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건설사 수사…현대ㆍGSㆍ대우ㆍ롯데 등 타깃

지난 연말에 이어 올해도 검·경 수사 이어져 재건축 수주 비리 관련 수사 확대 가능성 커져 정동영 “도정법 개정으로 재개발·재건축 적폐 청산해야”

(사진=연합뉴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건설업계를 향한 당국의 수사 움직임이 점점 확대되는 형국이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0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대우건설의 종로구 본사와 강남지사 사무실 등 3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각종 계약서와 관련 회계자료를 압수했다. 경찰은 수개월 전부터 서울 강남 신반포 15차 사업장에서 대형 건설사들의 재건축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를 벌여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반포 15차는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맞붙었던 재건축 사업이었다. 건설사 수사는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작년 10월, 서초경찰서는 잠원동 한신4지구의 조합원이 용역업체 관계자인 홍보(OS)요원으로부터 금품 등을 받았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를 시작했다. 이후 10월과 11월, 롯데건설 건설본부와 본사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당시 경쟁업체였던 GS건설은 ‘불법 매표 시도 근절을 위한 신고센터’를 통해 롯데건설이 현금과 명품 핸드백 등 25건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시공사로는 GS건설이 선정된 바 있다.

치열했던 2017년 재건축 수주전쟁…건설업계 민낯 드러내나 지난해 강남권 재건축 수주 규모는 역대 최대 규모로 약 8조 원에 다다른다. 주로 지난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시공사가 선정됐다. 시공사를 급하게 선정한 이유는 초과이익환수제 때문이었다. 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으로 발생한 이익이 평균 3000만원이 넘으면 초과금액의 최대 50%를 세금으로 내는 제도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시행됐지만 주택시장 침체 등의 이유로 2012년 12월부터 2014년 연말까지 2년여 동안 유예됐다가 2017년 12월 31일까지 3년 간 추가로 유예됐다. 지난해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관련법 유예안이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폐기돼 올해부터 다시 시행됐다.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해 재건축 시공사를 선정했지만 그에 따른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홍보대행사들이 수주 경쟁 과정에서 재건축 조합원들에게 과일 상자나 상품권, 가전제품 등을 경쟁하는 등 각종 불법 행위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수사당국의 잇따른 건설사 압수수색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됐다. 경찰은 이미 지난해 10월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강남4구 재건축 비리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주 수사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수사선상에 오른 건설사들은 대부분 지난해 수주전에서 좋은 실적을 거둔 바 있다. 현대건설은 공사비 2조6400억 원 규모의 반포주공 1단지를 비롯해 일원대우(529억 원), 방배5구역(7700억 원) 등 전국 총 9개 정비사업, 4조 6000여억 원의 재건축 사업을 따냈다. 수주 규모로 따지면 업계 1위다. GS건설은 한신4지구(9350억 원)을 포함해 수원 영통2구역 등 전국 10개 사업의 수주 전쟁에서 승리했다. 공사비는 총 3조 7000여억 원 규모다. 대우건설은 공사비 2098억 원의 신반포15차를 비롯해 총 9개 사업, 2조 8000여 억 원의 수주 실적을 거뒀다. 이어 롯데건설은 미성·크로바아파트(4700억 원), 신반포 13차·14차 등 2조 원에 가까운 재건축 수주를 따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사태가 10여년 만에 대규모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2006년, 서울중앙지검 등 16개 지검 및 지청의 '재개발·재건축 비리 합동수사부'는 약 6개월 간 재개발·재건축 관련 비리를 집중 단속, 총 127명을 입건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검찰은 재개발 아파트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추진위원 등에게 3억 원을 제공한 건설회사 임원과 분양대금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해 재건축 조합장에게 건넨 업체 직원 등 37명을 구속기소했다.

“비리 드러날 경우 시공권 박탈해야” 업계에서는 과열된 재건축 시장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부동산 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조치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질적인 재건축 비리를 바로 잡기 위해 수사당국의 개입은 불가피한 조치”라며 “의미있는 수사 결과가 나올 경우 과열 양상이 잦아들고 깨끗한 수주 문화가 정착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도 요동치는 강남지역 재건축 시장에 대한 압박 신호”라며 “과거처럼 일부 임원의 위법으로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건설사에도 책임을 물어야 악순환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현재 건설산업기본법 등에 나와 있는 비리 적발 건설사 입찰 제한을 넘어서 시공사의 시공권 박탈 수준의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건설사나 용역업체뿐만 아니라 조합원들도 관여한 비리이기 때문에 공동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도정법 개정으로 재개발·재건축 적폐 청산해야”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입법을 통한 규제를 다시 주장했다. 정 의원은 지난 11일 “재건축 조합원 대상 금품 살포 역시 재개발?재건축 사업 추진 과정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던 일”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공공연한 불법 매표행위를 금지하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적폐를 청산하기 원한다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개정만이 해답”이라며 조속한 법 통과를 촉구했다. 현재 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벌건설사의 이사비 지원과 시중금리 이하 자금 융자 중개?알선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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