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실질적 발전에 시동 걸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가 10일 오후 뉴델리 영빈관에서 열린 한·인도 기업인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 인도 측 기업인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연합)

기자는 비크람 도래스와미 주한 인도 대사와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 한 번은 인터뷰를 위해, 또 한 번은 한국과 인도 양국 기업의 비즈니스 협력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한파를 넘어 친한파 인사다.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매우 크다. 2015년 4월 주한 인도 대사로 부임한 후 대사관 슬로건을 ‘함께하면 성공합니다(Hamkke Hamyeon, Seonggong Habnida)’라는 우리말로 지었을 정도다. 그는 한국과 인도의 오랜 전통적 인연과 함께 점차 긴밀해지는 교류ㆍ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한국어로 “인도는 한국과 찰떡궁합입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하기도 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014년 5월 취임 이후 동아시아 국가를 중요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른바 ‘액트 이스트 폴리시(Act East Policy)’다. 우리에게는 신(新)동방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핵심적인 협력 대상 국가로 꼽힌다.

모디 총리는 과거 구자라트주 주지사 재임 시절부터 “인도는 한국을 경제성장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도래스와미 대사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인도와 한국의 파트너십이 양국 상호 간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른바 신(新)남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1월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 수준을 높여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남방정책을 공식 천명했다. 이 정책은 중국에 치우친 교역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을 다변화함으로써 한반도 경제 지도를 넓히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지난 7월 8일부터 11일까지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모디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국-인도 양국 간 협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사람, 상생번영, 평화, 미래를 위한 비전’ 채택을 포함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남방정책과 모디 총리의 신동방정책이 접점을 이뤘다는 의미가 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공동 성명 발표에서 “양국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실질화하고,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킬 적기라는 데 모디 총리와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실질화한다’는 대목을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인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한 데 이어, 박근혜 정부 때에는 이를 격상시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최상의 외교적 수식어가 다소 어색할 만큼 양국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깊어지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도래스와미 주한 인도 대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국과 인도는 서로를 보는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항상 관계가 좋았다. 다만 양국의 파트너십에는 ‘실질적인 내용’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양국 정부는 두 나라의 파트너십을 심화하기 위해 실질적인 내용을 보태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사람, 상생번영, 평화, 미래를 위한 비전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문재인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실질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공식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공동 성명에서 양국이 미래를 향한 중요한 동반자임을 확인하면서 현재 200억 달러 수준인 양국 간 교역 규모를 2030년까지 5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사람, 상생번영, 평화, 미래를 위한 비전’의 주요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국 정상은 사람(People)을 중시하는 공통된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양국의 깊은 역사적 유대를 상징하는 ‘허황후 기념공원’ 사업을 추진하는 등 양국 국민이 서로 마음에서부터 가까워지도록 하는 다양한 교류를 활성화해 나가기로 했다.

둘째, 양국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ㆍ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개선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모색하는 한편 양국 간의 방대한 협력 잠재력과 상호 보완적 경제구조를 최대한 활용해 무역, 인프라 등 분야에서 상생번영을 이뤄나가기로 했다. 한국과 인도 양국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은 지난 2009년 8월 체결됐으며, 2010년 1월부터 정식으로 발효됐다. 이 협정은 상품 교역, 서비스 교역, 투자, 경제협력 등 경제 관계 전반을 포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사실상 자유무역협정(FTA)과 동일한 성격을 띤다.

셋째, 양국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힘을 합치는 동시에 국방ㆍ방산 분야 협력, 테러 대응, 외교•안보 분야 정례 협의체 활성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넷째, 인도의 풍부한 고급 인력과 한국의 기술을 결합해 한국-인도 미래비전전략그룹 및 연구혁신협력센터를 설치하는 한편 과학기술 공동 연구 등을 통해 양국이 함께 미래를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사실 한국과 인도의 인연은 고대(古代)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이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아유타는 현재의 인도 아요디아 지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ㆍ생년 미상~188년)을 왕비로 삼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허황후로도 불리는 허황옥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시조모가 된다. 한국과 인도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인 셈이다.

또 인도어 중에는 발음과 뜻이 한국어와 같거나 유사한 단어가 제법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남부 지방에서는 한국의 청국장과 맛이 비슷한 ‘삼바’라는 콩 발효 음식을 즐겨 먹는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과 인도는 전통적으로 상당한 연결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과 인도 양국은 현대에 들어와서는 1973년 국교를 수립하면서 본격적인 외교 관계를 시작했다. 인도가 경제개방에 나선 1991년 이후부터는 양국 간 교역의 물꼬도 터졌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양국 간 교역 규모는 수억 달러 정도에 그쳤지만 2010년대 이후 200억 달러 규모로 크게 늘어났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1990년대 후반 무렵 인도 시장에 처음 진출했는데, 인도의 거대한 잠재력을 내다보고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한 덕분에 현재 인도 시장에서 일등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대로 인도 굴지의 대기업집단인 타타그룹, 마힌드라그룹 등도 2000년대 이후 각각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과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바 있다.

