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초등 ‘배움 너머에’ ‘네 이름은 뭐니?’란 강의를 들어보면 우리가 얼마나 단어에 대해 무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지 알 수 있다. 거기에서 개복숭아 개살구 개망초 개나리 등 앞에 ‘개’가 붙는 것이랑 애기더덕 애기나리 애기똥풀 애기등 같이 ‘애기’가 붙는 식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라고 묻는다. 언 듯 알겠지만 애매하다.

국립수목원의 이유미 박사는 ‘개’가 들어가는 꽃과 식물은 “꽃모양이 덜 탐스럽거나 과일 맛이 떨어진다.”고 정의했다. ‘애기’가 들어가는 식물은 같은 종류의 꽃에 비해 크기가 애기처럼 작지만 더 어여쁜 꽃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다 같은 꽃과 식물이지만 이를 대하는 사람의 마음이 빚어낸 언어는 참으로 모질고 무섭다는 느낌이 든다. 망초도 ‘개’가 붙은 개망초가 있다. 개망초는 꽃도 작고 외견상 딱 ‘계란후라이’같다. 그래서 예쁘다. 휴경지를 개간할 경우 망초는 질기고 억세서 직접 캐내거나 제초제를 사용해서 제거해야 되지만 개망초는 키가 작고 줄기도 가늘고 약해 뽑기 쉽고 땅을 갈아 업으면 훌륭한 퇴비가 되어 그냥 내버려둔다.

이런 여리고 예쁜 꽃 때문에 명명법 상 오히려 ‘애기망초’라 불러야 하는데 왜 망초보다 못하다는 개망초라 불렀을까? 망초(亡草)는 1899년 경인철도가 부설되면서 철로 바닥에 까는 받침목에 씨앗이 묻어 들어오게 되면서 그 강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우리나라 곳곳으로 퍼져나가 오늘날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 되었다. 망초가 들어오면서 개망초도 같이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이 때부터 일본이 본격적으로 조선을 수탈하기 시작해서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라는 이름의 망국초(亡國草)를 얻게 되고 이게 망초가 된다. 그래서 한없이 예쁘고 여리고 귀엽지만 역으로 개망초라고 부른 것이다.

‘나리’도 참나리가 있고 개나리가 있다. 아마도 요즘 애들에게 나리와 개나리를 물으면 개나리가 훨씬 좋은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비속어 중 ‘개’자가 들어가는 것은 아주 좋다는 뜻도 있기 ??문이다. 개간지, 개쩐다, 개이득 등이 그것이다. 나리는 백합(百合)과에 속한다. 백합 또한 한약재다. 백합은 참나리 즉 권단(卷丹, 붉은 꽃에 검은 점이 있는 백합)이나 백합, 세엽백합의 비늘줄기의 육질부분을 말려서 사용한다. 비늘줄기는 까도 까도 깔 것이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것으로 특히 백합과에서 흔히 나타나며, 맛이 있고 영양분 또한 가득 들어 있어 음식의 풍미를 더하는 부재료로 많이 쓰인다. 우리가 흔히 아는 양파, 마늘, 대파, 부추, 쪽파, 달래, 백합 등이 이에 속한다.

동의보감에는 ‘개나리불휘’로 기원식물이 나와 있다. 백합의 성질은 차다. 독은 없지만 맛은 달면서 약간 쓰다. 주로 상초부위인 심장과 폐장으로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차고 쓴 한약들은 열을 떨어뜨리는 효능이 있다. 그리고 백합은 달면서 즙 또한 많다. 그래서 폐(肺)로 들어가면 폐의 서늘한 기운을 북돋아주고 촉촉하게 기름칠 해줘서 기침을 멎게 해 주는데 이를 윤폐지해(潤肺止咳)라고 한다. 그래서 과로로 인해서 폐결핵이 왔거나, 폐가 건조해져서 기침이 끊이지 않은 폐노구수(肺癆久嗽)의 경우에 쓸 수 있다.

또한 걸쭉한 가래를 뱉거나 너무 오래 미열이 폐를 졸여서 침을 뱉을 때 피가 보이는 해타담혈(咳唾痰血)등에 사용할 수 있다. 심장이 노심초사해서 발생한 삿된 열인 사열(邪熱)이 심장을 어지럽혀서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이 답답한 허번(虛煩)을 치료한다. 허번이 심하면 심장이 놀라서 쿵쾅거리는 경계(驚悸)에 이르게 되고 당연히 잠자는 것은 물 건너 가게 된다. 잠을 잔다고 해도 꿈에 온갖 장면들이 나와서 잠시도 잠들기 힘들다. 그러면 그 다음날 잔 듯 만듯해서 정신이 몽롱하다. 이를 정신황홀(精神恍惚)이라고 한다. 열이 많이 발생하는 질병을 오래 앓으면 당연히 이런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백합을 그대로 쓰면 차고 쓴 성질이 열을 없애므로 주로 심장의 열을 꺼서 심장을 편안하게 하는 청열안신(淸熱安神)의 효능으로 쓰고 꿀에 축여서 볶아서 쓰면 폐를 촉촉하게 하는 기능이 증대된다. 성미가 차고 진득해서 감기가 걸린 사람이나 속이 차서 설사를 하는 사람은 복용을 금지한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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