하면 당 지도부에 대한 저항이 강해지고 이들의 이탈이 가속화 될 수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국회선진화법 위반 고발 사건과 관련해 “정치적 해결만이 최선책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문제를 정치로 풀지 않고 스스로 사법기관에 예속되는 길을 선택한 정치권도 한심하지만, 그걸 이용해 자유한국당의 내분과 붕괴를 노리는 세력들도 비열하기는 마찬가지다”고 비판했다. “그 문제는 국회의 자율권에 속하는 문제이고 수사 대상이나 재판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국회선진화법 위반 고발 사건은 한국당에게는 향후 총선을 앞두고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황 대표의 또 다른 고민은 ‘친박 신당’ 가능성과 파괴력이다. 황 대표가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2022년 대선에 출마하려면 2000년 이회창 총재처럼 자신을 도왔던 의원들과 핵심 친박 인사들을 쳐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이 친박 신당으로 합류한다면 그것은 보수 분열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결국 총선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황 대표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10일 청년을 대상으로 한 국회 강연회에서 “지금처럼 (한국당이) ‘친박 1중대, 2중대’로 가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당 지도부가 친박(친박근혜계)들이나 만나고 다니는 게 보수 대통합이냐”며 이같이 말했다. 여하튼 황 대표가 자신이 처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남의 칼을 빌려 상대방을 처단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수단을 이용해야 할지 모른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인물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임명해서 공천을 주도하는 것이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박세일 교수에게 공천 전권을 줘서 공천 개혁을 주도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할 것이다. 과감한 ‘개혁 공천’을 통해 국민에게 신선감을 주면서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다. 동시에 각계에서 폭넓게 인재를 발탁하면서 당내 비주류 의원들도 배려하는 ‘탕평 공천’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친문 독식’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내년 총선에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으로 총선에 나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필두로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권혁기 전 춘추관장, 남요원 전 문화비서관 등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 현직 의원들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출마 희망자들이 전국 지역구 곳곳에서 한판 승부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친문재인 열성 권리당원들이 당내 경선을 쥐락펴락할 개연성이 크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이해찬 대표와 교감 속에서 민주당 공천을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21대 총선이 치러지는 2020년 4월15일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3년이 되는 시점이다. 총선이후 문 대통령의 레임덕을 막기 위해선 강성 친문 인사들을 대거 공천해 국회에 ‘문재인 친위사단’을 만들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내년 총선은 결국 문재인 정부 심판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큰데 이들 친문 인사를 대거 공천하는 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다시 50% 밑으로 떨어졌다. 리얼미터,YTN 7월 둘째 주(8일-12일)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3.5%포인트 내린 47.8%를 기록했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47.3%까지 상승해 긍정·부정 평가의 차이는 0.5%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30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효과로 전주 조사에선 긍정 평가가 51.3%로 상당 폭 상승했지만 일본의 무역보복에 따른 국내 경제에 대한 우려감 확대로 지지율이 추락했다. 하지만 리얼미터^tbs 7월 3주(15-17일) 조사결과, 문 대통령 긍정 지지도가 50.7%를 기록했다. 리얼미터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불매운동 등 반일여론이 확산되고, 문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 기조가 중도층과 진보층의 공감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당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담 효과가 2주를 버티지 못한 것인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이젠 11월 9일이면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돈다. 만약 향후 문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고 30%대로 추락하면 친문 인사 배려의 민주당 공천 전략에도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혁 공천을 한다고 해 놓고 친문 인사를 대거 공천하면 2016년 집권당인 새누리당에서 있었던 ‘진박 공천 파동’이 민주당에서도 재연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와중에 정의당은 심상정 의원을 83.6%의 압도적인 지지로 새 대표로 선출했다. 심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한국 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자유한국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출시키고, 집권 포만감에 빠져 뒷걸음치는 민주당과 개혁 경쟁을 넘어 집권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진보 집권의 길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의당은 정의당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정의당은 야당보다는 범여권 정당으로 비춰졌다. 정의당이 촛불 혁명으로 출범한 현 정부와 중요 정치·정책 사안에서 보조를 맞춘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야당은 근본적으로 ‘살아 있는 권력’인 집권 세력을 견제해야 존재감이 생기는 법이다.

