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자전거 우선도로를 자전거 전용차로(?)

자전거 도로, 차량 통행 불가한 자전거 전용차로 & 가능한 자전거 우선도로로 나뉘어

A씨 차량, 우회전 중 자전거 도로 달리던 B씨 차량과 충돌

A씨 차량 보험사 메리츠화재, B씨 100% 과실 주장

법원, 사고 당시 B씨 차량 주행 중이던 차량에 ‘자전거 우선도로’ 판단

명백한 자전거 우선도로를 자전거 전용차로로 주장하며 교통사고 상대 측 100% 과실을 주장하다 패소한 메리츠화재의 사례가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자전거 우선도로를 자전거 전용차로라고 주장하며, 교통사고에 대한 상대 측 100% 과실을 주장하다 법정 패소한 메리츠화재(대표 김용범)의 사례가 최근 밝혀졌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량으로 분류돼 자동차 도로로 통행을 해야 한다.

물론 인도 우측 가장자리에 자전거 전용로가 있다면 그곳으로 다닐 수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원칙상 자전거는 차도로 통행해야 한다.

차도에 자전거 도로가 있다면, 자전거는 이 차로 위에서 우선적으로 통행할 수 있다.

사실 자전거 도로는 자동차 차로와 구분된 이유가 통행의 안전을 위함인 만큼, 원칙적으로 자전거 도로 위에는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다.

실제로 도로교통법 제13조 제6호에 따르면, 자전거를 제외한 차마의 운전자는 안전표지로 통행이 허용된 장소를 제외하고는 자전거 도로 또는 길 가장자리 구역으로 통행해서는 안 된다.

물론 자동차가 절대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법 조항의 말미에는 ‘다만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4호에 따른 자전거 우선도로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3조에서는 자전거 도로를 자전거 전용차로와 자전거 우선도로로 나누고 있다.

전자인 자전거 전용차로는 차도의 일정 부분을 자전거만 통행하도록 차선 및 안전 표시나 노면표시로 다른 차가 통행하는 차로와 구분한 곳을 말한다.

자전거 전용차로의 노면에는 보통 짙은 자주색 페인트와 함께 자전거 모양의 무늬가 칠해져 있다. 또 자동차 도로와 경계로 백색과 황색 실선이 그어져 있어, 자동차와 자전거의 안전한 통행을 도모하고 있다.

자전거 우선도로의 경우 자동차의 통행량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보다 적은 도로의 일부 구간 및 차로를 정해 자전거와 다른 차가 상호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도로에 노면표시로 설치해 놓고 있다.

자전거 우선도로는 일반적으로 차도의 우측 가장자리에 있지만, 한 가운데 차로에 위치한 곳도 있다. 이곳의 노면에도 자전거 그림과 진행방향을 의미하는 꺾쇠괄호 또는 화살표가 칠해져 있다.

정리해 보자면, 자전거 전용차로는 오로지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다. 반면 자전거 우선도로는 자전거의 통행이 우선시 될 뿐 자동차 역시 지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자전거 전용차로(왼쪽)와 자전거 우선도로(오른쪽). 자전거 전용차로는 오로지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어, 도로 차로 사이에 장애물이 설치돼 있고, 지면에 자주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반면 자전거 우선도로는 자전거의 통행이 우선시 될 뿐 자동차 통행도 가능하다. (사진=한민철 기자)
자전거 우선도로의 대표적인 예는 우회전 교차로 지점이다. 자전거 도로가 차도 우측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는 만큼, 보통 우회전 교차로에서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우선도로로 바뀌어 차량이 우회전을 위해 통행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운전자들에게 ‘자전거 도로에서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라는 원칙은 마치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져 있다.

때문에 자전거 도로에서 차량 간 사고가 났을 때, 당사자 간 과실비율을 따지며 무조건 자전거 도로를 통행한 차량에 더 큰 과실을 물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 운전자들은 자전거 우선도로에 차량이 다닐 수 있다는 점을 모를 수 있어 이런 오해를 할 소지가 있다.

