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전환 속도 내는 기업 속내는 결국 돈과 지배력 강화?

효성ㆍ대림ㆍ한일시멘트, 지주사 전환 대열에 합류

전문가 “올해 말로 끝나는 조세 이연 혜택 보려 전환하는 것”

지주사 악용 문제도 수면 위로…사익 편취하고 지배구조만 공고히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는 재계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지난해 롯데, 현대중공업, SK케미칼 등에 이어 재계 25위 효성이 새해 벽두부터 지주사 전환을 천명하고 나섰다. 여타 기업들도 지주사 전환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재계가 지주사 전환에 힘쓰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정책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기업 개혁 과제로 총수 일가의 편법 지배력 확장 억제, 지배구조 개선, 일감 몰아주기 해소 등을 꼽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 위원장은 취임이후 기업의 자발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그 가운데 하나 지배구조 개선이다. (사진=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공정위 수장 취임 이후 “재계의 자발적 변화를 기다리겠지만 이러다가 실기(失期)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정부가 정책적으로 할 일을 수행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주어진 시간은 많지 많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주사 전환이 순환출자 고리 해소라는 긍정적 효과만 있을 뿐 오너 일가를 비롯한 최대주주들이 사익을 편취하고 지배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새해 첫 지주사 전환 선언, 효성

효성은 지난 1월 3일, 지주사로 전환하지 않은 기업 가운데 올해 처음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발표했다. 효성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효성을 지주회사와 4개의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방안을 결의했다. 효성은 투자를 담당할 존속법인인 지주회사와 분할회사인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첨단소재, 효성화학 등 4개의 사업회사로 나뉘게 된다.

지주회사인 효성은 자회사의 지분관리와 투자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는다. 효성티앤씨는 섬유·무역 부문, 효성중공업은 중공업과 건설 부문, 효성첨단소재는 산업자재 부문, 효성화학은 화학부문을 맡는다. 국내외 계열사는 신설회사 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계열사 주식은 해당 신설회사로 승계하고 나머지는 지주사인 효성이 갖는다.

재계에서는 효성의 지주사 전환으로 조현준 회장의 그룹 장악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효성은 조 회장이 지난해 1월 취임한 뒤 ‘오너 3세 경영 시대’를 맞고 있다. 효성의 최대 주주인 조 회장은 현재 지분 14.27%를 갖고 있다. 이어 조 회장의 동생인 조현상 효성 사장이 12.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 형제의 아버지인 조석래 전 회장의 지분은 10.18%다. 재계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으로 효성은 오너 지배력 강화와 기업가치 증대라는 효과를 얻게 됐다”며 “지주사 전환으로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되면서 오너일가의 지주사 지분율은 40%를 훌쩍 넘길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대림, 주식 매수로 순환출자 고리 끊을 듯

대림그룹도 지배구조 손질에 나선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림코퍼레이션은 오는 9일부터 29일까지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과 오라관광 등이 가진 자사 주식 55만 주(5.22%)를 447억 원에 취득하기로 했다. 오라관광은 보유 중인 대림코퍼레이션 주식 4.3%를 전량 처분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 1월 일감 몰아주기를 해소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등 경영을 전면 쇄신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현재 대림그룹은 ‘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오라관광→대림코퍼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오라관광이 대림코퍼레이션 주식 매각을 마무리하면 대림그룹의 순환출자 고리가 끊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라관광 보유지분이 4.3%에 불과해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정도의 변화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보다 매각과정에서 비상장 지주사인 대림코퍼레이션의 기업가치가 드러난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대림은 또한 총수일가 지분이 많은 켐텍에 대해 올해부터 신규 계열사 거래를 중단하고 기존 거래를 정리하기로 했다. 켐텍은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해창 대표와 아들인 이주영 씨가 68.37%, 23.72%의 지분을 가진 개인회사다. 화학물질 및 제품 도매업으로 2016년 기준 매출액 1461억 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국내계열사 물량은 345억 원에 달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가 중단된다면 켐텍의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동안 내부 거래 규모가 얼마나 크고 지속적이었는지 새삼 보여주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일시멘트, 인적분할 통해 지주사 전환 결정

한일시멘트도 지주사 전환 대열에 합류했다. 한일시멘트는 지난 1월, 인적분할을 통해 '한일시멘트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분할회사는 한일홀딩스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해 존속하기로 결정했다.

한일시멘트그룹의 출자구조는 허정섭 명예회장→한일시멘트→주요계열사의 수직형 구조와 함께 오너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비상장 계열사 등으로 이중구조가 형성돼 있다. 지배회사인 한일시멘트주시회사는 총 22개의 계열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 현대시멘트, 한일네트웍스 두 개의 상장사와 20개의 비상장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한일시멘트는 현대시멘트를 인수하면서 계열회사들의 비중이 상당히 커져있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순환출자 형태로 복잡한 지분구조를 유지하는 것보다 지주회사와 계열사 간의 지분구조로 정리하면서, 계열사 하나가 부실화됐을 때 타 계열사들이 정상적으로 영업익 이어가고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한일시멘트의 지주사 전환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일시멘트처럼 우량자산이 많고 저평가된 기업일수록 지주사 전환 시 주가 상승여력이 높다”며 “사양산업으로만 인식됐던 시멘트 업계가 지배구조 효율화와 적극적인 투자로 구조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주사 전환 속내는 결국은 돈? 

