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빕 구르망’ 선정…좋은 국산콩, 정성, ‘나만의 두부’ 만들어

2013년 문 열어… 국내ㆍ일본 유명 두부집 찾아 연구, 두부 제조에 열정

매일 아침 직접 두부 만들어… 최고의 두부 만드는데 최선

이순신의 연포탕(軟泡湯)은 두부 탕…단골들 즐기는‘두부젓국’과 유사

'황금콩밭'의 윤태현 대표
명쾌하다. 알고 있는 내용, 스스로 확신이 있는 부분은 정확하게 이야기한다. 아슴아슴하거나 부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전국의 두부 만드는 곳 대부분을 가봤다”라고 이야기한다. 좋다, 나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가봤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나만의 두부’를 만든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황금콩밭’의 윤태현 대표. 음식점 사장으로는 늦깎이다.

미쉐린 ‘빕 구르망’ 선정, 달라진 것은 없다

‘황금콩밭’. 그리 오래된 가게는 아니다. 메뉴도 평범하다. 두부 요리가 대부분이다. 모두부 생두부를 내고 두부가 들어간 몇몇 전골류의 음식이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고 술안주다.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2017년 미쉐린에서 ‘빕 구르망(Bib Gourmant)’으로 선정했다. 음식 가격이 그리 높지 않지만 진정성이 있는 음식점을 고르고 ‘빕 구르망’으로 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흔히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여긴다. ‘가성비’라는 표현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을 두고 ‘가격 대비 성능’이라니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어쨌든 괜찮은 음식점으로 선정되었다는 뜻이다.

그 이전부터 제법 널리 알려진 집이었다. 빕 구르망 선정 후 손님이 늘었다. 주인 윤태현 대표는 무덤덤하다. 빕 구르망 선정을 전후해 음식 내용이 바뀐 것은 없다.

모두부. 겉면이 거칠지만 상당히 부드럽다.
황금콩밭 두부요리
“인근 아파트의 주민들이 상당수 새롭게 가게를 찾습니다. 그 이외에는 별로 바뀐 게 없지요. 얼마 전 좌식이었던 식탁을 입식으로 바꿨습니다. 요즘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들도 좌식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가게 앞부분은 입식으로 바꾸고 가게 뒤의 예약석은 아직 좌식으로 두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여전히 좌식이 편하다고들 하시니까요.”

올해 쉰다섯 살. 1964년생이다. 고향은 경북 안동, 영주 언저리다. 안동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엔 영주에서 자랐다. 중3 무렵 서울로 유학 왔다. 영주 인근을 떠돈 것은 아버지의 직업이 철도공무원이기 때문.

어린 나이에 서울로 와서 이래저래 방황도 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에 진학했다. 늦었다. 그 시간만큼 방황했다는 뜻이다. 원래 직업은 방송작가였다.

방송작가 생활,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 생활도 겪었다. 희곡을 쓰며 한때는 방송대본 데이터베이스(D/B)구축 일도 했다. 출판사도 운영했다.

어느 순간 불면증이 찾아왔다.

“방송작가 생활이라는 게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지 않습니다. 히트 작가가 되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대부분 힘들지요. 작품을 몇 달씩 기획하다가 무너지면 그야말로 실업자보다 못한 상태가 되기도 하고요.”

출판사도 사양업종이었다. 이런저런 책을 냈지만 어차피 대중적인 책이 아니라 방송 대본 등을 묶어내는 전문 출판사였다. 전문서적을 내는 출판사의 상황이 좋을 리는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판에 불면증까지 찾아왔다.

연포탕이다. '황금콩밭'에서는 '두부젓국'으로 부른다
두부는 잔치음식이다

두부는 간단치 않은 식재료다. 고려시대에는 사찰에서 두부를 만들어 민간에 팔았다. 두부 만들 콩을 비축하고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사찰 정도였다.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두부는 귀한 음식, 식재료였다. 왕릉 옆에는 두부를 공급하는 조포사(造泡寺)가 있었다. 두부는 쉬 상한다. 왕릉 제사에 반드시 필요한 두부를 인근의 사찰에서 만들었다.

