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 Aktis Capital 최고투자책임자 칼럼] 코피 흘리는 아시아, 글로벌 금융공조 필요
  • | 2020-02-11 09:29:08
  • 콧잔등에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은 HSBC 사자상.
우울한 신년인사 “콩헤이 팟초이(恭喜發財)”

‘恭喜發財(부자되세요)~’ 우한(武漢) 폐렴으로 암전(暗轉)을 겪는 금융시장에도 설을 맞이한 홍콩은 서로에게 부자 되기를 기원한다. 도시전체가 마스크를 뒤집어 쓴 채 회색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덕담은 반갑다. 홍콩의 종교는 돈과 부동산이라고 했던 바, 눈빛으로 알아보고 비말(飛沫)이 튀지 않게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악수는 하지 않는다. 한 발 물러서 세뱃돈 홍빠오(紅包)마저 위챗(WeChat)으로 디지털 방식으로 주고 받는다. 2003년에 홍콩을 강타하였던 사스(급성호흡기증후군)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당시 8000명이 넘는 감염자와 800명 가까운 사망자를 기록하였던 사스는 같은 해 2월에 발발하여 6개월 넘게 도시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사스 발발 직후, 한때 홍콩 부동산가격은 15~20% 급락세를 보였고,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했으며 골프장은 내방객이 없어 텅 비었다. 중국의 급성장을 막으려는 서방이 퍼뜨린 세균이라는 음모론도 돌았다. 감염환자를 치료하고 슈퍼전파자가 되었던 내과의사와 그의 처남이 연쇄 사망하고 그가 묵었던 호텔방이 911호라는 사실조차 유언비어를 증폭시키는 재료가 되었다. 사망자가 없었고, 감염자 또한 미미하였던 한국은 사스의 공포를 실감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김치가 항바이러스 작용을 한다는 풍문에 홍콩소재 한국식당은 만원사례로 평일에도 1부, 2부로 나눠 손님을 받기도 하던 때이다. 결국 사스는 연내에 진압되었고, 홍콩의 항셍지수는 당해년도 업종별 하락폭이 1~3%에 불과할 정도로 선방하였다. 알짜 미분양 아파트를 ‘줍줍(줍고 줍는다)’한 투자자들은 이어진 부동산 폭등기에 정말 큰 돈을 벌기도 하였다. 금번 우한 폐렴이 이처럼 바닥(dip)을 제공하는 투자기회가 될 것인지 예단하기 어렵다. 돌림병이 초기의 공포와 달리 종국에는 안정적으로 통제되었던 전례를 볼 때 전파속도와 진압속도를 면밀히 관찰함이 관건이 될 것이다. 다수가 공포에 떨 때, 어떤 소수는 부자(發財, 팟초이)가 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작년 6개월 넘게 이어진 독립시위로 홍콩 부동산값이 10% 가량 빠졌다지만, 우한 폐렴에 아직 부동산 투매가 없음은 이 같은 속성과 경험 때문이다.

코피를 흘리는 홍콩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지위는 대체불가에 가깝다. 그럼에도 최근 홍콩발 금융위기 목소리가 커진 것은 글로벌 자산시장이 버블이라는 본질적 우려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자산시장은 단순한 버블이 아니라 ‘버블 버블’ 또는 ‘슈퍼버블’로 불러야 한다는 이도 많다. 이 와중에 발생한 홍콩의 독립 시위나 우한 폐렴은 버블의 일각을 허무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 가령 유동성 위기로 3조원(원화 기준) 가량의 공적자금을 긴급투입하기로 한 오션파크(Ocean Park)가 자산가격 하락의 전조일 수 있다. 중국의 관광 보이코트가 치명타가 되었다는 점에서 2017년 사드(Thaad) 갈등으로 암울했던 한국과 닮았다. 더욱이 우한 폐렴으로 인해 홍콩당국이 본토인의 입경을 역으로 금지하니 오션파크는 물론 홍콩 디즈니랜드조차 금년 장사는 접어야 할 판이다. 프랑스 파리근교에 있는 유로 디즈니(Euro Disneyland)가 지난 10년여 동안 수차례 부도위기를 반복한 것을 볼 때 디즈니 브랜드도 무적일 수 없다. 금년엔 디즈니 브랜드가 아시아에서 첫 위기를 맞이할 것은 매우 유력하다. 도시가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설 연휴 직전엔 이처럼 텅 빈 도심에 수천 명이 넘는 인파가 나타났지만 이들도 관광객이 아니었다. 이날은 설날을 앞두고, 신권이 발행된 날이었다. 신년에 신권을 얻으면 재복이 터진다는 미신에 HSBC본사가 북적댄 것이다. 홍콩의 3대 발권은행 중의 하나인 HSBC는 지폐에 사자문양을 새겨 넣었다. 자사의 문양이 사자이기 때문이다. 수천 명이 운집해 있던 HSBC 1층 로비엔 지폐의 모델이 된 사자상이 엎드려 있다. 그런데 이 사자상의 코에 민주화 시위대가 빨간 페인트 통을 집어 던져 사자가 붉은 코피를 흘리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중국공산당 협조은행에 대한 응징이란다. 이들은 독립진영을 옐로 숍(Yellow Shop)이라 하고 친중파를 블루 숍(Blue Shop)으로 갈랐는데 HSBC가 편가르기의 타깃이 된 것이다. 일견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이분법을 연상케 한다. 정작 코피가 멈추지 않을 위기는 홍콩경제가 직면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답답하다.