그런데 보험사들조차 해당 자전거 도로가 자전거 전용차로인지 우선도로인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해 과실 산정에 착오를 겪는 경우도 있다.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이하 메리츠화재)의 사례가 그랬다. 자전거 우선도로를 달리던 차량에 자전거 전용차로를 주행하다 사고를 일으켰다며 과실을 일방적으로 물으려 했지만, 결국 소송 끝에 패소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자전거 전용차로였던 곳… 명백한 자전거 우선도로 변경

지난해 초 A씨가 운전하던 차량은 편도 3차선 도로의 3차로를 지나고 있었다. 이 도로 3차로의 우측 가장자리에는 노면에 자전거 표시가 칠해진 자전거 도로가 또 한 개의 차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A씨는 교차로 부근에서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우회전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B씨의 차량과 충돌했다. B씨는 A씨 차량 바로 오른쪽 차로에 위치한 자전거 도로를 주행 중이었고 그 역시 A씨가 진출하던 쪽으로 우회전을 시도하는 도중이었다.

사고 후 A씨 차량에 대해 자동차보험계약을 체결 중이었던 메리츠화재는 A씨 측에 이번 사고로 인해 소요된 자동차 수리비를 보험금으로 지급했다.

이후 메리츠화재는 B씨 차량과 자동차보험계약이 된 보험사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

메리츠화재 측 주장에 따르면, 사고 당시 A씨 차량은 이미 우회전 차로에서 정상적으로 우회전을 하고 있었고, B씨의 차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 자전거 전용차로를 주행하다 우회전함으로써 사고를 유발했다는 설명이었다.

메리츠화재 측은 이 사고가 전적으로 B씨의 과실로 인해 발생했기에 자사가 A씨에 지급한 보험금만큼의 금액을 B씨 측 보험사가 변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B씨 측 보험사는 메리츠화재의 이런 주장을 강력히 반박했다. 사고 당시 B씨가 통행하던 곳은 메리츠화재 측 주장처럼 자전거 전용차로가 아닌, 차량 통행이 허용되는 자전거 우선도로였다는 지적이었다.

때문에 이곳에서의 우회전 진출이 과실로 작용하지 않았고, A씨가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우회전에 오히려 B씨 차량의 정상적인 통행에 장애를 줬다는 설명이었다. B씨 측 보험사는 이 사고에 관해 A씨의 과실 비율이 최소 80% 이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메리츠화재 측은 B씨 측 보험사의 주장에 납득할 수 없어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에 이어 지난달 항소심에서도 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

법원 판결 근거는 간단명료했다. 사고 당시 B씨가 통행하던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전용차로가 아닌, 자전거 우선도로였다는 점이었다.

법원 판결을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B씨 차량이 당시 진행하던 자전거 도로는 황색 실선 및 백색 실선으로 분리돼 있었고 노면에 자주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여기까지는 명백히 차량이 통행할 수 없는 자전거 전용차로였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난 우회전 교차로 지점에 이르러, 황색 실선 및 백색 실선은 각각 같은 색의 ‘점선’으로 변경됐다.

위 사진에서처럼 파란색 동그라미 부분은 아직까지 자전거 전용차로였지만, 빨간색 동그라미 부분에 이르면서 자전거 우선도로로 바뀌며 자동차 역시 진출 가능한 차선이었다. (사진=한민철 기자)
도로교통 상식이지만, 실선은 차선 끼어들기를 할 수 없고 점선은 끼어들기가 가능해진다. 더욱이 황색 점선과 백색 점선이 형성된 곳에서는 더 이상 자주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 지점 자전거 도로 노면에는 우회전 방향으로 진출이 가능하다는 뜻의 둥그런 곡선 형태로 황색 점선이 표시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해 보자면, B씨 차량이 당시 주행하던 자전거 도로는 원래 자전거 전용차로였지만, 우회전 교차로 진입에 앞서 자전거 우선도로로 바뀐 셈이었다. 사고 당시의 이 자전거 도로는 차량이 통행 가능한 자전거 우선도로였다는 의미였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사고 지점 부근 자전거 도로가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호에서 정한 자전거 전용차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같은 조 제4호에서 정한 자전거 우선도로에 해당된다고 함이 상당하다”라며 “B씨 차량이 주행하던 자전거 도로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A씨 차량은 우회전을 하려고 하면서 미리 우측 가장자리, 즉 B씨 차량이 주행하던 자전거 도로로 진출하지 않은 채 우회전을 시도해 도로교통법상 교차로 통행 위반에 해당했다.

무엇보다 A씨가 우회전 시도를 할 때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지도 않은 점은 신호의무 위반으로, 이 사건 사고가 A씨의 전적인 과실로 발생했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메리츠화재의 주장은 법원으로부터 한 가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었다.

이번 사례는 자전거 도로 주행 법 규정에 관해 잘 모를 수 있는 운전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자전거 전용차로와 자전거 우선도로에 대해 착오 없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보험사인 메리츠화재가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상대 측 과실을 물으려 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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