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승용의 해양책략… ⑭ 해운강국 그리스를 망친 좌파정권
  • 좌파 포퓰리즘에 멍든 그리스, 항만·공항 매각… ‘해운강국’ 명예 되찾을지 관심
  • | 2020-03-24 10:47:05
피레우스Piraeus는 그리스의 심장부인 아테네의 관문이자, 지중해 3대 항구의 하나 다. 도시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와 아테네가 맞붙은 해전이 치러진 살라미스 섬이 거대한 방파제이다. 오늘날에는 대규모 해양 산업과 무역, 상업이 발달한 대형 항구도시로 해마다 약 2000만 명의 승객들이 이 항구를 이용한다. 피레우스가 세계 해운업의 심장인 것은 세계 3대 해운거래소에 맞먹을 정도로 해운 관련 산업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해운거래소란 선주 선박대리인 선박중개인 해상보험업자 금융업자 하주 등 해운관계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거래를 하는 곳이다. 선박의 매매·용선거래 외에 해상보험계약, 선박·적하에 대한 정보의 수집, 용선계약·선하증권의 표준양식의 작성, 해사분쟁의 조정, 화물하역, 정박에 관한 규정 제정 등의 일을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운거래소는 런던의 발트 해운거래소(1744년 설립, 46개국의 회사 및 지사, 세계 신조선 및 중고선 거래물량 60%, 연간 10조원 규모 거래)와 뉴욕의 매리타임 거래소, 동경해운집회소 등이다. 그리스 피레우스에는 1만300여개 선사가 영업을 하고 있고, 1만2000명의 해운 전문가가 활동하고 있다. 도시인구 50만 명 중 25만 명이 해운업과 관련돼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해운업이 특화된 도시다. 부산직할시가 벤치마킹 해야 할 도시이다. 중국은 최근들어 세계 경제권의 재편과 해로 장악을 목표로 ‘일대일로 책략’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이 교차하는 피레우스 항을 지중해의 거점 교두보로 확보하려 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통찰력을 준 것처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비슷한 영감을 주는 듯 하다. 마르코 폴로는 1260년 몽골제국에 갈 때 베네치아를 출발해 육상 실크로드를 이용했다. 그러나 1295년 귀국할 때는 바닷길을 택했다. 중국 푸저우(福州)의 취안저우(泉州)에서 출항해 싱가포르, 인도 남단의 뭄바이를 거쳐 호르무즈해협에 이르렀고, 거기서부터는 육로로 흑해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전 회에서도 언급했듯이 20세기 그리스 해운조선업계의 3대 타이쿤은 스타브로스 리바노스, 아리스토틀 소크라테스 오나시스와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등이다. 그들이 일군 세계 최강의 해운업과 그리스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남유럽 재정 위기의 파고 앞에 힘없이 쓰러졌다. 2010년부터 8년간 IMF와 ECB(유럽중앙은행) 등으로부터 2750억 유로(약 370조원)에 달하는 구제 금융을 끌어와 간신히 국가 부도를 막았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 정부는 피레우스 항과 테살로니키 항을 팔았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11월 11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와 피레우스항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중국이 피레우스 항을 확보한 이유는 두 가기다. 하나는 피레우스항의 환적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유럽으로 향하는 중국 화물의 운송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의 해운 능력을 활용해 중국-유럽 플랫폼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중국과 그리스는 피레우스항 투자 외에 에너지, 수송, 금융 등을 망라한 15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그리스 전력사인 ‘ADMIE’의 지분 일부를 보유한 중국 국가전력망공사는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 섬 사이 해저 전력케이블 구축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그리스와 중국은 힘을 합쳐 양대 문명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면서 서구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여섯번째로 큰 컨테이너항이자 그리스의 `경제심장’인 피레우스항은 이제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항구’가 되고 말았다. 중국 국영 해운기업인 중국원양해운(코스코·COSCO)은 총 6억6000만유로(약 8487억 원)를 투자해 그리스 피레우스항을 유럽 최대의 항만으로 키울 계획이다.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터미널의 운영권은 2010년과 2016년 두 번에 걸쳐 모두 COSCO에 넘어갔다. 피레우스항에 대한 코스코 지분도 기존의 51%에서 67%로 확대됐다. 코스코는 2016년 지분 51%와 함께 35년간의 항만 운영권을 확보한 바 있다. 피레우스 항과 막강 그리스 해운업이 중국에 접수된 것이다. 그리스 해운업 타이쿤들인 리비노스, 오나시스, 니아르코스가 지하에서 통곡할 것 같다. 그리스의 정치는 두 명문 가문에 의해 통치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좌파 사회당(PASOK)을 창당한 파판드레우(Papandreou) 가문과 우파 신민주당을 이끄는 미초타키스(Mitsotakis) 가문이 그들이다. 두 가문은 정치 색깔만 확연히 다를 뿐 비슷한 점이 많다. 