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빙성 탄핵 의도 신문에… “진술 변화가 거짓말 될 수는 없어” 반박도

신동빈 회장 유죄에 영향 끼친 안종범 전 수석

辛 변호인단으로부터 거센 증인신문 받아

오락가락한 진술에 대한 신빙성 탄핵 의도… 일부 유의미한 성과 있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박근혜(66∙구속기소)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신동빈(63∙구속기소) 롯데그룹 회장의 항소심 재판에서, 이 사건 핵심인물인 안종범(59∙구속기소)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신동빈 회장 측은 안종범 전 수석의 기존 진술 등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신문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유의미한 결과도 얻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큰 성과는 없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등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그의 유죄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부분은 바로 안종범 전 수석의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이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지난 2016년 3월 14일 14시경 청와대 안가에서 이뤄진 신동빈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단독면담 자리에서 신 회장 측의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2∙구속기소)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모해 최씨가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K스포츠재단이 추진 중이던 하남시 5대 거점 체육시설 건립 사업에 쓰일 70억원을 롯데그룹 측에 요구했다고 바라봤다.

이에 2016년 3월 14일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 사이의 단독면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의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신 회장이 받아들이는 대신, 월드타워 면세점 재취득에 힘써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한 주요 근거로 단독면담 사흘 전인 3월 11일 롯데호텔 무궁화 식당에서 있었던 신동빈 회장과 안종범 전 수석의 오찬 전후 상황에 대한 안 전 수석의 검찰 진술 내용 등을 판결에 반영했다.

안 전 수석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오찬 당시 신 회장으로부터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고, 오찬이 끝난 직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와서 이를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물론 신동빈 회장 측은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당시 안 전 수석과의 오찬 중 면세점 특허 재취득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신 회장 측은 그날의 오찬 자리는 당시 재계를 비롯해 사회적으로도 논란의 대상이 됐던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으로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를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신 회장 측의 주장은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안 전 수석의 말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며 이를 판결에 반영했다.

재판부는 “당시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안종범 경제수석을 면세점 특허 취득을 위한 집중 설득 대상자로 파악하고 있었다”라며 “면세점 특허 취득이 롯데그룹의 최대 현안이었던 점을 비춰보면 롯데그룹 회장인 신동빈 피고인이 경제수석을 만나서 면세점에 관한 애로사항을 전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심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안종범 전 수석으로부터 신동빈 회장과의 오찬 자리에서 면세점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는 보고를 받고, 안 전 수석에게 신 회장과의 단독면담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 이후 안 전 수석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연락해 3월 14일 단독면담 일정을 확정하게 된 정황이 설득력이 있다는 점 역시 판단의 주요 근거로 판시했다.

특히 단독면담 직후 작성된 안종범 전 수석의 2016년 3월 14일자 업무수첩 내 대통령 말씀 사항 중 ‘5대 거점’, ‘하남시 장기 임대’, ‘시설 75억’, ‘K sports’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던 점 그리고 안 전 수석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어떤 자료도 제시받지 않은 상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신동빈 회장과 단독면담을 할 때, 5대 거점 사업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점 역시 재판부가 안 전 수석의 말에 보다 신빙성을 두는 이유였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사진=연합)
1심 재판부는 “대통령은 롯데그룹과 면세점 특허 문제에 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 관해 안종범 수석으로부터도 여러 차례 보고를 받고, 지시를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라며 “그런 상태에서 대통령은 단독면담 시 신동빈 피고인에게 K스포츠 재단에 대한 추가지원을 요구했고, 신동빈 피고인의 경우에도 당시 여러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을 확신할 수 없었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롯데그룹이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금액은 70억원이나 되는 거액이었고, K스포츠 재단에 추가 출연을 하는 기업은 롯데그룹이 당시 유일했다”라며 “이런 점 등에 비춰보면 신동빈 피고인 역시 롯데그룹의 현안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상, 사실상의 영향력, 또 그와 같은 대통령의 영향력이 롯데그룹에 유리한 방향으로 행사될 것이라는 기대를 주된 고려 요소로 삼아서 K스포츠 재단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덧붙였다.