추사 김정희는 “두부는 나이든 사람에게 아주 좋은 반찬”이라고 했다. 임진왜란 시기, 성웅 이순신은 한때 벼슬을 버리고 백의종군한다. 이순신은 권율 장군의 거처인 합천 초계 부근으로 간다. 이때 초계의 벼슬아치가 이른 아침 이순신의 거처에 와서 음식을 건넨다. 이 음식이 바로 연포탕(軟泡湯)이다.

연포탕은 연한, 부드러운 두부탕이다. ‘포(泡)’는 거품이다. 두부를 만들 때 거품이 일어나니 거품으로 두부를 빗댔다. 연포탕은 고급 음식이었다. 진귀한 식재료가 아니라 두부를 만드는 공력이 무거워서 귀한 음식으로 대접 받았다.

숙종 7년(1681년) 6월, ‘평안도 암행어사 목임일의 연포탕’이 문제가 된다. “암행어사 목임일은 (평안도)찰방, 적객(謫客) 등과 어울려 산사로 돌아다녔고 연포회를 베풀었다”는 내용이다. ‘적객’은 귀양살이 온 사람이다. 암행어사가 공무원(찰방), 적객과 ‘프리미엄 연포탕’를 즐겼으니 중죄다. ‘프리미엄 연포탕’은 두부와 더불어 닭고기, 닭고기 국물을 같이 사용했다. 약 150년 후인 1849년 펴낸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시월의 음식은 연포탕이다. 두부를 잘게 썰어 꼬챙이에 꿰서 지진 다음, 닭고기와 함께 끓인 것이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불면증이 심하게 왔습니다.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으니 음식 장사 생각을 했지요. 어린 시절부터 늘 봤던 음식, 잔칫날 봤던 음식이 국수나 두부였습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먹었던 잔치음식입니다. 이걸 사람들에게 대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니 그 시간에 두부를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청국장 찌게
청국장을 만드는 모습. 삶은 콩을 다지기 직전이다.
식당에서 사용할 정도의 두부를 사람 손으로 만들려면 매일 새벽 대여섯 시에는 일어나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두부는 하루 이상 묵힐 수 없다. 갓 만든 두부는 어느 두부보다 맛있다. 물에 담거나 별도의 약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두부는 쉬 상한다. 여름철에는 냉장 보관을 해도 하루를 넘기기 힘들다. 두부 맛을 따지자면 만든 후 두어 시간 이내에 먹는 것이 가장 낫다.

‘황금콩밭’ 단골들은 “‘황금콩밭’의 두부는 11시 30분에 제일 맛있다”고 말한다. 실제 가게 밖에 “11시 30분에 두부가 나온다”고 써붙였다.

며칠 사용할 두부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부는 만들기 어렵지 않다. 간단한 레시피로 두부를 만들 수 있다. 가정용 두부 제조기도 이미 나왔다. 누구나 간단하게 두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두부’를 만드는 것은 간단치 않다.

“좋은 콩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경북 영주의 콩을 구해서 사용합니다. 고향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봤던 콩이고 집안에서 음식 장만하는 분들의 음식 솜씨가 영주콩에 맞춰져 있습니다. 올해(2018년)에는 경기도 연천콩을 일부 사용했습니다. 잠깐이지만 영주에서 원하는 콩을 구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 콩을 구했습니다.”

좋은 콩을 구하고 늘 살핀다. 콩을 물에 씻는다. 이때 콩의 수분 정도를 포함한 갖가지 상태를 손끝으로 가늠해야 한다. 계절마다,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라 다르다. 콩을 수확한 시기의 날씨도 콩 상태에 영향을 끼친다. 손끝의 감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두부전골
음식의 원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2013년 8월에 ‘황금콩밭’의 문을 열었다. 5년이 채 되지 않는 업력이다. 음식점 역사로는 그리 길지 않다. 두부에 전력을 다했다. 감히 “전국의 이름난 두부 집들은 웬만큼 가봤다” “일본의 유명 두부집들도 30곳 정도 가봤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두부 만드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어차피 예전의 두부는 이제 만들 수 없습니다. 콩 품종이 달라졌고 두부 만드는 과정, 사용하는 기구들도 대부분 달라졌습니다. 예전의 두부를 만들 필요도 없고요.”

