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났다. 200만 관객을 넘어서며 극장가에서 폭풍 흥행을 기록 중인 영화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 제작 필름몬스터) 개봉 직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염정아는 ‘완벽한 배우’이면서 이야기를 나눌수록 가슴이 따뜻해지게 만드는 ‘좋은 사람’이었다. 1991년 청춘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여주인공으로 데뷔해 이제 무려 데뷔 28년차. 핫한 청춘스타에서 시작해 모두가 믿고 보는 배우로 변모한 후배들이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진정한 선배였다.

‘완벽한 타인’은 40년 우정을 자랑하는 네 친구들이 뭉친 커플 모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휴대전화로 오는 전화, 문자, 카톡을 공개해야 하는 게임이 펼쳐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블랙코미디. 염정아는 가부장적 남편 태수(유해진)에 기죽어 사는 전업주부 수현 역을 열연해 호평을 받고 있다. ‘완벽한 타인’과 방송을 앞둔 드라마 ‘Sky 캐슬’로 다시 주목받는 배우 염정가 현재 사회에서 맡고 있는 직함들을 살펴봤다.

# 믿을 만한 동료=이제 어느 현장을 가도 최고참 선배가 될 연차. ‘완벽한 타인’은 오랜만에 ‘동료’라고 부를 만한 선후배 배우들과 호흡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남편 역을 맡은 유해진부터 동갑내기 김지수, 또한 후배 조진웅, 이서진, 윤경호, 송하윤까지 ‘연기고수’들과 만남은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켰다. 최고의 선수들이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조율한 ‘명장’ 이재규 감독이 연출을 맡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정말 분위기가 좋았어요. 의지할 만한 동료들이 현장에 많으니 정말 든든했어요. 내가 놓친 부분이 있더라도 다른 분들이 메워줄 거라는 생각을 했죠. 서로 좀더 욕심을 낼 만도 한데 모두 고수다 보니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에 집중하는 게 자신을 더 빛나게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시너지 효과란 게 뭔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어요. 유해진 오빠와 예전에 작품을 같이 했는데 남편 역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김지수는 동갑인데 이번에 처음 만났어요. 어렸을 때 만났으면 신경전이 있었겠지만 나이 들어 만나니 첫 만남부터 편했어요. 서로 성격이 털털해 잘 맞았어요. 이재규 감독님은 최고였어요. 여러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조율하는데 놀랐어요. 영화를 보고 저도 감탄했어요. 모든 게 머리 속에 계산돼 있으셨더라고요.”

# 배우=결혼 후 육아 때문에 1~2년에 한 작품 정도를 선보였던 염정아는 지난해 말 ‘완벽한 타인’을 시작으로 쉬지 않고 ‘열일’ 중이다. 방송을 앞둔 드라마 ‘‘Sky 캐슬’뿐만 아니라 찍어놓은 영화도 ‘뺑반’ ‘미성년’ 두 편이다. 이제 아이들이 초등학교 3,4학년이 됐기 때문에 여유가 생긴 것일까?

“그동안 육아보다 할 만한 역할이 없어 일을 많이 못했어요.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좋은 작품들이 연달아 들어와 욕심을 냈어요. 운 좋게도 촬영 시기가 겹치지 않고 이 작품이 끝날 때가 되면 저 작품이 들어가 다 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역할의 크기는 예전부터 신경 쓰지 않았어요. 도전해 볼만한 캐릭터냐가 관건이었죠. 모두 매력적이었어요. ‘완벽한 타인’ 수현이 요즘 시대에 맞지 않게 순종적이라는 지적은 알고 있어요. 제 입장에선 수현을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닌 그냥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랬듯 자기 하나 희생하고 남편에게 맞춰주면 가족의 평화가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고 봐요. 결혼이란 건 서로 맞춰주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저도 남편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남편도 저에게 맞춰주려 노력해요.”

# 워킹맘=일과 육아의 합리적인 병행은 염정아에게도 영원한 숙제. 아무리 바빠도 육아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이제는 좀 내려놓아야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 간식부터 학원 픽업까지 직접 다 제 손으로 챙겼어요. 꼭 그렇게 다 해야지 되는 건지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약간씩 내려놓으니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더라고요. 그러니 제가 좀 편해지더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걸 배우는 과정이에요. 아이들 공부는 많이 신경 쓰려고 노력해요. 그러나 그게 부모 뜻대로 되는 건 아니고 순리에 맡겨야죠. ‘‘Sky 캐슬’ 속 엄마들처럼은 절대 못해요. 아무나 그렇게 할 순 없는 것 같아요.(웃음) 헤어스타일은 ‘뺑반’ 때문에 짧게 잘랐는데 마음에 들어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처음에는 ‘엄마 같지 않다’ ‘못생겨졌다’고 싫어했는데 이젠 익숙해진 듯해요.”

# 선배=염정아에게 지난해 세상을 떠난 선배 연기자 고 김영애는 진정한 멘토였다.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하는 김영애를 보면서 연기자의 자세부터 삶을 살아가는 지혜까지 많은 걸 배웠다. 최근 작품들에서 대세 후배들과 잇달아 호흡을 맞춘 염정아는 과연 평소 어떤 선배일까?

“가만히 놔두는 선배죠. 내가 나서서 누구에게 조언을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본인이 원하면 제 의견을 말해주죠.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이야기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젊은 시절에는 선배들이 해주시는 말씀을 무조건 들어야 했어요. 돌아보면 피가 살이 되는 말씀이었죠. 그러나 요즘 시대는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또 요즘 친구들은 다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조언해줄 필요가 없더라고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 제공=아티스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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