두 가문 모두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했고, 주요 부처 장관 보직을 통해 국정경험을 쌓은 뒤 국가 최고지도자인 총리에 올랐다. 부자가 동시에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는 점도 똑같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히오스 섬 출신이고,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는 크레타 섬 출신이다. 파판드레우 가문은 3대에 걸쳐 그리스의 총리를 역임했다. 그리스가 IMF와 EU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것은 요르요스 파판드레우(Giorgos Papandreou, 1952년생) 총리(재임기간 2009~2011년) 때였다. 그의 조부 요르요스 파판드레우(Georgios, 1888~1968)는 그리스 사회민주당을 창당하였다. 할아버지 요르요스의 철자와 손자 이름의 그리스 이름 철자가 조금 다른 게 특징이다. 할아버지 요르요스는 과도정부를 포함 1940∼60년대에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냈다. 사회당을 창당한 부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Andreas Papandreou, 1919-1996) 역시 세 차례 총리를 지냈다. 아버지가 펼친 포퓰리즘 정책 탓으로 국가채무는 크게 늘었는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아들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총리에게 넘겨졌다. 요르요스 파판드레우의 그리스는 2010년 재정 위기로 국가 부도 직전에 처했다. 국제 채권단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2750억 유로(약 370조원)의 구제 금융을 받았다. 이후 8년여에 걸친 금융위기와 산업구조조정의 힘든 시간을 보냈다. 3대에 걸친 총리 중에서 2대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야 말로 그리스를 망가트린 장본인이다. 두 차례(1981∼1989년, 1993∼1996년)에 걸쳐 11년간 장기 집권한 그는 ‘국민이 원하면 뭐든지 다 줘라’라는 식의 인기영합주의로 유명하다. 그는 가짜 일자리인 ‘공무원 공화국’을 만들어 망국의 길로 가는 고속도로를 깔았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아테네 대학교에 재학했지만 트로츠키주의를 선전한 것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서 1943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네소타 대학교, 노스웨스턴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교수로 근무했고, 1959년 그리스로 귀환했다. 1964년 아버지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총리 내각에서 청소년장관을 맡았다. 1967년의 우익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7년간 정치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1974년 사회당을 창당한 뒤 1981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연속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뇌물스캔들로 1989년 총선에서 패배해 정권을 내놓았다가 1993년 선거에서 재기했다. 발칸 반도 내에서 그리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는 평가도 있다. 1996년 1월 임기 중 지병으로 사망했다. 냉전과 탈냉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총리를 역임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서 독자노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전통적 적대국 터키에 강경노선을 견지하는 등 민족주의 성향을 보였다. 문제는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퍼주기 식 복지를 크게 확대하면서 재정 적자를 과도하게 키웠다는 점이다. 파판드레우 정부는 모든 계층에게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를 제공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원까지도 무료로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양잿물은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지금도 공짜 정책은 세계 어디서나 달콤한 유혹으로 작동하지만, 그 달콤함 뒤에는 엄청난 대가가 반드시 뒤따른다. 나라가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그리스인들은 마약과도 같은 과도한 복지 혜택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EU가입으로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기존 드라크마에 비해서 유로가 더 평가 절상되어있기 때문에 환율이 더 내려가서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처음 집권한 1981년만 해도 그리스 공무원은 30만 명이었다. 구제금융을 받은 해인 2010년에는 90만 명이었다. 3배로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 취업 인구 4명 중 한 명꼴로 공무원이었다. 정부가 시장을 대체하겠다는 꼼수가 바로 공무원 확대정책이다. 공무원 증원은 단기간에 손쉽게 고용을 늘릴 수 있는 가짜 일자리 창출법이었던 것이다. 공무원들은 신분 보장은 기본이고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고 친정부 세력이 됐다. 