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청라면의 은행마을은 국내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중 한 곳이다. 3000여 그루의 은행나무와 소담스런 고택이 어우러져 진한 가을 향기를 뿜어낸다.

은행마을을 거닐다 보면 시골 향취가 완연하게 전해진다. 장현리 마을 주변으로는 오솔길 따라 은행마을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길목에는 닭과 오리들이 뛰놀고, 고추를 말리는 한가로운 풍경들이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흙 담 너머로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추억의 장면이 길손을 반긴다.

은행마을이 운치를 더하는 것은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고택이다. 마을의 상징인 신경섭가옥은 팔작지붕의 사랑채 중간에 대청마루를 두고 효자문을 세운 옛 부잣집의 형세다. 후에 양조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목재의 결, 단청 등은 현재까지 잘 보존돼 있다. 이른 아침, 고택 마당에 노란 은행잎들이 수북이 쌓이는 시간이 은행마을이 가장 아름다운 추색으로 물드는 때다.

수백년 세월의 아름드리 은행나무

조선 후기 한식가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신경섭가옥 주변으로는 100년 이상된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울창한 모습을 자랑한다. 가옥 앞의 수은행나무는 수령이 500년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랑채 대청 마루앞 마당에 가지를 늘어뜨린 은행나무들은 돌담 너머 은행나무와 눈을 맞추며 고요한 황금빛 터널을 만들어낸다. 터널 밑으로는 은행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마을에는 매년 100톤 가량의 은행이 수확되는데 이는 전국 수확량의 절반이 넘는 양이다.

은행마을에는 이곳에 은행나무가 번성하게 된 전설이 담겨 있어 잔잔한 흥미를 더한다. 장현리 뒷산인 오서산은 까마귀들이 많이 살고 있어 ‘까마귀 산’으로 불리던 산이다. 산 아래 구렁이가 천년 기도를 올린 뒤 황룡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 광경을 지켜 본 까마귀들이 은행 알을 여의주라 여기고 산 아래 마을로 물고와 정성껏 키워 그때부터 장현마을에 은행나무가 서식하게 됐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가을 향 피어나는 오서산 억새

은행마을 주변으로는 황금빛 세상을 함께 연출할 드넓은 논이 펼쳐져 있고, 마을 가운데로는 시냇물이 흐른다. 냇가에는 갈대가 피며 한가로운 가을 농촌마을의 분위기를 돋운다. 우연히 만난 골목길에 접어들며 가을과 함께 물들어가는 시골 정취를 음미하는게 은행마을 여행의 매력이다. 가을 하늘을 나는 고추 잠자리, 외양간에서 엄마 소의 젖을 빠는 살진 송아지의 모습 속에서도 은행마을의 가을은 무르익는다.

은행마을을 병풍처럼 에워싼 오서산은 만추의 계절이면 억새가 장관을 이뤄 가을 산행객들에게 인기 높은 산이다. 오서산의 은빛 억새와 은행마을의 노란 단풍은 가을 여행지로는 찰떡 궁합을 만들어낸다. 오서산 초입에는 오서산 자연휴양림이 들어서 있어 하룻밤 묵으며 추색을 음미할 수 있다. 1.5km의 휴양림 탐방로만 거닐어도 가을 숲의 향취는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휴양림길은 오서산 등산로와 연결되는데 월정사 등 자그마한 암자들이 있어 산행의 아기자기함을 채운다. 정상에 오르면 머리를 풀어헤친 억새숲 능선을 걸으며 서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 고속도 대천IC에서 빠져나와 36번 국도, 청라면소재지를 경유한다. 오서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가는길에 장현리 은행마을이 자리해 있다.

▲음식, 숙소=신비의 바닷길로 알려진 보령 무창포 해수욕장 일대는 가을이면 전어가 제철이다. 전어회 한 점으로 가을 입맛을 돋울 수 있다. 숙소는 명대계곡을 끼고 있는 오서산자연휴양림이 묵을 만하다.

▲기타정보=보령의 유적을 통해 가을 상념을 만끽하려면 성주사지로 향한다. 성주산 입구에 위치한 성주사지는 백제, 통일시라, 고려, 조선의 유물이 골고루 출토된 오랜 역사를 지닌 절터다. 국보, 보물들이 듬성듬성 들어선 황량한 절터에는 3기의 석탑들이 나란히 도열해 융성했던 과거와 건축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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