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개발 대신 맥주 수입하는 주류업체…수제맥주만 전전긍긍

주세법 역차별 주장하는 주류업계…수입맥주로 수익 충당

관세 철폐로 미국·유럽연합 맥주 공습 이어질 가능성 ↑

맥아 함량 낮춰 가성비 높인 발포주 돌풍…알면서 개발 안했나

수입맥주와 소비자 니즈 중복되는 수제맥주 직격탄 맞을 수도

수입맥주의 열풍이 거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액은 2억6309만 달러(약 2807억 원)로 전년 대비 44.9% 증가했다. 수입맥주의 기세는 올해도 여전하다. 지난 4월까지 수입액은 9677만 달러(약 1046억 원)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3%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월드컵과 올림픽 특수로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산 맥주가 국내로 들어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입맥주의 열풍 이유는 다양한 맛의 맥주와 가성비 높은 가격 때문이다. 최근에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스페인 필스너 버지미스터 4캔을 5000원에 판매를 시작하기도 했다.

수입맥주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내 주류업체들은 볼멘소리다. 판매관리비와 이윤 등이 모두 빠진 수입가격의 72%가 주세로 부과되는 수입맥주와 다르게 국산맥주는 판매관리비, 영업비, 제주사 이윤 등을 모두 포함시켜 제조원가의 72%로 주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주세법상 국산맥주는 할인을 해도 수입맥주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입가격을 낮춰서 신고할수록 주세는 더욱 줄어들고, 이후 유통과정에서 가격을 올리면 아낀 세금은 제조사와 유통업체가 나눠 갖는 셈이다. 국내 주류업체가 동등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수입맥주의 저가 공세가 이어질 경우 업계에서는 향후 국내 맥주산업의 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볼멘소리 뒤에서는 맥주 수입에 열중

현재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은 오비맥주가 60% 초중반, 하이트진로가 20% 초반, 수입맥주가 10% 초반, 롯데주류가 3~4%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순수 국내주류 업체는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다. 오비맥주는 세계 최대 맥주 회사인 AB인베브가 2014년 인수했다.

맥주는 일반 술집에서 파는 유흥용과 마트와 같은 소매점에 공급하는 가정용으로 나눈다. 수입맥주의 경우 가정용 맥주시장에 포함된다.

수입맥주 열풍은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채널에서 시작됐다. GS25, CU,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3사의 맥주 매출 구성 비율을 보면 2012년 10%대였던 수입맥주 비중은 지난해 50%를 넘어서며 국산 맥주를 앞질렀다.

국내 주류업체 가운데 맥주 수입에 앞장서고 있는 곳은 오비맥주다. 현재 오비맥주는 버드와이저 캔, 호가든 캔을 포함해 코로나, 바스, 레벤 브로이, 하얼빈 등19종의 해외 맥주를 수입하고 있다. 2014년 인수 이후 AB인베브가 소유한 해외 브랜드 맥주가 대거 유입됐다. 경쟁사인 하이트진로는 기린, 싱하, 블랑 등 6개 맥주 브랜드를, 롯데주류는 밀러 맥주에 이어 최근에는 글로벌 맥주회사인 ‘몰슨 쿠어스’의 맥주 브랜드 ‘쿠어스 라이트’, ‘블루문’ 출시를 발표했다.

맥주 업체들이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수입맥주 브랜드를 들여오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등 업계에 따르면 각 사의 수입맥주 매출 비중은 5%가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오비맥주가 수입해 판매한 맥주의 상품매출(주세제외)은 2014년 555억, 2015년 801억 원, 2016년 1116억, 2017년 1821억 원으로 4년 사이 328% 급등했다. 하이트진로의 수입 맥주 판매액은 2016년 470억 원에서 지난해 850억 원으로 81% 늘었다. 수입맥주의 경우 일반 맥주와 달리 7~8% 마진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수입맥주의 공습은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한미FTA로 인해 지난 1월 미국 맥주에 대한 관세가 사라졌고 오는 7월에는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하는 맥주에 대해서도 무관세가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입맥주로 인해 소비자의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이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업체들은 국산맥주가 가격경쟁력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맥주를 수입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수익의 상당부분을 브랜드 사용료로 지불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부유출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맥주 업체들이 자초한 일이라는 것이다. 라거(lager) 계열의 맥주만 선보이면서 시장 점유를 위해 판촉과 홍보에만 열을 올렸을 뿐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에 대한 욕구를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천편일률적인 맥주 맛에 등 돌린 소비자를 붙잡긴 늦었다는 것이다.

