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로고<사진=연합뉴스>

“BMW 520d 차량 EGR 모듈은 ‘안전 설계 원칙’ 위배했다” BMW 차량 연쇄화재 사고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까. 정부의 조치와는 별개로 법정 다툼이 불가피해 보인다. BMW 차량 화재 피해자들이 BMW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BMW 피해자 모임'의 법률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하종선 변호사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는 현대자동차 법무실장,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을 역임한 데 이어 2012년부터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며 자동차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을 맡아 이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 독특한 경력의 인물이다.

하종선 변호사는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 차량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조작과 관련해 한국의 소비자를 대리해 소송에 나선 바 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디젤 차량의 EGR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직접 연구했다.

그는 지난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BMW 차량 화재 관련 공청회 진술문을 토대로 BMW 화재 원인을 설명했다. BMW EGR 모듈(EGR 밸브, EGR 튜브, EGR 쿨러, EGR 파이프로 구성됨)의 설계 결함을 꼬집으며 크게 3가지로 설명했다.

BMW 차량 화재는 현재까지 국토교통부 집계 기준으로 총 41건이다. 이 가운데 520d 모델의 화재가 50%에 가까운 19건이나 된다. 하종선 변호사는 운행 중 다수의 화재를 일으킨 BMW 520d 모델이 EGR 모듈을 다른 회사 차종에 비해 훨씬 많이 작동시킨다는 점을 화재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2016년 환경부가 BMW 520d를 비롯해 국내외 20개 차종에 대해 실제 도로 주행 시 '유로 6(Euro 6)' 질소산화물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충족시키는지를 비교 시험한 결과, BMW 520d만이 허용기준(질소산화물 배출량 0.08g 이하/km)을 유일하게 충족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로 6은 유럽연합이 도입한 경유차 배기가스 규제 단계의 명칭으로, 1992년 유로 1이 도입된 이래 유로 6까지 이어졌다. 유로 6으로 인해 질소산화물 배출 허용량은 2.0g/kWh에서 0.4g/kWh 이하로 낮아지고, 미세먼지는 0.02g/kWh 이하에서 0.01g/kWh 이하로 강화됐다.

이 기준에 미달하면 2015년부터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량과 해외에서 들어오는 수입차는 판매할 수 없다. 당시 BMW 520d 모델은 1km당 0.07g의 배출가스량을 보였고 BMW를 제외한 랜드로버 이보크, 폭스바겐 투아렉 등 19개 차종은 모두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BMW 520d 모델이 다른 회사 차종에 비해 EGR를 더 많이 작동시킨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다른 차종보다 더 강하게 EGR 설계했어야

따라서 BMW는 EGR 밸브의 구조와 내구성, EGR 쿨러의 냉각 능력 등을 다른 회사의 EGR보다 더욱 강하게 설계했어야 한다는 게 하 변호사의 설명이다. 즉, BMW 520d의 경우 다른 회사의 자동차보다 EGR 밸브를 여닫는 횟수가 많기 때문에 EGR 밸브가 고장 나고, 밸브가 열린 상태로 더러운 카본 슬러지(탄소 찌꺼기)가 고착돼 830℃에 이르는 배기가스는 계속 EGR 쿨러로 들어가 냉각능력을 상실시킨다. 이로 인해 EGR 쿨러는 제 역할을 못하고 배기가스는 그대로 흡기 다기관(Intake Manifold)으로 흘러가 흡기 다기관에 구멍을 내고 화재가 난다는 것이다.

하 변호사는 EGR 밸브를 EGR 쿨러 앞에 위치시킨 BMW EGR 모듈 구조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BMW 520d의 경우 EGR 밸브-EGR 쿨러-흡기 다기관의 과정을 거쳐 배기가스를 처리하지만 타 차종에는 EGR 쿨러-EGR 밸브-흡기 다기관 순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EGR 밸브가 EGR 쿨러 뒤에 설계되면 배기가스 차단에 있어 더욱 안전하다는 게 하종선 변호사의 설명이다.

