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 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이방인(L'Etranger),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민음사 刊>
물은 불을 녹인다. 타들어가다 마침내 까만 잿빛이 되어 떨어지면 기꺼이 불의 기억을 삼킨다. 흘러간다. 낮고 좁은 물줄기가 억겁시간을 품은 저 심연의 바다에 닿는다. 마침내 물과 불이 하나가 되는 고요 속으로 영혼은 안식을 누린다.
삶의 불꽃 그 빛나던 영혼이 침윤되는 오오 생채기를 애무하는 물의 침묵처럼, 첼리스트 스테판 하우저가 연주하는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망각(Oblivion)’ 선율이 빗살을 타고 저 아득한 곳까지 스며들며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데…. 화면은 분말, 메틸알코올, 오공본드, 아크릴 등을 혼합해 물감을 직접 만들어서 쓰고 인위적인 것을 배재한 오토마티즘(Automatisme) 기법으로 염료의 분산과 집중을 통한 작업이다.
박종철 화백은 바다를 청각화한 드뷔시의 ‘라 메르(La Mer)’, 전후(戰後) 일본작가 아베 코오보오 소설 ‘砂の女(모래의 여인)’을 테시가와라 히로시 감독이 영화로 만든 실존주의 상징의 흑백필름, 까뮈와 니체 작품세계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나를 정화(淨化)시켜준, 수평선
“대부도에서 6년간 작업했다. 그곳서 한동안 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면서 지냈다. 밀물과 썰물 때의 감성이 요동칠 때 까닭모를 눈물도 흘렸다. 수평선이 나를 정화(淨化)시켜주었고 다시 붓을 들었다. 바다가 내 미학의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를 희망했고, 그렇게 되었다.”
한편, 화업 45년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소회를 물어보았다. “젊은 날 문학, 사진, 연극영화에 심취한 직간접적 체험을 미의 본질과 관련짓고 글로 표현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일흔 나이에 돌아보니 미술인으로서의 삶이 잘못되지는 않았다!”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