공포지수(VIX) 본 신년운세

어지러운 시기에 금융시장의 수평고도가 무너질지 가늠하는 도구로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표 VIX가 쓰인다. VIX라는 나침반은 위기징후를 보이면 25 이상으로 상승하는 바, 현재 10대 중후반을 오르내리고 있음에 아직까지는 아시아발 공포가 글로벌화하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가령,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VIX 가 무려 80까지 치달은 바가 있고, 2003년 사스에도 30대 초반까지 오른 것에 비하면, 현재의 10대 후반 VIX는 아직은 패닉(Panic) 장세가 아님을 말한다. 다만, 금년은 전 세계적으로 ‘선거의 해’임에 초국가적 국제공조가 이전과 같이 작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각국의 집권세력들이 내치와 정쟁으로 바깥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VIX로 표상되는 변동성 자체는 여유가 있어도 유사시 국제공조의 연결고리도 약해질 수 있는 바, 한국을 위시로 한 아시아 국가들의 신년운세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할 팔자다.

전쟁(WARS) 장세, 관군(官軍)을 기다리며

우한 폐렴이 어떻게 명명될지도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WHO(세계보건기구)가 신형코로나 바이러스(Novel Corona Virus)라는 어려운 이름을 붙였지만 지명이 빠진 것은 중국의 눈치를 본 것이다. SARS(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의 문법을 따른다면 우한 폐렴의 이름은 WARS(Wuhan Acute Respiratory Syndrome)로 명명될 수도 있었다. 진료현장이 실로 전쟁(WARS)에 가깝기 때문이며 동원된 인민해방군도 벌써 수십만 명인 바 일리 있는 논리다. 삭발한 우한의 여 간호사의 투혼은 전시의 특공대와 다를 바 없다. 머리칼이 2차 감염의 매개체가 됨을 막고, 촌각이라도 아끼겠다는 비장함은 많은 이의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다. 전쟁의 스산함은 주위에 산재해 있다. 작년 9월, 세계최대(70만 평방미터)의 공항으로 출범한 베이징 다싱공항(大興空港)은 텅 비었다. 중국본토인의 마카오 입경은 80%가 감소하였고 불야성 카지노는 불이 꺼졌다. 우한으로 연결되는 도로망도 모조리 폐쇄되었다. 중국대륙을 가로세로로 수놓은 7종8횡의 국가급 고속도로망과 56개 교차점이 우한 바이러스의 실크로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1만6000km를 넘는 초고속철도망은 중국 31개 성시 전역을 급속 감염시킨 주범이 되었고, 16억 개의 핸드폰은 공포를 재생산하는 사이버 고속도로가 되어 버렸다. 이 때문인지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던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구호도 미디어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이렇듯, 우한 폐렴은 중국의 구조적 소비감소와 성장둔화를 전조하고 있다. 여행절벽으로 항공, 호텔 등 관광업계와 건설업계 주가는 적게 잡아도 6개월간은 위태롭다. 이들 모두 고용 기여가 많은 영역이기에 가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국에는 금리인하라는 응급처치가 무엇보다도 시급해 보인다. 우선 RRR(Reserve Requirement Ratio)로 불리는 지준율이라도 내려야 할 것이다. RRR은 매 50bps 인하에 원화 기준 약 140조원 가량의 유동성이 공급된다. 정책금리 인하라는 큰 칼에 앞서 금융권 유동성 공급의 확대를 통한 응급처치는 임박한 선택이 될 것이다. 확률은 미미하지만 전세계 관군(官軍)이 공조에 나설 수도 있다. 금발의 더벅머리 선동가 존슨 영국총리가 절친인 트럼프 대통령에 제안을 한다면 자중지란에 가까운 브렉시트의 비난을 잠시 피할 수도 있다. 게다가 미-중 통화스왑(Cross Currency Swap)도 가능한 옵션이라는 트위터라도 올라오면, 세계증시를 외롭게 떠받치고 있는 의병들은 힘이 날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리히터 9.1, 2011년 3월 11일) 때에도 G7이 천재지변에 따른 엔고(高)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동시개입하기도 하였다. 2008년 미국경제가 숨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전 세계 주요국은 GDP의 3%에 달하는 재정을 풀기(이른바 3% 룰)로 한 적도 있다. 금번 폐렴이 더 심각한 국면으로 확산된다면 전 세계 관군의 개입이 필연인 이유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 Kong) 최고투자책임자(CIO)

-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 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외환, 파생상품 및 M&A 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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