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 Aktis Capital 최고투자책임자 칼럼] 일본화 수렁과 재정만능주의
  • 재정부실→재정투하 악순환 ‘일본의 30년 불황’... 막대한 재정집행 앞둔 한국 ‘반면교사’ 삼아야
  • | 2019-11-19 14:39:19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소비세 인상을 하루 앞둔 지난 9월 30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일본화(Japanification)라는 타임머신

8090 영화 백투더 퓨쳐2의 주인공(마이클 J. 폭스)은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뒤 미래인 2015년에 도달해, 세계경제패권이 모두 일본으로 넘어간 것을 보고 놀란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1편에 뒤이어, 미래여행을 콘셉트로 속편을 만들 때, 당시 할리우드 극작가들은 일본이 세계1등 경제국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였던 것 같다. 일본인 중역에게 미국인 직원들이 마구 혼나는 화상통화 장면도 당시엔 신기술로 으스스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세번째 겪고 있으며, <재정투하→ 슈퍼버블(Supper Bubble)→ 긴축→ 재정투하→ 글로벌 금융위기→ 재정부실→ 재정투하→ 재정부실>의 소용돌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짝 효과를 봤던 아베(安倍) 총리의 세자루의 화살도 이미 모두 꺾였다. 아베노믹스를 거쳐 일본은 GDP대비 238%(2018년 말)라는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를 기록 중임에도, 전체인구의 30% 가까이가 65세를 넘었다는 통계만이 주범으로 몰린다.

脫홍콩, 脫중국 이민전쟁에 편승한 재정전쟁

중국인의 주식인 돼지고기 값이 2배 넘게 폭등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1억두 넘는 살처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분쟁에 6% 성장도 깨질 위기이다. 중국정부는 오는 1월 25일 춘절(春節), 돼지고기 민심이 두렵다. 한편,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도 실패다. 시위대에 대한 4중전회의 엄포에도 자본주의 모범생 홍콩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위가 격화될수록, 소비는 급락한다. 홍콩의 중심상권인 타임스퀘어의 프라다(Prada) 매장은 임대료를 50% 탕감받는 조건에 가까스로 연장계약이 되었다는 소문이다. 부동산 가격하락의 전조다. 홍콩정부 역시 오는 1월 25일 춘절민심이 두렵다. 역으로 남유럽 돼지(PIGS)로 불렸던 포르투갈(P), 이태리(I), 그리스(G) 및 스페인(S)은 아시아의 불행에 대박이 났다. 脫홍콩, 脫중국 이민자들이 사재기에 나섰다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부동산은 10년만에 빛을 보고 있다. 취득세와 보유세가 두둑이 쌓이는 소리이다. 부동산 구입시 15%가량의 외국인세를 물리는 곳도 있다지만 바다가 보이는 목 좋은 곳은 매물이 동났다고 한다. 자생적 성장이 종멸한 이들 국가에는 이민특수야말로 거의 유일한 성장의 활로다. 20명의 관광객이 자동차 1대 수출효과와 맞먹는다지만, 잘 키운 이민자는 웬만한 중소기업의 기여도보다 낫다고 한다. 기업체는 가끔 부도가 나지만 이민자들은 돈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흥청망청 고맙다. 부자 이민자들에게는 복지혜택도 필요 없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유럽지역 대표 은퇴국 모나코는 인구의 반이 환갑이 넘고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값을 자랑하는 이민선진국이다. 단위 면적당 최다의 롤스로이스 보유국가로도 유명하다. 피(재정)에 굶주린 이들에게 돼지대란과 홍콩사태는 큰 장이 열렸다는 신호이다. 여기에 은근슬쩍 호주, 뉴질랜드와 캐나다가 명함을 내밀고 있다. 바야흐로 우량 이민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이민전쟁이 발발했다.

캐나다의 도발과 재정의 정치외교학

시진핑(習近平) 주석에 찍소리도 못하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홍콩사태에는 연일 강경발언이다. 지난 10월말 있었던 총선전략의 일환이었음은 수긍된다. 또한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孟晩舟)를 체포하는 등 미국정부의 2중대 역할 이후 발생한 중국과의 갈등에 이를 지렛대로 삼고자 하는 복선도 읽혀진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트뤼도가 밝힌 캐나다가 보호하여야 할 재홍콩 자국민이 무려 30만명 넘는다는 통계였다. 인구가 700만명 남짓한 홍콩에 캐나다 이중국적자가 무려 30만명이 넘는다는 말이다. 트뤼도는 이들이 홍콩을 이탈한다면 가장 가까운 복귀처로 자국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가령 평당 1억이 넘는 30평짜리 아파트를 판다면 캐나다에서는 정원 딸린 단독주택을 사고, 남는 돈으로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부동산업자들의 광고와도 같다.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될 당시, 캐나다로 엄청난 홍콩발 자본과 인구유입이 있었던 달콤한 추억을 트뤼도가 떠올린 것이다. 그가 박빙의 선거판을 뒤집어 재선에 성공한 것이 ‘캐나다의 오바마’라는 이미지에 기댄 것만은 아님을 엿볼 수 있다. 재정확보의 비법 중의 하나가 국경을 넘는(Cross Border) 자본포획에 있음을 경험상 주지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에 제2의 엑소더스가 생긴다면 캐나다 재정은 다시 한번 업혀갈 숙주를 확보하는 것이다. 선거라는 국면을 배후로 재정확보를 향한 고도의 정치외교적 수사와 자국 마케팅이 숨어있는 것이다.

