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병역회피 수단’ 여론 비등···시대 변화 맞춰 개정 움직임

대한민국 일반 남성이라면 약 2년 간의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연합)

방탄소년단(BTS) ‘형평성’ 논란 확산… ‘세계 1등 청년 병역특례법’ 발의 추진도

병역특례법은 1973년에 처음 도입됐다. 정부가 국제대회에서의 동기 부여를 위해 훌륭한 성적을 거둔 당사자들의 국위선양을 인정하며 병역 특혜를 제공한 것이다. 당시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 아니었다. 국제대회에서 획득하는 메달은 매우 진귀했다. 1981년 당시 전두환 정권은 88서울올림픽을 겨냥해 병역특례 대상 범위를 대폭 확대하기도 했다. 현재는 올림픽 대회 3위 이내 입상, 아시아경기 대회 1위를 기록해야만 병역 특례를 얻는다. 그 외에 국제 콩쿠르 대회 2위 이내 입상, 국악 등 국제대회가 없는 국내대회 1위, 중요 무형문화재 전수자 등이 병역 특례 대상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병역 특례 혜택을 얻은 선수는 총 42명이다. 이들은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만 마치면 자신의 특기 분야에서 34개월 동안 활동하면 된다. 약 2년 동안 군대에 가는 일반 사병들과 비교하면 커다란 혜택이다. 현재까지 병역특례자는 총 491명으로 알려졌다. 이번 아시안게임 병역특례자를 포함한 수치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 특례 제도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불붙었다. 아시안게임 야구경기에 출전하는 나라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등 극히 소수다. 이 중에서도 정상급 기량을 갖춘 프로선수를 보내는 곳은 한국 대표팀뿐이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각국의 아마추어 선수나 사회인 야구선수들을 상대로 승부를 펼친다. 대학생과 초등학생 간의 수준 차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금메달을 따면 본전, 아니면 망신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이번 대표팀은 대만과의 예선전에서 1-2로 패하는 등 고전하다가 결국 결선에서 뒷심을 발휘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선발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다. 몇몇 선수들이 과연 대표팀에 발탁될 만한 기량을 지녔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군 미필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려 아시안게임을 병역 회피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경기에 단 1분이라도 출전하고 금메달을 따면 병역 특례 혜택을 얻는다. 주전급으로 활약하지 않은 선수들이 팀의 금메달로 병역 면제를 받는 것이 타당하냐는 말도 나온다.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금메달 따며 논란 점화

운동선수의 병역특례는 병역법 제33조에 의거한다. 예술 및 체육 분야의 특기자는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다. 병무청장은 대통령령인 병역법 시행령 제68조 11에 따라 특례자를 예술 및 체육요원으로 편입한다. 이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추천을 받는다.

병역특례자는 군 복무 대신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뒤 특기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여기서 봉사활동이란 선수나 학생, 지도자 등으로서 관련 활동을 한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분야에서 쭉 활동하면 된다는 의미다. 형식상 완전한 군 면제는 아니지만 특례자들이 본인의 분야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선수 생명이 짧은 운동선수에겐 엄청난 혜택이다.

한국의 스포츠 역사에서 병역 특례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최초의 병역특례자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다. 이후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선동열을 비롯한 야구선수들이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한국 야구와 축구의 전설로 불리는 박찬호와 박지성도 병역 특례를 받았다. 박찬호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덕분에 군 혜택을 받았다. 2006년에는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4강 진출로 류현진, 김현수 등이 병역을 면제받았다. 한국인 최고의 메이저리그 타자인 추신수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2년에는 런던올림픽 남자축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기성용, 구자철, 박주영 등이 병역 특례 대상이 됐다.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8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지 못한 손흥민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병역특례규제법 제3조는 1973년에 마련된 최초의 병역특례 제도다. 이 조항의 병역 특례 범위는 광범위하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안게임에서 3위에 입상하면 됐다. 또한 개인 종목 아시아기록을 수립할 경우, 한국체육대학교 졸업성적이 상위 10% 이내일 경우에도 특례가 주어졌다. 아시안게임에서도 3위 이내에 입상하면 되고 세계선수권, 유니버시아드대회도 포함됐다. 그리고 대회의 순위와는 관계없이 개인종목 아시아기록 수립자, 한체대 성적 우수자도 병역 특례 대상이었다. 당시 메달과 아시아기록은 대단히 진귀한 것이었기에 국위선양과 동기부여 차원에서 실시한 ‘관대한’ 병역특례법으로 기억된다.

