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부국(富國)을 염원하는 노래…애민ㆍ부국 정신 담겨
‘어제훈민정음’ 편을 ‘예의본(例義本)’으로 보는 건 잘못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에 대해 잘 모르고, 왜곡된 인식도 많아
현재 중국 정부는 2000년에 1차 완료된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의 간략본(줄여서 ‘간본’)을 보다 상세히 설명하고 정정한 번잡본(줄여서 ‘번본’)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처럼 세종께서는 1443(癸亥)년 단독으로 세계사적 쾌거인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곤, 그 활용 예와 의미들을 간략히 기술한 간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는 신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것을 브리핑한 바, 당시 상황에 대한 정인지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는, 신하들에게 그 용례와 의미들을 간략히 들어 보이며,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그리고는 간본에 보다 상세히 해석을 가한 번본을 작성하여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도록 우리들에게 명하였다.”
이러한 명에 따라 집현전 8학사(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들은 세종대왕이 준 간본과 지침을 골자로 하여 훈민정음 번본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후 3년간의 수고 끝에 1446년 음력 9월 상순, 마침내 상세한 해석본인 번본이 완성되니, 오늘날 우리가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집현전 8학사들에게 건네졌던 1443년 당시 훈민정음 간본은 당연히 인쇄본이 아닌 세종대왕 친필본이었을 것이다. 1446년 음력 9월에 번본 작업을 완료하면서 8학사들이 애초의 간본을 세종대왕께 돌려주었는지 아니면 집현전에서 보관하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훈민정음 번본(해례본)에 녹아 들어가 있음은 물론이다.
1940년 기적적으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8학사들이 세종대왕의 1443년 간본에 자신들의 해석을 덧붙인 부분 외에 임금의 글을 단 한 글자도 손대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지은 글을 뜻하는 ‘御製(어제)’가 명기된 맨 앞 넉 장 분량의 ‘御製訓民正音(어제훈민정음)’ 편이 바로 그것이다.
1443년 세종께서는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말소리를 정밀하게 연구한 끝에 총 23개의 초성 자음을 포착하였다. 당시 중국 명나라의 31개 초성 자음보다는 8개가 적은 것으로, 세종은 글자 제작 후 7음(①아음, ②설음, ③순음, ④치음, ⑤후음, ⑥반설음, ⑦반치음)의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배열하였다.
ㄱ ㄲ ㅋ ㆁ, ㄷ ㄸ ㅌ ㄴ, ㅂ ㅃ ㅍ ㅁ, ㅈ ㅉ ㅊ ㅅ ㅆ, ㆆ ㅎ ㆅ ㅇ, ㄹ, ㅿ
2018년 지금까지도 중국은 위 글자들에 해당하는 표음문자를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ㄱ ㄴ ㄷ에 해당하는 음가는 물론 그 음가들에 대한 명칭은 있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중국이 고래로 사용해온 명칭들(예를 들어 ㄱ 음의 중국 명칭은 ‘見’, ㄹ은 ‘來’)을 버리고, 자주적으로 자신이 창제한 위 문자들에 대한 명칭을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ㄱ君 ㄲ(규룡 규) ㅋ快 ㆁ業, ㄷ斗 ㄸ覃 ㅌ呑 ㄴ那, ㅂ(활뒤틀릴 별) ㅃ步 ㅍ漂 ㅁ彌, ㅈ卽 ㅉ慈 ㅊ侵 ㅅ戌 ㅆ邪, ㆆ‘手+邑’ ㅎ虛 ㆅ洪 ㅇ欲, ㄹ閭, ㅿ穰
?세종어제명칭시가 (해석: 박대종)
君叫快業(ㄱㄲㅋㆁ: 군뀨쾌업)은 군왕과 용왕이 기뻐하는 과업은
斗覃呑那(ㄷㄸㅌㄴ: 두땀탄나)니라. 두성의 밝은 빛이 미치고 에워싸 천하가 평안한 것이니라.
瞥步漂彌(ㅂㅃㅍㅁ: 별뽀표미)한 활이 뒤틀리면 화살의 진행은 방향을 잃고 활시위는 느슨해지는 =근본이 틀어지면 나랏배는 표류하고 기강이 해이해지는
卽慈侵戌邪(ㅈㅉㅊㅅㅆ: 즉짜침술싸)하야 즉, 그로 인해 흉년이 들고 만사가 어그러질 것을 가엾이 여겨
‘手+邑’虛洪欲(ㆆㅎㆅㅇ: 읍허홍욕) 허공의 큰물(은하수)을 두수로 떠서
閭穰(ㄹㅿ: 려양)이어라 마을마다(방방곡곡) 풍년 들게 하고 싶어라
유념할 사항은, 용비어천가와 비슷한 세종임금의 어제명칭시가에서 ‘벌레충’을 쓴 叫(뀨→규)는 ‘새끼용’이 아니라 ‘용’에서 나아가 君(임금 군)과 결부되어 비를 내려주는 ‘용왕’의 뜻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농자천하지대본야의 농업국가에서 적절한 비는 풍요의 필수조건이므로 구름을 몰고 와 비를 뿌려주는 용왕을 표현키 위해선 ‘龍(용 룡)’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체 문장의 의미와 음, 음의 순서, 4성과 중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라 ㄱ 다음의 ㄲ에 해당하는 용을 찾다보니 ‘규룡 규’자가 융통성 있게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명칭시가에서 覃(담)은 미치다(及), 呑(탄)은 ‘에워싸다’, 那(나)는 평안하다(安), 彌(미)는 활시위를 늦추다(弛弓也)에서 ‘활시위가 늦추어지다’를, 그리고 “慈侵戌邪”에서 慈(짜→자)와 戌(술)은 어제서문의 ‘憫(불쌍히 여길 민)’자와 똑같이 모두 ‘가엾이 여기다’를 뜻한다. 侵(침)은 뒤쪽 穰(풍년들 양)자의 반대어로 쓰여 ‘흉년 들다’를, 邪(사)는 어그러지다(歪, 不正)의 뜻을 나타낸다. 手+邑(읍)은 ‘(물 따위를) 뜨다’, 欲(욕)은 ‘~하고자 하다, 바라다’를 뜻한다.
결론적으로, ‘훈민정음’ 앞 4장 분량의 어제훈민정음 편 중, “나랏말싸미…어엿비너겨…편안케 하고져할 따라미니라”의 어제서문에는 세종대왕의 자주정신과 애민정신이 담겨 있다면, 이어지는 어제명칭시가에는 애민정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풍요의 부국(富國) 정신이 담겨 있다. 국민들의 삶이 풍요로운 나라가 곧 부국이다. 이에 비해, 최세진이 지은 한자어인 ‘기역(其役)’, ‘異凝(이응)’ 등의 명칭들에는 혼과 의미가 없다. 훈민정음의 법칙을 무시, 왜곡하고 오직 편리성만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발견하고 그저 세종대왕의 위대한 가르침과 훌륭한 정신에 후손으로서 존경심과 함께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세종 즉위 600주년을 맞아 세종대왕의 훌륭한 정신이 깃든 노래가 부디 방방곡곡 울려 퍼지기를 바라며….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박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