1심 재판부는 안종범 전 수석의 말을 판결에 반영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안종범 피고인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결국 무죄를 주장하는 신동빈 회장 측이 기존 결과를 뒤집기 위해서는 자신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핵심 인물인 안종범 전 수석의 말에 신빙성이 없었고, 그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이 사건 항소심에서 입증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었다.

오락가락한 安 진술∙증언 지적한 辛 변호인단

지난 2일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 심리로 열린 신동빈 회장에 대한 항소심 6차 공판에서 안종범 전 수석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은 신 회장 측이 요청했고, 신 회장 측 변호인단은 안 전 수석의 그동안의 진술과 증언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날선 질문을 쏟아내며 신문을 이어나갔다.

이날 재판에서 신동빈 회장 측은 안종범 전 수석의 그동안의 진술과 증언 내용을 되짚어보며 여러 가지 오류를 지적했다.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2016년 3월 11일 이뤄진 신 회장과 안 전 수석 간의 오찬에 대한 안 전 수석의 입장 변화에 대해 지적했다.

실제로 안종범 전 수석은 기존 검찰 조사과정에서는 신동빈 회장과의 당시 오찬 사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후 조사에서 그는 검찰 측으로부터 신동빈 회장의 일정표를 제시받고, 당일 오찬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러면서 당시 신 회장으로부터 면세점 관련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고, 면세점 특허 상실에 따른 대규모 실직 등의 문제가 거론됐다는 취지로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에는 불과 1년여 전에 재벌 총수와 오찬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일정표 제시 하나로 인해 당시의 오찬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오고 간 구체적 내용까지 떠올려 진술했다는 점은 분명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당연히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 부분 진술이 바뀌었고 보다 구체화된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신문을 해나갔다.

특히 안종범 전 수석은 기존 검찰 조사에서 신동빈 회장과의 오찬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는지 여부 역시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검찰 측으로부터 당시 박 전 대통령과의 통화내역을 제시받고 보고를 한 것이 맞다는 취지로 입장을 바꿨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연합)
또 안 전 수석은 지난해 10월 19일 열린 이 사건 1심 재판의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당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먼저 전화가 왔다는 점 그리고 신동빈 회장이 오찬에서 면세점 탈락으로 인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는 점을 보고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역시도 신동빈 회장 측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의 기억력과 이후의 ‘명확한 기억력’에 심한 차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사실상 안 전 수석의 진술 변화로 신동빈 회장에는 불리하지만 검찰 측 수사에 큰 도움이 된 점에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었다.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기재 내용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우선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오찬이 있었던 시기인 2016년 3월 10일에서 13일 사이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롯데 관련 기재에 관해, 안 전 수석은 이 사건 1심 재판에서 어떤 경위로 해당 내용이 기재가 된 것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후 재판 과정에서 안 전 수석은 신동빈 회장과 오찬을 한 뒤 적은 것은 분명히 아닌 것이라며 기억을 되살려 냈다.

그러면서 그는 해당 기재 내용이 소진세 당시 롯데그룹 정책본부 정책대외협력단장(현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받아 적었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에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이 확보한 당시 소진세 전 단장과 안종범 전 수석 사이의 통화내역 중 3월 10일과 3월 11일 각각 약 29초와 17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신 회장 측은 이런 짧은 통화 중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 기재될 정도로 롯데 현안에 대한 그 어떤 유의미한 대화가 오고갈 수 있었냐는 주장이었다.

결국 안종범 전 수석은 결국 해당 기재 내용이 소진세 전 단장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은 추측일 뿐이며, 신동빈 회장과의 오찬 중에 적은 기억은 전혀 없다고 증언했다.

이날 재판에서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2016년 3월 14일 신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단독면담 이후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기재된 내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안 전 수석은 기존까지 해당 기재가 단독면담이 끝난 후 박 전 대통령이 면담 장소로 자신을 불러서 신 회장과 나눈 이야기를 불러줘 수첩에 받아 적은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런데 안 전 수석의 이런 입장은 정확한 기억력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존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당시 업무수첩 내 기재에 대해 단독면담이 끝난 뒤 박 전 대통령이 전화통화로 자신에게 불러준 내용을 적은 것이라고 진술했다.

