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한애규…‘푸른 길’초대전, 6월15~7월19일, 아트사이드 갤러리

조상, 49×39×85.5(h)㎝ 테라코타, 2018.
“나는 사회관계의 역동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구조 못지않게 운동을, 변화 못지 않게 지속성을 관찰 했는데, 지속성은 실로 변화의 현저한 측면이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이 상호 접촉한 후 며칠이 지나면 그 상호작용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하나의 형태를 지각하기 시작했다. 이 형태는 본질적으로 극적(dramatic)이다.”<인류학의 거장들 中 빅터 터너(Victor Turner)편, 제리 무어 著, 김우영 옮김, 한길사 刊>

과거 어느 먼 곳에서 오는 것인가. 어떤 행렬이 물줄기를 따라 오고 있다. 어디선가 본 듯 낯설지 않은 인상의 너그러움과 강인함이 드러나는 눈매, 두툼한 입술, 풍만한 모유(母乳)의 건강미 흐르는 여인이다. 그 길목에서 만난 영락없는 한국인의 정체성(identity)이 친근감을 부른다.

“우리역사를 보면 활동반경이 드넓었다.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먼 지역과도 교류가 있었다. 그렇게 장대한 스케일의 기상을 가진 민족이었는데 분단이 되면서 좁아지고 그런 것 같다. 나의 작품이 잃어버렸던 대륙적 기질의 성정(性情)을 되찾는데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푸른 길’ 전시 전경.
시간의 흔적 문명의 교류

한애규 작가(HAHN AI KYU)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동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했고 1986년 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84년 롯데미술관에서 입체작품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다. 94년 가나화랑, 가람화랑 두 곳에서 동시에 전시를 가졌는데 당시 페미니즘과 연결되는 작품을 발표했다.

작가도 기억에 남는 전시로 꼽았다. 이 시리즈는 2000년 가나인사아트센터 개인전까지 이어진다. “여성의 성적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고고학적 유물에서 영감을 얻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재해석하려 했다.”

2010년 아트사이드갤러리 북경전시장 ‘폐허에서’전은 이후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열어 주목받았다. “무너진 기둥사이 걸음을 뗀다. 누군가 무수히 다녔을 이 골목, 붉은 꽃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이 뒤엉켜 지냈을 이 저잣거리, 내 삶의 터전도 폐허가 되어 있을 그 어느 날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역사란 이런 것을 말하나 보다.”

그리고 201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오랫동안 묵으며 바다에 비친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은 ‘푸른 그림자’연작을 발표하였다. ‘실존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서의 그림자’를 작품화하며 테라코타(Terra Cotta)를 통한 독창적 작품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다.

한애규(韓愛奎) 작가
이번 ‘푸른 길’초대전은 6월 15일 오픈해 7월 19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 지하1층~지상1층에서 흙 재료를 바닥부터 쌓아올리는 코일링 기법으로 작업한 총 40여점을 전시 중에 있다.

“먼 북방, 생소하기조차 한 산맥과 지역이름이 우랄알타이어족인 우리를 정의하는데 등장한다. 아주 멀리서 오래 걸려 이 땅에 왔던 이들의 피가 우리 속에 흐른다. 그들이 걸어서 돌아오는 중이다. 여인상,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눈동자 등에 표현된 푸른색은 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물의 흔적이다.”

한편 전시장에서의 인터뷰 말미에 30년 ‘조각가의 길’에 대한 소회를 물어 보았다. “이 길에 들어선 것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년이 없지 않은가. 이제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즈음 기운이 떨어진다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권동철 @hankooki.com



권동철 미술전문기자 dckewon5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