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ulacre, diameter 86㎝ Acrylic on canvas, 2017
서양화가 문수만…‘시간의 문’초대전, 2018년 1월 20~2월 2일, 갤러리지오

“지각이나 상상, 이미지화된 현전, 회상 등이 문제가 될 때에는 그 노에마적인 성과물들은 본질적으로 상이하다. 어떤 때는 그 출현이 ‘살과 뼈로 된 현실성’으로 특징지어지고, 어떤 때는 허구로써, 또 어떤 때는 회상 속에서의 현전화 등으로 특징지어진다.”<사르트르의 미학, 장근상 외, 에크리 刊>

조선의 이도다완은 서민의 밥그릇으로 쓰던 막사발로 불리기도 한다. 멋을 부리지 않은 직선형이다. 미루어 생각하건대, 쓰임새 많은 이 그릇의 수요가 증가하여 한번 훑고 잿물에 담그다 보니 굽바닥엔 유약이 몽글하니 뭉쳐져 있다. 도공은 그것을 당연 보았겠지만 그대로 둔 빼어난 심미안(審美眼)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의 ‘시뮬라크르(Simulacre)’연작의 둥근 옆구리를 보노라면 왠지 막사발의 그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화면은 지구본을 펼쳐놓았을 때 바다가 더 넓어지는 왜곡처럼 고려청자 매병주둥이에서 본 3차원 문양을 울퉁불퉁하게 2차원적으로 펼쳐 현대적 미감으로 표현해 냈다.

Cloud, diameter 93㎝
이와 함께 4개의 원 이미지가 있는 ‘클라우드(Cloud)’연작은 7080세대라면 아련하지만 낯익은 문양으로 다가 올 법하다. 지난 여름 고(故) 운보 김기창 화백의 주옥 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소재, 운보미술관에서 3인전을 준비하면서 선생의 담배 피우는 사진에서 애연가였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 모습 앞에서 “담배연기와 같이 구름이 되어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고 했다. 이후 문헌들을 채집하다 연초합(煙草盒)이라고도 불리는 담배합 문양을 보는 순간 단번에 끌렸다고 했다. 이것을 평면으로 펼쳐 황동질감 위에 스크래치를 내고 이미지를 얹는 등 상상력과 조합하여 완성했다.

“나는 옛날 어떤 시절에 ‘이런 유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떠올려 보면서 작업한다. 어느 때라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느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진행한다. 고려시대 문양을 놋그릇에 적용시킬 수도 있고 더 앞당겨 고분에 응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작품에 녹여내려면 역사적인 리서치를 많이 해야 하는데 학습과정에서 야사나 에피소드를 만나게 되면 거기에 흠뻑 젖어 충만한 영감을 얻는 기쁨이 매우 크다. 그런 맥락에서 ‘시뮬라크르’연작은 원본 없는 가상의 진실이다.”

작품 뒤 무수한 지문의 책임감

“혹자는 나의 작품 클로 펜(Klopfen), 프랙탈(Fractal),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찾아가는 행렬도를 원의 구도로 작업한 ‘To Father’ 등 이번 전시에 선보일 명제의 둥근 작품들을 보고 블랙홀 같다고도 한다. 이 문을 열고 관람자가 다다르고자하는 역사의 시간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문수만 작가
는 한남대학교대학원 조형미술학과 석사 졸업했다. 이번 열네 번째 ‘시간의 문’초대 개인전은 200호 대작 몇 점을 포함해 2018년 1월 20일부터 2월 2일까지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갤러리지오’에서 열린다.

한편 화가의 인생행로를 어떻게 소감하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작업을 하면서 심리적으로 나약해질 때 극도의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항상 어떤 도움이 뒤따랐다. 그것도 확 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숨통을 틔워줄 정도로. 그래서 또 열심히 한다. 그러다 슬럼프에 빠지면 또 뭔가 긍정적인 것이 있었다. 스스로도 참 신기해하고 있다. 작품 뒤에는 선을 긋고 색을 칠하고 긁어낸 무수히 많은 나의 지문이 찍혀 있다. 그것을 작가의 엄중한 책임이라 여긴다.”

권동철 @hankooki.com

<작품 및 인물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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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만(文水萬,ARTIST MOON SOO MAN)작가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