그리스의 젊은 공무원은 ‘골든 보이(Golden Boy)’로 불렸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또래보다 연봉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증원 뿐이 아니었다. 그리스는 유럽에서 가장 후한 연금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스 정부의 연금 지출액은 1991년부터 18년간 연평균 8.3% 속도로 증가했다. 무리하게 공무원을 늘리고 복지 혜택을 퍼준 결과 나라 빚은 천문학적으로 쌓였다. 1980년 22.5%였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부채는 2018년에는 184.8%까지 상승했다. 해운업·관광업 외에 산업 기반이 변변치 않았던 그리스는 형편이 어려워지자 국가 자산을 내다 파는 것 외에 돈을 끌어올 방법이 없었다. 항구·공항·섬·유적지·호텔·해변 등 정부가 가진 귀중한 인프라를 해외 민간 자본에 닥치는 대로 팔아 넘겼다. 국유 재산 매각을 전담하는 공기업인 ‘그리스 자산개발’은 2011년 정부 자산 7만여 개를 담은 ‘매각 리스트’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피레우스 항에 이어 둘째로 큰 항구인 테살로니키항의 운영권도 2018년 다국적 컨소시엄에 넘어갔다. 로도스섬 공항 등 14개 지역 공항 운영권은 독일 자본에 팔렸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그리스 경제의 미래 성장 판 역할을 할 청년세대(15~24세)가 줄어들고 있어 주목된다. 2007년 전체 인구 중 12.3%에 달했던 청년인구 비율은 2017년 10.1%로 빠르게 감소했다. 무상교육을 통해 대학 교육까지 받은 높은 수준의 인적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두뇌유출’은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부채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파판드레우 가문이 그리스 좌파 사회주의 정당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면 미초타키스 가문은 그리스 보수 우파 정당의 맥을 이어가는 명문 가문이다. 2019년 총리로 선출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의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1918~2017)는 신민주당 대표, 경제장관, 외교장관, 총리(재임기간 1990~1993년) 등을 역임한 그리스 보수정치의 거물이다. 1918년 크레타 섬에서 출생한 변호사 출신의 미초타키스 전 총리는 1946년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2004년 정계를 떠날 때까지 반세기 넘게 경제 장관, 외교 장관, 총리를 두루 지내며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군사 쿠데타로 그리스에 군정이 들어선 1967∼1974년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한 시기를 제외하면 정계를 떠날 때까지 의원직을 유지, 그리스의 최장수 의원의 기록도 갖고 있다. `아버지 부시’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사회주의 세력이 강한 그리스에서 몇 안 되는 친미 정치인으로 분류되던 그는 장관과 총리 재임 시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 친화적인 개혁 작업과 재정 감축을 밀어붙여 반대파와 노동자들로부터 ‘드라큘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2010년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가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긴축에 돌입하자 “나의 시장친화적 구조개혁 정책이 일찍 채택됐으면 그리스는 오늘의 위기를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전 총리가 1984∼1993년 당수를 지낸 중도 우파인 신민당은 작년부터 그의 아들인 키리아코스가 이끌고 있다. 딸 도라 역시 아테네 시장, 외교 장관을 역임하는 등 그의 집안은 정치 명문가로도 이름이 높다. `아들 미초타키스’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과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를 땄으며, 이후 영국 런던에서 투자은행 애널리스트와 금융 컨설턴트 등을 지냈다. 그러다 2004년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으며, 안토니스 사마라스 정부(2012~2015년)에서는 개혁행정부 장관으로 일했다. 그리고 2016년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줄곧 신민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9년 7월 7일 치러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신민당이 급진좌파연합 소속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를 이김으로써 그리스 새 총리로 취임하였다. 최근 그리스 경제가 호전되면서 IMF가 10년 만에 그리스 수도 아테네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서방 언론은 “친 기업 우파 성향의 미초타키스 총리의 영향이 컸다”고 평한다. 개혁 없는 보수도 문제지만, 정의 없는 진보도 위험하다. 문제는 임기가 한정적으로 주어진 대통령이나 총리가 개혁과 정의의 가치 기준을 정략적이고 기회주의적으로 설정하고 운영할 때 도탄에 빠지는 건 애꿎은 국민들이라는 점이다. 좌파 정권인 파판드레우 가문이 망친 그리스 경제를 우파 정권의 미초타키스 가문이 잘 해결할 지가 그리스 해운책략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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