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지분 인수 ‘KCGI’ 시선 집중
지배구조 취약 기업들 ‘타깃’ 가능성

최근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 9%를 매입하면서 경영 참여 의지를 드러낸 토종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가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KCGI는 성격상 이른바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펀드’로 분류된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한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사모펀드 KCGI는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 9%를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경영 참여 의도를 밝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한진그룹 본사 사옥. 연합

지난 11월 14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 주식의 대량 보유 상황을 알리는 보고서가 제출됐다. 보고자는 이름도 낯선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였다.

그레이스홀딩스는 한진칼 주식 532만2666주를 확보해 지분율 9%의 2대 주주가 됐음을 선언했다. 그레이스홀딩스는 투자목적회사로 돼 있지만, 실제 그레이스홀딩스의 지분 100%를 가진 최대주주는 ‘케이씨지아이(KCGI) 제1호 사모투자 합자회사(주식회사 케이씨지아이)’로 나타났다. KCGI는 보고서에서 자신의 성격을 ‘경영참여형 사모집합투자기구(사모펀드)’라고 적시했다. 다시 말해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는 사모펀드라는 뜻이다.

KCGI는 LK투자파트너스 대표를 역임한 강성부 대표가 이끌고 있다. 강 대표는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로 알려져 있으며, KCGI는 투자 대상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자전략 수립의 포인트로 삼고 있다.

장하성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의 주도로 지난 2006년 출시됐던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는 기업지배구조를 투자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토종 펀드의 ‘원조’ 격이었다. 이른바 ‘장하성 펀드’로 불렸던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는 당시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장하성 펀드와 속성이 유사한 ‘강성부 펀드’가 이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KCGI가 한진칼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KCGI 측은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 감시와 견제 역할에 충실할 계획”이라며 “한진칼의 기업가치가 저평가돼 있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증대할 기회가 많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영권 확보에는 관심이 없다는 공식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증권가와 재계에서는 KCGI가 이사 추천이나 선임을 통해 한진칼의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수해 주요 주주가 된 후에 적극적 경영 관여를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신이 보유한 주식가치를 높이는 투자방식을 의미한다.

적극적인 경영참여로 기업가치 끌어올려

아울러 주주행동주의를 내세우는 투자자를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라고 일컫는다. 행동주의 투자를 위해 주식을 대량 매입하려면 자금력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 헤지펀드, 자산운용사 등 투자자금이 풍부한 기관투자자들 중에서 행동주의 투자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기업가치 분석과 미래 실적 전망을 토대로 투자활동에 나선다. 하지만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기업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적극적 투자방식을 추구한다.

행동주의 투자철학은 미국 헤지펀드인 ‘트라이언펀드 매니지먼트’의 최고경영자이자 유명한 행동주의 투자자인 넬슨 펠츠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대신에 주식을 산 뒤 그 기업이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무언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에 관여할 때 주로 지배구조, 자본구조, 사업전략의 개선과 변화를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이사 후보 추천이나 경영진 교체 요구(지배구조 측면), 배당 정책 변경과 자사주 매입 요구(자본구조 측면), 비(非)핵심 사업 매각이나 인수합병 추진 요구(사업전략 측면) 등이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투자 대상을 선택하기 전에 면밀한 조사와 분석을 거친다. 그들의 선택 기준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적극적 경영 참여를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느냐 여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종업계의 경쟁사들과 비교할 때 두드러지게 성과가 낮은 기업들이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종석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 사례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을 선택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부분은 해당 기업이 문제점이나 이슈를 해결했을 경우 기업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향상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행동주의 투자가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동주의 투자자 중에는 주로 미국계가 많다. 앞서 말한 트라이언펀드 매니지먼트를 비롯해 엘리엇 매니지먼트, 아이칸 엔터프라이즈, 자나 파트너스, 밸류액트 캐피털 매니지먼트, 퍼싱스퀘어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이 그런 사례다.

특히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최근 수 년 사이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개입해 적극적 공세를 펼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진 글로벌 행동주의 투자자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지난 11월 중순 현대차그룹에 보낸 서신을 통해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들에게 10조원이 넘는 초과자본금을 환원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행동주의 투자를 표방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올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 등에 적극 개입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연합

행동주의 투자 확대는 세계적 트렌드

행동주의 투자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행동주의 투자 사례는 약 280회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0년 대비 2.5배 이상 증가한 수치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행동주의 투자자의 타깃도 점점 덩치 큰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과거 북미, 유럽에 쏠렸던 행동주의 투자 활동이 최근 들어 아시아 지역에서도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행동주의 투자자가 미국 이외 지역에서 투자 대상 기업에게 발의한 안건 중 31%(106건)가 아시아 지역의 몫이었다. 지난 2011년의 12%(10건)와 비교하면 그 비율이 약 3배 증가한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행동주의 투자는 주요국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7년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안건 발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아시아 국가는 일본이었는데, 아시아 전체의 32%를 차지했다. 이밖에 홍콩, 싱가포르, 중국, 인도, 한국 등이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안건 발의 비중이 높은 국가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원 측은 “최근 아시아에서 역내, 역외 기관투자자를 불문하고 각종 안건 발의 및 의결권 대결을 통해 경영체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 주주 이익 극대화를 도모하는 등 행동주의 투자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상장기업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개선 요구 등이 강화되고 있는 데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과거 행동주의 투자자는 ‘기업 사냥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 적이 있었다. 가령 실적이 나쁘거나 규모가 작은 기업, 오너의 경영권이 취약한 기업 등의 주식을 대량 매입해 적대적 인수합병을 한 다음에 이사회를 장악하고 핵심자산 매각, 구조조정 등을 통해 단기 차익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는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행동주의 투자자들도 변화했다. 단기 차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통해 궁극적인 수익 증대를 꾀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행동주의 투자 전략 중에서 경영진 교체 등 지배구조 개선이나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사례는 증가세가 완만해진 반면 사업 구조조정, 인수합병, 미래 전략 등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와 관련된 제안을 하는 사례가 훨씬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관점이 단기 차익 확보 전략에서 장기 수익 증대 전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투자 대상 기업 경영진과 ‘표(의결권) 대결’까지 가는 사례보다 경영진과 상호 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안건을 해결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전략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행동주의 투자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국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할 만큼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의 세력이 큰 데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행동주의 가속화 가능성

더욱이 국내에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도입을 추진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행동주의 투자 확대의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의 주요 행동지침 중에 기관투자자는 투자 대상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주주 관여 활동을 할 것을 규정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가 투자 대상 기업의 주요 주주로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경영진과 소통 채널을 상시 운영하는 등의 주주 관여 활동은 실질적인 면에서 주주행동주의와 공통된 부분이 많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진칼 2대 주주로 올라선 KCGI와 유사한 ‘토종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점차 늘어날 공산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이른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투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도 행동주의 투자 확대에 상당한 힘을 보탤 전망이다. ESG 투자는 환경경영, 사회책임경영, 지배구조 부문에서 기업의 성과를 평가해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례로 ESG 점수가 낮은 기업의 지분을 대량 매입해 경영진에 ESG 개선을 촉구함으로써 중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를 꾀하는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점차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추세여서 행동주의 투자와 어떻게 연계될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김윤현 기자 unyon21@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