버섯 등이 들어간 버섯전골
‘좋은 두부’는 어떤 것일까? 예전부터 두부 꼴을 갖추되 질감이 부드러운 두부를 일컬었다.

고려 말의 문신 목은 이색(1328∼1396년)은 “오랜만에 만나는 두부가 마치 갓 썰어낸 비계 같고, 성긴 이로 먹기에도 그저 그만”이라고 했다(<목은시고> 제33권).

“좋은 콩을 구하면 그 다음에는 간수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두부 맛은 달라집니다. 예전처럼 바닷물을 사용할 수도 없고, 소금에서 나오는 간수를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간수 대신 사용하는 재료가 있지요. 간수의 종류와 양, 콩물을 낼 때 물의 양, 사용하는 불에 따라서 두부 맛은 달라집니다. 콩물이 많으면 브릭스(BRIX)는 낮아지지요. 콩물이 끓어도 잘 넘치지 않고 조절하기도 편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면 그의 두부에 대한 열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부드러운 두부의 ‘비밀’은 사용하는 간수의 양이다. 간수를 적게 쓸수록 두부는 부드러워진다. 거꾸로 두부를 응고시키는 힘은 약하다. 잘 엉기게 그러나 부드럽게, 간수의 양으로 이 부분을 조정한다.

“어린 시절 잔치 때 먹었던 두부나 잔치국수뿐만 아니라 헛제삿밥도 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생태탕, 곰탕도 언젠가 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 때 ‘원가 비율’을 고집한 적이 없다. 원가가 어떨까에 대해서 고민한 적도 없다. 만들고 싶고, 손님들에게 내놓고 싶은 음식을 성심껏 손질해서 내놓을 뿐이다. 제주도 돼지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 친분 있는 제주도 돼지고기 거래처를 통해 수육용 돼지고기를 받는다. 고향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고향에서 먹었던 고기만큼 맛있는 것이기에 서슴지 않고 선택했다.

“기쁠 때 먹었던 음식, 그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놓고 싶다”

소박한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만들고 내놓는다. 그뿐이다.

최근 입식으로 바뀐 실내.
사족 한 토막

‘황금콩밭’에는 ‘두부젓국’이라는 메뉴가 있다. 수제두부와 새우젓갈 정도로 간을 한 음식이다. 맑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이 음식이 나온다. 연포탕이다. 이 연포탕에 홀려서 여러 번 갔고 단골이 되었다. 연포탕은 두부 탕이다. 두부가 주인이다. 고춧가루나 참깨 등의 양념 맛이 아니라 두부 맛으로 먹을 일이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두부맛집 4곳]

양구재래식손두부

‘짜박두부’는 강원도에서 먹는 두부조림이다. 일반적인 두부조림보다는 물기가 많은 편. ‘양구재래식손두부’는 짜박두부를 널리 알린 공로가 있다. 자체 제조, 수제두부다.

고향집

황골엿으로 유명한 원주 황골 마을 인근의 수제두부 전문점이다. 허름한 건물이지만 주차장은 상당히 넓다. 두부는 예전 시골 두부의 맛이다.

산골손두부해물칼국수

두부도 좋지만 감자전과 비지장 찌개가 일품이다. 비지장찌개는 이 가게에서 콩 비지찌개로 부른다. 비지장과 더불어 두부, 신 김치 등 몇몇 식재료를 더한다.

원조김영애순두부

서울에서도 유명한 속초 ‘학사평 두부’의 원조다. 이 마을 이름이 학사평, 최근에는 콩꽃마을로 부른다. 이른 새벽 순두부를 몇몇 정갈한 반찬과 더불어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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