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더한 미중 무역전쟁, 홍콩사태가 불러올 금융지진, 대비하지 않으면 대참사

지난 8월 ‘송환법’에 반대하고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도심 집회에 참가한 시위대가 홍콩 정부청사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홍콩에 출몰한 블랙스완

아시아 금융 1번지 홍콩의 한복판 중환(中環)-깜종(金鐘) 거리. 연일 계속된 반정부 시위에 센트럴(Central)의 청소부들은 새벽에 더 바빠진다. 이들이 검은 유니폼에 검은 마스크, 검은 고무장갑을 낀 이유는 쉽게 때가 타지 않는다는 비용절감 때문이다. 땀에 범벅된 유니폼과 모자에 묘하게도 SWAN(백조)이라는 백색 로고가 크게 박혀 있다. 아마도 용역사인 Swan Hygiene Limited 소속의 청소노동자들일 것이다. 출근시간 전 이들은 투명인간이 되어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마술처럼 치운다. 전날에도 정부청사가 있는 깜종(金鐘)에 모인 30만명 인파는 미국 영사관으로 진퇴를 반복하다 무수한 쓰레기를 남기고 새벽녘에야 해산했다. 담벼락, 가로등, 아스팔트 바닥 심지어 육교상판과 하판에까지 도배된 구호와 스티커는 검은 청소부의 몫이 되었다. 진정 검은 유니폼에 백조(Swan) 명찰을 단 채 타다 남은 나무궤짝더미를 불평도 없이 갈무리하는 이들이야말로 홍콩새벽을 누비는 블랙스완이다. 동틀 무렵, 검은 T-셔츠와 검은 마스크, 나이론 백팩을 멘 채 “아큐파이 센트럴(Occupy Central)”을 외치며 해산하는 시위대와 검은 유니폼의 청소노동자들은 마치 임무교대를 하듯 자리바꿈을 하였다. 며칠 전 경찰이 쏜 권총에 고등학생 몇몇이 쓰러졌다고도 하고, 건물 위에서 내던진 화염병에 경찰특공대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도 하고, 이보다 심한 유언비어도 난무한다. 순하디 순한 홍콩인들이 낮이건 밤이건 기괴한 검은 백조떼처럼 모여 철근파이프와 검은 우산으로 무장한 채 목이 터져라 정부를 성토하고 새벽엔 산처럼 쌓인 쓰레기를 같은 색깔의 또 다른 검은 백조가 치우는 모습은 필자처럼 20년 넘게 홍콩에서 살아온 외국인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원조 블랙스완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레바논 태생의 경제학자인 나심 탈렙은 2007년 자신의 저서<블랙스완(The Black Swan)>을 통해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였다. 책이 발간된 다음해인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부도를 시작으로 농축된 신용파생상품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 즈음 탈렙 교수는 신비한 수정구슬을 지닌 예언자처럼 칭송되었고 블랙스완은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처럼 그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보다 전인 1996년에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도 미국 경제를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상태라고 진단하고 이른 경고를 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일련의 경고를 거쳐 급기야 2008년에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일반적 기대 영역을 벗어나는 관측치가 실제로 도래하면 극심한 충격이 동반된다는 어쩌면 상식적인 이론이 ‘검은 백조(白鳥)’라는 형용모순의 단어에 함축되게 된 것이다.

찢긴 G-20깃발, 무너지는 글로벌 공조

지난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는 성과가 전무했다. G-20은 2008년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대책반’으로 기존 G-8을 급조해서 만든 조직이다. 그런 자리에서 미국은 중국에 무역문제를 집요하게 몰아부쳤고, 의장국 일본은 징용문제를 트집잡아 한국을 왕따시켰다. 인도-태평양전략을 강화하는 자리로 미국-일본-인도 3국만 따로 모이는 바람에 G-20의 근본취지마저 모호해졌다. 최근 중국 류허(劉鶴) 부총리의 베이징 초청을 매몰차게 거절한 스티브 므누신 현 미국 재무장관의 다음 행보도 걱정된다. 2008~2013년 미국 금융기관들의 줄도산 위기 시 미국 재무장관들이 ‘팥 바구니에 쥐 드나들 듯’ 베이징 문지방을 넘나들었던 것에 비하면 가히 상전벽해다. 글로벌 리더십에 검은 백조의 그림자가 아른거림을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무역전쟁이라는 블랙스완

무역전쟁은 전쟁이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판돈이 한화로 165조원이면, 전쟁이 아닌 다른 정의가 있을 수 없다. 미국이 최대 5500억 달러의 중국산 수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니, 연 1375억 달러(한화 약 165조원)의 쌩돈을 중국은 고스란히 뺏긴다. 1991년에 한국도 5억달러(약 6000억원)를 추렴했었던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의 걸프전 전비가 고작 약 600억달러(한화 72조)에 불과했다. 다국적군이 약 68만명이 동원되었고, 침공 첫날부터 수개월간 비디오게임처럼 토마호크 미사일 등 CNN을 도배한 가공할 첨단무기에 든 비용을 모두 합해도 작금의 미-중 무역전쟁 1년치 판돈의 반에도 못 미친다. 피가 흐르지 않고, 물리력이 동원되지 않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의 양상은 검은 백조 수준을 넘어서 가히 검은 대붕(大鵬)이라 할 정도로 공포스럽다. 게다가 관세는 매년 무역량에 부과되는 바, 같은 싸움이 수년간 반복될 수도 있다. 너무도 큰 피해가 쌍방모두에 있기에 양국이 종국에 휴전하리라는 진단이 역설적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돈(貝)과 칼(刀)이 결합된 ‘貿’의 형성원리를 지금의 사태가 설파하고 있다.

