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와이프’서 욕설도 서슴지 않는 억척스러운 주부로

‘미쓰백’에선 거친 피부톤과 쭈그려앉아 담배 피는 파격

변화와 도전은 종종 실패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만큼의 성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배우는 대중에게 한번 각인된 이미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만큼 좀처럼 변신을 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게다가 데뷔 10년이 넘어 자신의 이미지가 굳건히 형성돼 있고 인지도면에서도 알려질대로 알려진 배우가 파격행보를 걷기란 더구나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런 면에서 배우 한지민의 행보는 기존의 틀을 깨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여 반갑다. 올해 그는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와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미쓰백’ 등 두 작품으로 대중과 만났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캐릭터 변신과 연기 모두에서 호평을 받으며 연기자로서 입지를 다지는 30대 배우의 모습을 톡톡히 보여줬다.

‘아는 와이프’ 속 한지민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180도 달라진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했다. 현실 속 두 아이의 엄마 서우진(한지민)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늘 시간과 돈에 쫓겨 사는 이 시대 고달픈 워킹맘이다. 남편이 화장실 사용중에도 아랑곳없이 들어와 볼일을 보고 나가는가 하면 허스키한 목소리로 욕설도 서슴지 않고 어느새 억척스러운 주부가 된 우진의 모습은 이렇다 할 지원 없이 삶을 헤쳐가야 하는 주부의 고단한 삶을 보여줬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일명 ‘아줌마 파마’ 헤어스타일로 등장한 그는 거침없는 연기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반면 과거 속 우진은 청순 발랄한 20대의 모습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다.

‘미쓰백’ 속 변신은 더욱 파격적이다. 아픈 가정사에 이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전과자가 된 백상아(한지민)는 우연히 학대받는 아이를 발견하고 차츰차츰 아이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 한지민은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에게서 버림받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지른 일로 범죄자가 되버린 백상아의 외로움과 내면의 분노, 그리고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를 향한 연민 등 복잡다단한 감정을 몸사리지 않는 연기로 표현해냈다. 거친 피부톤과 쭈그려앉아 담배를 피는 모습, 스스로를 학대하듯 쉴 새 없이 일에 몰두하는 백상아의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 그 인물이 되고자 한 배우의 노력 속에 한 몸이 된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이처럼 한지민은 올해 선굵은 두 작품으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이 변화가 이채로운 것은 기존에 주로 ‘청순’ ‘단아함’ ‘사랑스러움’이라는 단어로 정의되던 자신의 키워드를 전복시켰다는 데 있다. 미혼의 여배우가 현실에 찌든 두 아이의 엄마 역에 도전하고, 전과자로 외로운 삶을 사는 여성 역을 연기하는 것은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 지점이다. 일단 대중이 연기에 설득력을 느낄지부터, 스스로에게도 대중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지기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큰 대목이기도 하다. 한지민은 이 어려운 도전 과제를 자신의 색깔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현명하게 해 낸 것으로 보인다. ‘아는 와이프’속 서우진은 억척스러움 속에도 한지민 특유의 생기과 엉뚱함이 묻어 있고, ‘미쓰백’의 백상아는 어둡지만 뭐든 해 내고 말겠다는 투지가 엿보인다. 이렇듯 자신만의 톤 앤 매너로 역할을 완성해 낸 그는 이전에 비해 연기자로서 한 단계 도약을 이뤄냈다.

여기에 다양한 선행과 기부 활동은 그가 연기자를 넘어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특히 아동학대 문제를 다룬 ‘미쓰백’의 사회적 메시지를 확대하고자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에 나선 점과 작년 대통령 선거에 이어 올해 지방선거까지 투표 프로젝트에 2년 연속 나선 점은 한 배우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성숙해지는 모습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무로에서 입버릇처럼 들리는 얘기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걱정이다. 여배우에게는 뚝심있게 한 영화의 흥행, 작품성 모두를 책임질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고 사실상 그만한 배우들도 부족하다. 연기 열정을 간직한 여배우들을 키워내는 것은 개인 뿐 아니라 더 좋은 작품이 탄생되기 위해 대중이 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올해 활짝 꽃을 피운 한지민의 도전이 더 값지게 여겨지는 이유다.

장서윤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이혜영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