일본 다시보기 vs 한국 재정만능주의

일본형 불황을 일본 탓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이들에게 억울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일본형 불황의 뿌리는 1985년 플라자협정에 있다. 수출보국(輸出報國)의 기치로 패전 후 단기간에 초일류 경제를 일궈낸 일본을 미-영-독-프 4강이 연합하여 뉴욕 플라자호텔로 소환하였다. 그곳에서 230엔쯤 하던 엔-달러 환율을 120엔까지 급절상시키는 협정이 서명되었다. 글로벌 무역역조의 시정이 명분이라지만 이는 경제외교 흥망사의 한 획을 긋는 대사건으로 기록된다. 예컨대 한국에 원달러 환율을 1200원에서 600원쯤으로 조정토록 강제한 것과 유사하다. 이 같은 경제외교 패배로 일본이 자랑하던 수출업체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내몰렸고, 일본은 대대적 내수진작 패키지로 특별융자, 금리인하 및 재정투하의 막대한 부양책을 펼치게 되었다. 부작용인 지가와 주가가 폭등하는 슈퍼버블을 제거하고자 때로는 긴축을 단행하기도 하였고, 불황재발에 묻지마 재정을 다시 풀기도 하는 등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통화-재정정책의 20여년이 일본형 불황의 요약본이다.

반면교사의 측면에서 일본의 실패는 한국에 금쪽같은 비전이 아닐 수 없다. 환율전쟁이나 금융위기는 논외로 하고 일본이 시전하였던 재정정책의 이력은 시사하는 바가 어느 때보다 크다. 재정이 일본판 지방자치제의 난맥상에 얽히고설켜 연쇄부실화가 되었다는 자기고백은 막대한 재정집행을 눈앞에 둔 한국이 귀 기울여야 할 내용이다. 막부제도의 현대적 변모가 일본판 지방자치제라고 한다. 지역구를 아들, 사위, 손자에게 내려주는 세습정치는 봉건막부제에서 다이묘(大名)가 가신을 거느린 채 지역을 세습통치하였던 것과 유사하다. 요점은 국고에서 나온 비상금마저 이들 토호세력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 재정부실화의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자산화를 이룬 재정사업이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고 중복, 과잉투자가 만연했다. 한적한 해안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했다든지, 누가 공룡공원을 내놓자 너도나도 어린이 공룡체험장, 공룡온천 등 파생상품(?) 출시가 난무했다고 한다. 정실에 얽힌 재정집행과 내부갈등으로 어렵사리 따온 예산의 집행률도 현저히 떨어뜨렸다. 재정사업이 지역 오야붕 주도 이권다툼으로 변질되자, 시급하다던 사업의 집행률은 80% 언저리를 맴돌았다.

이 같은 일본의 예를 살펴보면 한국에서도 과연 재정집행의 주축이 지방자치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효율적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국제통화인 엔화를 보유하고 있고 선진국인 일본이나 되니까 20년 넘는 시행착오를 견뎌낸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불태환 통화인 원화기반의 한국경제는 만일 재정정책이 실패한다면 위기도 크고 빨라질 확률이 높다. 일본이 만성질환일 뿐이라고 한국이 응급실 신세를 질 일 없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한편, 1997년 외환위기시에 한국정부와 국민은 똘똘 뭉쳐 실질적 외환집중제(실수요 증빙 등)의 불편을 감내하고 실시한 바 있다. 외환남용자는 매국노로 취급되었다. 만일 경기부양책이 한국에 필연이라면 외환집중제의 경험을 반추해보아야 한다. 즉, 위기시 재정집행에 대한 중앙정부 주도의 기획-집행-사후모니터 등이 보강된 시스템 탑재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일지 모른다. 방만했던 4대강이 정부주도 재정사업의 발걸음을 굼뜨게 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이 지자체에 재정집행을 묻지마 의탁하기에는 일본사례가 너무 아프다. 아울러 800만명 재외동포 중에 모국에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회귀정책도 가다듬었으면 한다. 재산세, 소득세 등 세제정비가 이뤄진다면 노인공경의 미풍양속이 남아있는 고향으로 회귀하고 싶은 어르신들도 내 주변에 상당하다. 한반도가 포르투갈, 스페인, 호주 등에 비해 외국인 부자이민자들을 유치하기에 아직 비교우위가 없으므로.

● 김문수 Aktis Capital(Hong Kong) 최고투자책임자(CIO)

-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 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외환, 파생상품 및 M&A 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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