독일의 마이너스 금리와 증발한 펀드

돈을 맡기면 이자가 붙는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상식이다. 금리는 어쩌다 제로까지는 내려갈지언정 마이너스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오랫동안 불가침의 가정이었다. 마이너스금리란 돈을 빌려가면서 오히려 돈을 챙겨간다는 것이니 신세를 입은 자가 수고료도 받는 것으로, 그러한 거래에 응할 상대가 없을 것이라는 통상적 논리는 맞다. 그런데, 이 같은 통상적 기대영역은 일부 선진국 금리가 마이너스로 돌변하면서 상식을 부정하는 사건으로 변모된다. 상당기간 마이너스 금리에 맴돌던 일본을 시작으로 가령 독일 국채(Bund) 5년물 금리는 금년 들어 급락을 거듭하다 장중 거의 -1%(년율) 가까이 기록되었다. 100만원을 독일국채에 투자하면 1년마다 1만원씩 5년연속으로 원금이 감소하여 만기 때 95만원만 내어 준다는 말이다. 그냥 집에 놔두는 것이 현명하지 왜 이 같은 투자에 응하는가? ‘이거 실화임?’이라는 인터넷 댓글이 무한대로 달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일이 실화가 되었다. 돈을 빌리는 것이 남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고, 오히려 돈을 맡아주는 것이 성가신 일로 보관료를 징구하여야 하는 디플레이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마이너스 금리 즉, 극심한 디플레이션의 전조가 출현하자 아시아에 있는 한국의 은행고객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소위 DLF(파생결합펀드)에 가입한 5000억원 가까운 금융상품잔고가 거의 증발해 버린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일부 선진국에 발생하는 해괴한 ‘강건너 불’이겠거니 하였는데, 애꿎은 한국의 DLF펀드가 “99%의 실현손실을 달성”한 검은 백조가 되어 출몰한 것이다.


긴급상황실을 가동해야

검은 백조가 난무하니 심각히 대비할 일이다. 한국경제는 글로벌 불확실성 발발 시 어떤 형태로든 참전을 강요받는 구조다. 지금까지 의심되는 검은 백조의 형태로는 마이너스 금리로 전조되는 글로벌 디플레이션이든, 전쟁보다 더한 미-중 무역전쟁이든, 홍콩사태가 불러올 금융지진이든 우리에게는 어느 하나도 버거운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파수꾼을 보내어 염탐하고 전문가들과 학자들을 불러 미리 분석하고 대비하여야 한다. 가령 1930년 전후 대공황을 분석한 ‘킨들버거의 소용돌이(Kindleberger Spiral)’는 당시 신흥패권국 미국이 촉발한 관세전쟁이 불러온 세계교역량절벽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동기간 세계교역량은 기준년 대비 67%가 감소된 것으로 나타난다. 대공황의 원인이 초기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모순뿐만 아니라 이기심에 기인한 국가간 관세전쟁도 공범임을 시사하는 바, 그러한 이기심은 21세기 미-중 무역전쟁에도 여전하다.

무역전쟁이 확전되면 원자재-중간재-최종재로 이어지는 글로벌 가치사슬은 끊어지고, 국가간 분업체계도 붕괴됨에 먼저 호주나 산유국 같은 원자재 부국의 경제가 흔들리게 된다. 올해 말로 예정된 사우디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도 급격히 위협받는 형국이다. 사우디 정유시설에 몇 발 떨어졌다는 드론 미사일의 피해는 아람코 IPO실패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막대한 재고자산의 출구가 막히는 세계의 공장 중국과 인도는 이미 신음하고 있다. 중간재에 비교우위를 보이는 한국경제 또한 시차가 있을 뿐 도미노를 피할 수 없다. 무역량이 감소하고 해운업이 된서리를 맞으면 조선업은 2차 위기에 휩싸일 수도 있다. 여기에 홍콩 사태가 더 악화되고 중국정부가 홍콩의 경제허브지위의 붕괴를 전략적으로 방관하는 경우 홍콩달러의 미 달러화에 대한 페그제도 흔들릴 수 있다. 홍콩달러에 예진이 온다면 한국 원화를 포함한 아시아 통화의 집단평가절하라는 본진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 가난하게 늙기도 서럽지만 늙어서 갑자기 가난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한국의 DLF사태는 글로벌 디플레이션이라는 검은 백조가 출몰이 가져온 동반피해(Collateral Damage)이다. 이같이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검은 백조의 출몰이 세계경제의 컨베이어 벨트가 멎기 전 나타나는 일련의 파열음은 아닌지 심각하게 인수분해를 해 보아야 할 때이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 Kong) 최고투자책임자(CIO)

-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 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외환, 파생상품 및 M&A 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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