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키운 건 자신들인데, 협력업체가 모두 책임져라(?)

SBI저축은행이 대출사고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제휴사에 떠넘기려 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SBI저축은행이 자사 고객의 대출사고에 대해 제휴점과 책임공방을 벌이다 업무상 부족했던 여러 문제점이 밝혀졌다. SBI저축은행 측은 대출사고가 발생하기 전 대출 실행을 위한 중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스스로 손해를 확대시켰고, 제휴점에 당시 대출사고로 인해 생긴 모든 책임을 무리하게 지우려 했던 정황까지 드러났다.

A씨와 B씨는 지난 2016년 여름 대형 차량을 구입하기 위한 자금을 대출하기 위해 E사를 방문했다.

E사는 통관대리를 주요 업무로 하는 회사로 A씨•B씨와의 대출 상담이 이뤄지기 바로 전달에 SBI저축은행과 사무위탁약정을 체결했다.

E사와 SBI저축은행 사이의 사무위탁약정은 SBI저축은행 측이 취급하는 자동차담보대출 상품 중 중고 차량에 관한 대출업무에 관해 E사가 ‘제휴점’ 자격으로 대출 알선과 고객의 대출상품 가입 전 본인 확인 및 제반 서류 구비 등의 업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E사는 자사 사무실을 방문해 차량 구입 목적의 자금 대출을 희망하던 A씨•B씨에 SBI저축은행의 자동차담보대출 상품을 추천했고, 두 사람 모두 관련 대출신청서를 작성하며 정식으로 대출을 신청했다.

사실 당시 A씨•B씨가 신청한 SBI저축은행의 해당 자동차담보대출 상품은 보통의 대출실행처럼 금융사에서 곧바로 대출신청인에게 대출금을 송금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SBI저축은행이 A씨•B씨의 대출신청에 대한 승인을 결정하면, 제휴사인 E사의 계좌로 두 사람이 신청한 대출금을 송금해야 했다.

이어 E사는 A씨•B씨가 구입하기를 희망하는 차량의 구매대행 업자에게 이 대출금을 송금한 뒤, 다시 해당 중개업자가 차량 보관소에 이 돈을 지급하면 차량을 두 사람에게 양도하는 방식이었다.

동시에 A씨•B씨는 해당 차량에 대한 양도 절차가 완료된 뒤 SBI저축은행 측에 대출금에 관해 차량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할 예정이었다.

A씨•B씨의 E사를 통한 SBI저축은행의 자동차담보대출 상품의 대출신청 그리고 SBI저축은행 측의 대출 승인까지 순조롭게 이뤄졌지만, 문제는 다음 단계에서 발생했다.

앞서 언급한 차량 양도까지의 절차를 위해 SBI저축은행은 E사에 A씨•B씨가 신청한 대출금을 송금했고, 다시 E사는 차량 구매대행 업자에게 이 돈을 송금했다.

그런데 이 업자는 해당 대출금을 차량 보관소에 지급하지 않았고, 이를 횡령해 개인적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여럿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A씨•B씨는 대출 실행에 따른 차량을 양도받지도 못한 채 억대의 빚만을 지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또 SBI저축은행 입장에서는 대출금을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량 구매대행 업자의 범죄행위로 이를 제대로 되돌려 받지 못할 가능성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A씨•B씨가 양도받기로 할 차량에 대한 근저당권조차도 설정할 수 없었다.

결국 A씨•B씨는 해당 차량 구매대행 업자를 수사기관에 고소했는데, SBI저축은행은 E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당시 SBI저축은행은 이번 사건이 E사가 사무위탁약정을 위반해 발생했다고 지적하며 A씨•B씨에게 실행한 대출금 전부를 E사가 상환하거나 두 사람이 구매하려 했던 차량에 대한 근저당권을 설정할 것을 요구했다.

E사 측은 SBI저축은행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A씨•B씨의 대출업무 과정에 SBI저축은행 측도 여러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사건의 모든 책임을 자사가 지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무엇보다 SBI저축은행 측이 요구한 차량의 근저당권 설정의 경우, A씨•B씨가 실제로 차량을 양도받지도 못해 소유자 자격도 아니었고, 원소유자들이 근저당권 설정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SBI저축은행 측이 자사에 무리한 요구를 강요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SBI저축은행과 E사의 의견 마찰은 법적분쟁으로 이어졌고, 항소심까지 가는 이 사건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지난 11일 사실상 “두 회사 모두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SBI저축은행의 주장대로 E사가 사무위탁약정에 따른 채무를 일부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E사가 A씨•B씨에 SBI저축은행의 자동차담보대출 상품을 추천하면서 대출신청서에 E사 대표이사의 직인과 날인이 있었고, 대출설명서에도 E사에 대한 정보가 기재돼 있었다.

무엇보다 A씨•B씨는 수사기관에서 해당 대출상담을 E사의 사무실에서 받았고 E사의 직원으로부터 대출계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E사는 이 사건에 관해 SBI저축은행과의 사무위탁약정에 따른 계약상 채무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A씨•B씨에 대한 대출실행과 함께 차량 근저당권 설정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지 않은 점이 이번 사건에서 E사 측의 귀책이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SBI저축은행 측에게도 이번 사건을 크게 키운 책임이 있었다. 법원은 A씨•B씨가 신청한 자동차담보대출 계약은 대출계약의 진정성이나 대출적격 여부에 관해 원칙적으로 금융기관이자 계약의 당사자인 SBI저축은행에게 심사의무 및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대출 알선 및 대출 신청인 본인 확인 등의 업무를 수행한 E사는 SBI저축은행의 업무를 보조하는 제휴점일 뿐, 두 회사 간 사무위탁약정만으로 이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E사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법원은 “대출 사고와 관련된 모든 손해나 위험부담을 대출중개인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금융기관인 계약당사자가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것은 형평에 반한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법원은 SBI저축은행 측이 대출 실행 이전 근저당권 설정을 위한 제반 서류의 구비 등 채권확보를 위한 조치가 충분히 이뤄졌는지 여부를 확인도 못한 채, 스스로 손해를 확대시켰다고 지적했다.

1년 반 넘게 이어진 SBI저축은행과 E사 간 법적분쟁을 통해 결국 두 회사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자사 측의 책임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E사는 설립된 지 6개월이 되지 않았고 SBI저축은행과 사무위탁약정을 체결한 것도 바로 직전 상황으로, SBI저축은행 측의 제휴점에 대한 교육 그리고 두 회사 간의 업무를 위한 적극적인 소통이 부족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SBI저축은행 측의 책임공방에 대해 법원은 양사의 잘못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A씨•B씨의 피해 회복을 위해 두 회사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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