또 BMW 측이 EGR 밸브를 EGR 쿨러 앞에 위치시키는 설계를 하고도 EGR 쿨러가 고장 났을 경우를 대비한 '페일 세이프(Fail Safe)' 설계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도 BMW 설계 결함으로 언급했다. 페일 세이프란 기계가 고장 났을 경우에 사고나 재해로 연결되는 일이 없도록 안전을 확보하는 장치를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BMW 520d 등 리콜 대상 차량의 경우 EGR 밸브가 이물질로 인해 열린 상태로 고착되면 830℃의 배기가스가 계속 EGR 쿨러로 가서 EGR 쿨러의 고장을 유발한다. 이렇게 되면 830℃의 배기가스가 그대로 흡기 다기관(Intake Manifold)으로 들어가 구멍을 내고 화재를 유발한다. 따라서 BMW는 페일 세이프 설계 원칙에 따라 830℃의 전혀 냉각되지 않은 배기가스가 흡기 다기관에 그대로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안전장치를 달고, 나아가 흡기 다기관을 알루미늄이나 내열 온도가 훨씬 높은 재질로 만들었어야 한다는 게 하 변호사의 설명이다.

즉 BMW가 830℃의 전혀 냉각되지 않은 배기가스가 흡기 다기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차단 장치를 누락했으며, 내열 온도가 100℃ 밖에 되지 않은 플라스틱 재질의 흡기 다기관을 장착한 것은 페일 세이프 설계 원칙을 위반했다는 설명이다.

민관합동조사단 ‘부적격 전문가’ 배제 주장

하종선 변호사는 국립환경과학원 산하 교통환경연구소 소속 박준홍 연구관이 BMW 차량 화재 원인 조사를 맡은 민관합동조사단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BMW 차량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민관합동조사단에는 박준홍 연구관을 비롯해 박병일 자동차 명장, 박심수 고려대 교수 등 총 20명이 포함됐다. 교통환경연구소에 따르면 박준홍 연구관은 현재 제작차 환경정책 지원 및 국제 표준화 연구를 도맡아 하고 있다.

하종선 변호사는 그에 대해 "배출가스 저감장치와 관련해 기술적 분석을 도맡은 핵심적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BMW 차량 화재와 관련해 일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화재 원인을 밝히는 민관합동조사단에 포함된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 하 변호사의 주장이다.

환경부는 지난 4월 19일 'BMW 차량 약 5만 5천대 배출가스 부품 결함시정'이라는 제목으로 리콜(결함시정) 계획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계획서에 따르면 BMW 화재 원인이 되는 이유가 'EGR 쿨러 내구성 저하', 'EGR 밸브 작동을 위한 기어의 지지 볼트 마모', '전자제어장치(ECU) 오류로 배출가스자기진단장치(OBD) 진단 불가' 등 EGR 결함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시 담당 연구관이 박준홍 연구관이었다.

BMW코리아는 당시 모듈 전체를 교체하지 않고 일부 부품 또는 소프트웨어만 업데이트하는 제한적 리콜을 진행했고, 4월 이후 리콜을 받은 차량 2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BMW 리콜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하 변호사는 박준홍 연구관이 EGR 밸브가 열린 상태에서 뜨거운 배기가스가 계속 나오고 EGR 쿨러가 망가지고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음에도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박준홍 연구관은 화재 발생 위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고, 올해 4월에 5만 대에 이르는 BMW 리콜 과정을 지켜보면서 화재 발생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중과실에 가깝다"면서 "EGR에서 화재가 난다는 것은 자동차 업계 종사자로서는 상식이며, 사실 BMW는 10만 대 이상의 리콜을 4월 당시 시행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박준홍 연구관은 "올해 발생한 BMW 차량의 연이은 화재 사건 이전에는 EGR 모듈의 결함으로 인한 화재 발생 위험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18년 4월 BMW의 리콜을 승인할 당시 차량 화재로 이어질 문제로 보지 않았다. 화재와 관련된 안전 여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자동차 안전연구원의 법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한경석 기자

BMW 차량 소프트웨어 설계 검증 가능할까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난 8월 BMW 차량 화재와 관련해 "BMW가 2009년부터 같은 시스템을 적용해 차를 만들어왔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교수는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차량 시스템 설계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다”며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쿨러에 대한 설계 프로그래밍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화재가 난 BMW의 경우 여유 설계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과도한 일을 시키면 그만큼 화재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화재 원인을 두고 소프트웨어의 검증을 중시했다. 또한 국내에 판매하고 있는 BMW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설계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BMW 피해자 단체 소송에 나선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했다. 그는 "한국에서 BMW 차량 화재가 많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데 소프트웨어 검증이라는 것은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며 "쉽게 얘기해서 능력이 안 된다.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검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한 "보쉬(독일 자동차 부품업체)만 할 수 있다. 그 회사가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가 BMW 소프트웨어에 담겨 있기에 BMW와 보쉬가 자백하지 않는 한 소프트웨어 문제를 파헤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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