안 전 수석이 말을 바꾼 이유는 기억이 되살아나서가 아닌, 박 전 대통령과 다른 총수들과 단독면담이 끝난 뒤 통상적으로 전화로 관련 사항을 전달했고,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과의 단독면담 직후 자신이 박 전 대통령과 통화한 내역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동빈 회장 측은 이날 안종범 전 수석의 그동안의 진술과 증언에 대한 신빙성을 탄핵하는 것과 동시에, 당시 신 회장이 안 전 수석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면세점 관련 청탁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증언을 얻을 수 있었다.

앞서 신 회장 측은 단독면담이 있기 전부터 관세청 등에서 월드타워 면세점을 비롯한 신규 면세점의 추가 특허를 검토했다는 점 등을 들어, 청와대 측에 굳이 부정한 청탁을 해가면서까지 면세점의 특허 재취득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사실은 당시 시내 면세점의 추가 결정에 있어 안종범 전 수석 등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거나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실제로 안 전 수석은 이날 재판에서 “(시내 면세점) 추가 결정은 모든 절차를 관세청에서 관리했고, 관세청에서 하는 일을 저는 개입하지 않는다”라며 “경제수석 부임 후 두 번 정도 면세점 관련 사항이 있었는데, 저는 철저히 배제됐으며 관세청이 독자적으로 했고, 면세점 취득과 관련해서 누구에게 부탁을 받거나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라고 증언했다.

특히 안 전 수석은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월드타워 면세점의 재취득을 챙겨보라는 지시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辛 변호인단, 安 증인신문에 대한 성과는 얼마나

이날 재판에서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안 전 수석의 오락가락한 진술과 증언에 대해 지적하며 그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데 일부 성과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반대로 그 과정에서 의미가 없는 신문이 이어지거나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받아들인 안 전 수석의 진술에 대한 위법성을 밝혀내지는 못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사실 안종범 전 수석의 진술 등에 신빙성이 없다는 점을 밝혀내는 것은 역시 신 회장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날 신 회장 측 변호인단은 주신문 대부분을 검찰의 신 회장에 대한 공소사실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쪽에 할애했다.

실제로 이들 변호인단은 SK와 KT 등 다른 대기업의 재단 출연과 관련된 안 전 수석의 진술 및 증언 그리고 지난 2016년 2월 26일 안종범 전 수석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등의 회의록 내용 등에 대해 불필요할 정도로 장시간 신문을 이어나갔다.

안 전 수석은 회의록 내용에서 부영 측의 하남시 5대 거점 지원사업 건 부분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고, 자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기 위해 회의장에서 잠시 나가 있었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고 일관되게 진술 및 증언해 왔다.

무엇보다 당시 회의록을 작성했다는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은 회의 자리에 배석하지도 않았고, 단지 정현식 전 사무총장과 차를 타면서 그로부터 들은 내용을 정리해 기재한 것이라는 사실도 드러난 상태다.

아쉽게도 이날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회의록과 관련해 새롭게 뒤집은 내용은 거의 없었다.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미 수차례 부정된 안 전 수석의 최순실씨에 대한 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신문했으나 역시 기존과 다른 부분을 밝혀내지 못했고, 안 전 수석 측이 줄곧 “허위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한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의 주장을 꺼냈지만 신문 과정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사실 앞서 언급한 2016년 3월 14일 단독면담 후 업무수첩 기재 내용과 관련돼서 신동빈 회장 측이 집중했던 안 전 수석의 진술 변화에 대해서도 크게 의미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이 사건 1심 재판에서도 거론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전화를 통해 알려준 것인지 아니면 안 전 수석을 면담 장소로 불러내 전달한 것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해당 내용을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기재한 사실 자체에 초점을 맞춰 판결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진술이 바뀌었다는 점만으로는 신 회장 측의 의도대로 안 전 수석이 거짓말을 했다고 재판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신동빈 회장 측 변호인단은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을 통해 그가 기존 진술과 증언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점 그리고 그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에 대해 밝혀내는데 제대로 된 성과를 충분히 거두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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