지난 2년 동안 이정미 대표 체제에서 정의당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현 정부의 인사 참사, 경제 실패 등에 대해 전략적으로 침묵하면서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을 떨쳐내는데 실패했다. 심 대표도 ‘민주당 2중대’라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한 듯 “정의당은 정의당 노선에 따라 협력할 건 협력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는 것이지 여당을 지원하는 것은 어느 정당도 없다”며 “더 이상 정의당을 범여권막?분류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선언의 배경에 지난 4월 3일 진보 진영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고 노회찬 의원 지역구인 경남 창원^성산 보궐 선거 결과 때문이다. 정의당 여영국 후보는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했지만 한국당 강기윤 후보에 맞서 불과 504표(0.54% 포인트) 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이것은 분명 정의당에 대한 경고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국당이 내세운 ‘정권 심판론’이 일정 부분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 무조건 여당을 지지한다면 그것은 정의당답지 못한 것이다. 한국 갤럽의 작년 11월 4주(20-22일) 조사에서 “만일 내일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라면 어느 정당에 투표할 것 인가?”라는 질문에, 정의당 지지도는 13%였다. 그런데 최근 6월 4주(25-27일) 조사에서는 8%로 추락했다. 이런 추세가 유지되면 정의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다. 심 대표는 “정의당의 이름으로 승리할 것이다. 후보 단일화는 우리 당의 원칙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총선에서 비례의석 한두 석 더 얻기 위해 대표된 것 아니다. 지역구 후보들의 출마와 당선을 위해 당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의당이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2중대’라는 프레임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한다. 정부 실정에 대해 대안을 갖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 더불어 명실상부한 대중적 진보 정당으로 당을 확장하고 혁신해야 한다. 여하튼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에서 벗어나 “진보 집권의 길을 열겠다”고 선언한 이상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민주당이 공천에서 ‘친문 독식’으로 공천 파동을 일으킬 경우, 그동안 현 민주당에게 우호적이었던 세력들이 진보 정당인 정의당으로 발을 돌릴지도 모른다.

민주평화당이 둘로 갈라지게 됐다. 박지원 의원 등 민주평화당 의원 10명이 ‘대안 정치연대’를 만들기로 선언하면서 사실상 분당됐다. 이른바 ‘제3지대’를 만들어서 민주당과 한국당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분당 배경에는 민주평화당 지지율이 1% 밑으로 내려앉으면서 하락세를 보이자 ‘이대로는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바른미래당의 미래가 엮여 있다. 이들은 이미 바른미래당 호남 의원 10여 명과 물밑에서 접촉해 왔다. 그래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 전체를 아우르는 정당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바른 미래당도 뒤숭숭하다.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가 출범 10일 만에 계파 갈등 재연 속에 멈춰 섰다. 주대환 혁신 위원장은 11일 “혁신위원을 뒤에서 조종하고 당을 깨려는 검은 세력에 대해 크게 분노를 느낀다”면서 손학규 지도부 재신임을 묻는 혁신안에 반발해 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당을 살리겠다고 나선 혁신위마저 풍랑 속에 빠져들면서 바른미래당도 분당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혁신위는 손학규 대표를 퇴출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21대 총선 승리 비전에 대한 진단과 검증, 평가를 혁신위가 주체가 되어 진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여하튼 혁신위 발 바른미래당 계파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앞으로 몇가지 사니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첫째,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전 대표가 손을 잡고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바른미래당 호남 의원들이 민평당 탈당 의원들이 만든 ‘대안 정치연대’에 합류하는 것이다. 셋째, 과거 같은 당이었던 바른 정당 출신 의원들이 탈당해서 한국당과 보수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넷째, 손학규 대표가 물러난 상황에서 새로운 대표체제 또는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고(故) 정두언 의원의 지적처럼 총선은 사실 지도자의 몫이 크다. 2011년 한나라당 시절 홍준표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기 불안하다 보니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한 적이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안 뜨면 비대위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소수 야당들의 지도 체제 개편은 향후 선거구도와 직결된다. 야당이 핵 분열되어 총선에서 ‘일여야다’ 구도가 만들어지면 민주당은 정말 야당 복(福)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로 공천 혁신을 꾀할 수 있는 지도력과 시스템을 어느 정당이 구축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16개월만인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회동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에 관해 “정부와 여야가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우리 경제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며 “범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위해 비상협력기구를 설치·운영하겠다”고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서도 걱정되는 시기에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 모으는 그런 모습을 보시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지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황교안 대표는 “지금 대통령이 야당과 다툴 때가 아니다”며 “위기에 맞서려면 협치가 중하고 우리당은 위기 극복에 초당적 협력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앞으로 어느 정당이 국민들이 공감하는 협치 정치를 이끌어 갈 것인가도 총선에 주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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