많은 대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서두르는 이유는 조세이연 때문이다. 현 ‘조세특례제한법’에서는 내국법인의 내국인 주주가 일정기한까지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현물 출자함에 따라 지주회사를 설립 또는 전환하는 경우 현물출자로 인해 발생한 양도차익 금액에 그 주주가 해당 지주회사의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양도소득세 및 법인세의 과세를 이연해주고 있다. 조세특례제한법 상 지주회사에 대한 과세이연은 1997 년 12 월 13 일 신설됐고 올해 말인 12월 31일 일몰기한이다. 이를 의식해 지난해부터 지주사 전환 열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인 이은정 회계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과세 이연으로 인한 혜택 대부분은 지주회사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회계사는 또 “현행 양도세율과 금리를 감안했을 때 지배주주 일가의 납세부담은 10 년 정도의 과세가 이연될 경우 이로부터 발생한 이자수익에 의해 완전히 상쇄되며 그 이상이 되면 양도세 이연에 따라 지배주주 일가가 누리는 편익이 납세의 부담을 뛰어넘게 된다”고 지적했다. 조세형평성 위반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지주사 전환은 세금 절감 효과도 있다. 현행 ‘상속세및증여세법’에서는 지배주주 등이 주주인 법인에게 특수관계에 있는 법인이 일감을 몰아주어 이들 지배주주 등이 얻게 되는 간접적인 이익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가 수혜법인인 경우 지주회사와 자회사(및 손자회사등)와의 거래 그리고 자회사(및 손자회사)간의 거래의 일정비율은 일감몰아주기 매출비율 계산에 있어 예외를 인정(과세제외매출)해 주고 있다. 지주회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오너 일가는 상당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다.

유명무실 지주사 전환…최대주주 지배력만 공고히

지주회사 전환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뿐 주주가치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20일,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이 2010~2017년 사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발표한 68개 상장사 가운데 시가총액이 3000억 원이 넘는 43곳을 조사한 결과, 시총은 되레 감소하고 배당수익도 높아지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쪼개 재상장한 뒤 1년이 경과한 시점의 합산 시총이 분할 전에 견줘 5% 이상 상승한 기업은 12곳(41.4%)에 그쳤다. 반면 시총이 5% 이상 하락한 기업은 16곳(55.2%)으로 이보다 많았다.

배당수익 증가 효과도 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할 전후 2~3개 사업연도의 평균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금 비율)을 비교한 결과, 합산 배당성향이 증가한 기업은 조사 대상 22개 기업 가운데 9곳에 그쳤고 10곳은 배당성향이 오히려 낮아졌다.

반면 최대주주의 지주회사 장악력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할 뒤 1년 후 지주회사의 최대주주 지분율이 급등한 것이다. 코오롱, 한국타이어월드 등 6곳은 30%p 넘게 올랐다. 지배구조 개선과 책임경영으로 주주가치를 증대한다는 명목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했지만 실상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양지환 연구원은 “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오너 일가의 사업승계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의식해 정부는 지난해 7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주회사의 자산 총액 요건이 기존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상향 ▦지주회사 자산 요건에 대한 재검토(3년 주기) 및 재검토 고려요소(국민경제 규모 변화, 지주회사 자산총액 변화, 지주회사 간 자산총액 차이 등)와 관련한 근거규정이 마련하면서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가 강화했다. 국회에서도 지주회사 규제법안 입법을 추진 중이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자기주식을 활용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의 인적분할 시 자사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도 지주회사의 자회사 및 손자 회사의 지분율을 높이는 당정의 입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꼼수 지주사 전환? 공정위 실태조사 들어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주회사는 기업구조조정 촉진과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투명성 제고를 위해 설립이 허용됐지만, 경제력 집중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총수일가 지분이 집중된 지주회사가 자·손자회사 등 소속 회사와의 거래를 통해 배당 외 편법적 방식으로 사익을 편취하고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공정위는 최근 지주사 수익구조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62개 지주회사를 대상으로 수익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대상은 농협금융지주, SK, LG,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자산규모 5000억 원 이상 55개 지주회사이며 자산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대기업집단 소속인 7개 지주회사( SK, LG, GS, 현대중공업, 농협, 한진, 부영, 삼성, 한화)도 포함됐다.

주요 조사항목은 ▦지주회사 및 자·손자회사의 일반 현황 ▦최근 5년간 지주회사의 매출유형별 규모·비중 등이다. 대기업집단 소속 38개 지주회사의 경우 지주회사와 자·손자·증손회사 간 거래현황도 조사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오는 4월 중순까지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8월에는 지주회사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지주회사의 자발적 협조를 받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현황을 파악할 예정”이라며 “개인정보 또는 법 위반 혐의 포착으로 오인 가능한 개별 거래정보는 요청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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