뒤늦게 신제품 개발 나선 업체들…방법 알면서 안했나 못했나

2014년을 기점으로 수입맥주가 대거 유입되자 국내 맥주업체들은 대항마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롯데주류는 2014년 클라우드, 지난해에는 피츠를 선보였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필라이트를 출시했다. 이 가운데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제품은 필라이트다. 클라우드나 피츠가 유흥용 맥주 시장의 절대 강자는 카스를 겨냥했다면 필라이트는 수입맥주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가정용 시장 맥주다. 필라이트는 출시 1년만에 2억 캔을 돌파하는 등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필라이트 돌풍의 원동력은 가격이다. 필라이트는 맥주가 아닌 발포주로 분류된다. 맥아(싹을 틔운 보리) 함량이 10% 미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세법상 맥주라고 부르려면 맥아 함량이 10% 이상이어야 한다. 따라서 필라이트는 맥주에 매겨지는 주세(72%)가 아니라 기타주류의 주세(30%)가 적용된다. 필라이트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결정적 이유다. 필라이트 355ml 캔 제품의 출고가는 717원이다. 같은 용량의 라거 계열의 하이트 맥주(1239원)보다 약 42% 싸다. 가성비에 힘입어 필라이트는 출시 8개월 만에 8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백운목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필라이트는 가성비가 높은 것이 최대 장점으로, 올해 1100억 원의 매출이 기대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이트진로가 지난해 수입맥주 판매액으로 850억 원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박애란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필라이트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과 용량 다변화, 수입 브랜드의 고성장, 생산라인 정비에 따른 가동률 상승 등이 일반맥주의 적자 부담을 상쇄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침체돼 있던 국산맥주 시장에 신흥강자로 떠오른 셈이다.

일각에서는 맥주업계가 발등의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신제품 개발에 나섰다고 꼬집기도 한다.

맥아 함량이 다른 맥주는 이미 기존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발포주는 1995년 경기침체가 극심했던 일본에서 처음 출시됐다. 주세를 피해 가격을 낮추려는 노력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일본에는 맥아를 사용하지 않는 유사맥주인 ‘제3맥주’도 있다. 발포주와 제3맥주는 기존 맥주보다 가격이 저렴한데다 맥주 특유의 쓴맛이 적어 일본의 청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일본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인 아사히맥주는 시장 변화를 놓치지 않고 제3맥주인 ‘클리어 아사히’를 내놓아 실적 증가에 힘을 보탰다. 2016년 기준 일본 맥주류 시장(맥주+발포주+제3 맥주)에서는 발포주와 제3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45% 수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같은 전례가 있음에도 국내 주류업계는 점유율 싸움에만 매몰돼 신제품 개발에 손 놓고 있었다”며 “뒷짐지고 있다 수입맥주가 위협이 되자 부랴부랴 새 시장에 뛰어든 꼴”이라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일본에서도 세금 문제로 발포주 시장이 커진만큼 현재와 같은 주세가 유지될 경우 한국도 일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수입맥주 인기가 가져온 나비효과

소비자들의 수입맥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수입맥주의 전체 시장 점유율은 현재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수입맥주가 소비되는 가정용 맥주시장에서 수입맥주의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수입맥주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내 주류업체는 물론 대형 유통업체들은 앞 다퉈 수입맥주를 들여오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국내 시장에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만족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수입맥주에 대한 인기가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곳들도 생겨나고 있다. 수입맥주와 함께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수제맥주다. 수제맥주 열풍은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값싸고 다양한 수입맥주가 대형마트와 편의점을 통해 대중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찾은 블루오션이다.

현재 수제맥주 시장규모는 2016년 200억 원에서 지난해 400억 원으로 커졌다. 업계에서는 국내 수제맥주시장규모가 2023년까지 2000억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장밋빛 전망에도 수제맥주 업계는 수입맥주의 인기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 소비자의 니즈가 겹치기 때문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기존의 대형 주류업체가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성과 신선함이 수제맥주의 장점이다. 그러나 다양성 측면에서 수입맥주는 수제맥주와 겹친다”고 밝혔다. 수입맥주와 수제맥주는 일종의 경쟁관계에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수제맥주는 날로 커지는 수입맥주와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이 관계자는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들 가운데 일부가 신세계 스타필드 PK마켓에 맥주 한 병에 4500원으로 공급하고 있다”면서 “5000원에 4캔을 판매하는 수입맥주와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현재 판매량도 미미한 상태라고 들었다”고 밝혔다. 수제맥주는 주세법 개정으로 지난 4월 1일부터 소매점 판매가 가능한 상태다.

이 관계자는 향후 수입맥주의 저가 공세가 이어질 경우 수제맥주의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봤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주세법도 개정돼 업체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라면서도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소비자들이 등을 돌릴 경우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들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당장 대형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수제맥주의 판매량이 많지 않을 경우 공급이 중단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국산 대형 주류회사와 수제맥주 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수입맥주에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는 주세법 개정이다. 알코올 도수에 상관없이 제조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현재의 종가세에서 제조원가에 상관없이 알코올 도수에 따라 같은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종량세로 바꾸면 도수가 낮은 맥주의 세금은 내려가지만 도수가 높은 소주의 세금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세금 인상으로 서민의 술인 소주의 가격이 올라가면 국민적 저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연간 3조 원이 넘는 주세를 고려하면 세수 감소 역시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수제맥주 시장 규모 확대를 위한 혜택도 쉽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제맥주를 포함해 국산맥주에 혜택을 주면 FTA를 위반할 가능성이 있어 정부당국도 고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류업계에 오래 몸담아 온 한 관계자는 “대형주류업체들이 일본의 ‘아사히’, 중국의 ‘칭다오’처럼 특색 있는 맥주 개발에 소홀했던 결과”라며 “국내 맥주 시장의 다양성과 발전을 위해 국산맥주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선택받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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