축구대표팀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 특례를 얻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1973년 병역특례법 마련 후 몇 차례 개정

시간이 흘러 병역 특례자가 늘어나자 병역 관련법이 한 차례 개정된다. 병역법 제44조, 시행령 제70조에서는 ‘올림픽 3위 이상,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안게임 1위에 입상할 경우, 개인종목 아시아기록 수립자, 한체대 졸업성적 상위 10% 우수자’로 변경됐다. 올림픽 외 국제대회에서는 1위를 기록해야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스포츠 강국으로의 전환기로 꼽히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아시안게임 종합 준우승, 올림픽대회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 스포츠 저변이 확대됐고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이 많이 배출됐다. 특례 대상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1990년에 병역특례규제법 부칙 6조로 한 차례 더 개정되기에 이른다. 현재와 같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에 입상할 경우 병역 특례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예외도 있었다. 특출한 성적을 낸 2002 한일월드컵,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다. 당시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은 아시아 역대 최고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대표팀은 여론에 힘입어 병역 특례를 받았다. 또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 대표팀은 예선에서 미국과 일본을 꺾으며 4강에 진출했다. 야구 대표팀에도 병역 특례가 주어졌다. 이 두 가지 경우는 2002/2006 병역법 제26조, 시행령 제49조에 근거를 뒀다.

병역 특례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들쭉날쭉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 조항은 2007년에 삭제됐다. 대체복무제도 폐지 및 축소 정책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지만 예외 없는 병역의무 이행과 병역 이행의 형평성 제고를 위한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병역 특례 조항이 여전히 존재하면서 형평성 논란은 계속됐다.

지난 3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방탄소년단처럼 대중음악 세계 1위는 왜 병역면제를 못 받느냐”는 게시글을 올렸다. 병역특례법에서 ‘형평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국회 차원에서도 병역특례법 개정안이 예고돼 있다. 하태경 의원은 각 분야 세계 1위 청년들의 병역의무를 면제하는 ‘세계 1등 청년 병역특례법’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이 병역 특례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영화나 게임, 비보잉 대회에서 1위에 입상하면 병역특례 대상이 된다.

국회ㆍ정부도 잇달아 개정 방안 마련 나서

하태경 의원은 ‘군 누적 점수제’도 주장한다. 하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에 따라 누적되는 점수로 군 면제를 받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아시안게임 1등은 50점,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1등은 60점을 받으면 총 110점이다. 총점 100점을 넘기면 군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아시안게임 야구는 불공정게임이라는 소리도 많다”며 “과거 아시아에서 우리가 1등 하기도 어려웠던 1970~80년대에 생긴 제도가 지금도 적용되는 것은 때에 맞지 않다”며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지적했다.

하 의원은 혜택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되, 포함 범위를 확대하자는 주장도 한다. 한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는 청년들에게 병역 특례 기준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대중음악에서도 세계 1등을 하면 점수가 누적되고 결국 병역 특례도 받을 수 있다. 하 의원은 이를 두고 ‘인재 보호’를 위한 개정안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1년에 40~50명 정도 되는 병역 특례자가 한 분야에 치중되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나타나게 하자는 것이다. 하 의원은 “병역 특례자 수는 1년에 50명 수준으로 유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부정적 반응이다. 마일리지 적립을 위해 대회에 반복적으로 출전하는 등 악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안 의원은 병역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선수들이 은퇴 후 재능기부를 하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병역특례 제도는 1973년 도입된 개발도상국 시대의 제도”라고 말했다. 현역으로 입대하는 장병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 위원장은 “2022년까지 병역 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전환복무, 의무경찰, 의무소방관 제도 폐지 등 흐름에 맞춰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의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도 병역특례방지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김 의원의 구상은 병역 면제가 아니라 시점 조절이 핵심이다. 병역특례 요원도 군 복무를 하되, 복무 시점은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최대 50세 내에서 선택해 군 복무를 연기할 수 있다. 군 복무 내용도 조금 다르다. 올림픽 메달 수상 등으로 체육요원으로 편입된 사람은 해당 분야에서 지도자 자격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분야의 소외지역이나 열악한 곳에서 지도자로 재능을 기부하는 형식이다. 김 의원은 “예술, 체육 요원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더라도 그 혜택만큼 실질적인 복무를 하도록 해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 병역법 개정 움직임과 더불어 각 행정부처도 제도 개선을 위해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 체육인들에 대한 병역특례제도 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전담팀(TF)을 구성했다. 이날 문체부 실국장 회의에서 이와 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담팀은 예술계, 체육계의 의견을 모으고 병무청과 국회 등 관련 기관과도 의논할 예정이다. 팀 단장은 이우성 문화예술정책실장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병역 특례 개정안에 대해 “개선 방안을 낸다 해도 소급 적용할 수는 없다”며 “여러 측면을 고려해 국민의 지혜를 모아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내기 바란다”고 밝혔다. 관계부처와 국회, 국무총리까지 병역특례 개정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병역 특례법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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