인도는 2016년 기준 한국의 수출 대상국 중 8위이자 교역 대상국 중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총 교역액은 157억 달러로, 한국 대외 교역액의 1.75%를 차지했다. 아직 한국의 대외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편이지만, 뒤집어보면 향후 교역 규모 증대 가능성이 그만큼 큰 셈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 인도 수출 품목은 무선통신기기, 자동차 부품, 철강 제품 등이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전기전자, 자동차 분야 대기업이 인도에 진출해 있는 터라 현지 생산을 위한 부품과 중간재의 수출 비중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인도에서는 2015년 4G(4세대) 이동통신 시대가 열리면서 스마트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선통신기기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포스트 차이나’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인도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인도 투자는 1980년에서 2017년 상반기까지 총 2,832건, 투자금액 기준 44억 8,03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전체 해외 투자 누적액 3,748억 달러의 약 1.2%에 불과한 수준이다. 물론 앞으로는 양국 관계 발전에 따라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의 인도 시장 투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됐는데, 얼마 뒤 외환위기 여파로 투자 증가세가 꺾였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와 친디아(중국, 인도)가 신흥시장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다시 인도 시장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 취임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을 강력하게 펼치면서 한국 기업들의 인도 진출 움직임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고, 2016년 말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충격파가 덮치면서 인도는 ‘포스트 차이나’의 유력한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모디 총리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모디노믹스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한 사회 인프라 확충과 제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을 골자로 한다. 정부의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개입과 간섭을 줄여 민간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신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 모디노믹스는 외국 자본의 큰 호응을 얻으며 인도 경제의 환골탈태를 견인해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의 대(對) 인도 투자는 제조업 부문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1980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제조업 투자 누적액은 49억 4128만 달러로, 전체 투자금액의 약 84%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코트라(KOTRA)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인도 투자는 제조업 부문이 8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디 총리의 제조업 육성과 코드가 맞는다”며 “인도의 기업 환경과 사회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한국의 대기업, 중소기업들의 인도 진출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윤현 기자

●인도 경제 현황과 전망

향후 10년 ‘코끼리’가 세계 경제 움직인다

세계적으로 유력한 경제 관련 기관들은 인도가 향후 10년 동안 7%대의 고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2017년 ‘경제전망보고서’에서 2020년 이후 인도의 경제성장률을 8%대로 예상하기도 했다.

인도 경제는 외국인 투자자금을 재원으로 삼아 국내 산업 및 인프라에 투자하는 한편 내수를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도 정부의 개발 정책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정보기술(IT) 산업과 제조업이 집중된 서부와 남부 지역이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최근 수 년간의 고도성장은 지역 간의 개발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인도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은 IT 산업을 앞세운 3차 산업이다. 제조업 등 2차 산업도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경제성장 기여도가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체 인구의 약 60%가 종사하는 1차 산업의 GDP 기여도는 20%에 채 못 미치는 실정이다.

김윤현 기자

●인도에 투자하는 나라들

‘모리셔스’가 인도 투자 1등 국가라고?

인도 시장에 투자하는 국가 중에서 상위권을 형성하는 나라로는 모리셔스, 싱가포르, 영국, 일본, 네덜란드, 미국 등이 있다. 모리셔스는 누계 금액 기준으로 인도 전체 외국인 투자 유치 총액의 35%를 차지했다.

아프리카 동부 해안의 조그마한 섬나라인 모리셔스가 인도 투자 1등 국가라는 점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는 통계의 함정이 있다. 모리셔스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조세피난처로 이용되는 나라다. 따라서 인도에 투자된 모리셔스 자본의 실제 ‘전주(錢主)’는 서구 기업들로 추측된다. 조세피난처로 분류되는 키프로스 역시 인도 투자 8위 국가에 올라 있다.

인도중앙은행(RBI)이 2015년 6월까지의 통계를 반영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 4월 이후 누계 기준 인도 투자 국가 중 14위를 기록했다.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0.62%를 차지했다.

김윤현 기자

한국의 인도 시장 업종별 투자 현황

업종 2017 (상반기) 누계액
신고 건수 신고 금액 신고 건수 신고 금액
제조업 55 116,084 1,643 4,941,284
도·소매업 15 9,805 316 346,495
건설업 10 1,097 150 119,691
기타 30 98,461 200 726,243
총계 110 225,447 2,309 6,133,713

*총계: 1980년~2017년 6월 기준. 금액 단위: 천 달러. 자료: 한국수출입은행

인도에 진출한 주요 한국 기업

회사명 진출 연도 사업 분야
LG전자 1997 디지털 가전 등
현대자동차 1997 자동차 제조
삼성전자 1997 디지털 가전 및 반도체 등
포스코 2005 철강제품 제조
신한은행 2006 금융서비스
두산파워시스템즈 인디아 2011 설비제조, 설비, 플랜트 등
효성 2007 섬유, 산업자재, 중공업
LG화학 1996 기초 화학물질
현대로템 2001 철도차량, 시스템 등
쌍용건설 1997 건축, 토목, 플랜트 등
*자료: 코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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