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전혀 안면이 없어도 무의식적으로 “잘 지내니”라고 인사가 나올 것만 같았다. 영화 ‘도어락’(감독 이권, 제작 ㈜영화사 피어나)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공효진은 범접하기 힘든 스타보다 동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친근한 옆집 언니, 누나, 여동생의 느낌이었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자신이 연기했던 서민적이면서 정겨운 여주인공이 현실에 외출 나온 느낌이었다. 영화가 공개된 후 쏟아지는 “웬만한 공포영화보다 무섭다”는 호평에 즐거워하기보다 “후유증을 남겨드리면 어떻게 하나”라며 걱정하는 모습이 너스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져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했다.

공효진은 영화 ‘도어락’에서 혼자 사는 원룸에 도어락이 열려 있고 낯선 사람의 침입시도까지 있은 후 살인사건까지 일어나는 상상 초월한 지옥체험을 하게 되는 직장인 경민 역할을 맡아 혼신의 열연을 펼친다. ‘친근함의 대명사’ 공효진이 연기하기에 도시에서 혼자 사는 여성들의 심저에 숨어 있는 현실공포가 더욱 리얼하면서 오싹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씩씩하고 강한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한 공효진이 상업 스릴러 영화에서 피해자 역할을 맡아 리액션 위주의 연기를 펼친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공효진은 덤덤히 ‘도어락’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권 감독님과의 친분이 큰 역할을 했어요. 제 데뷔작 ‘여고괴담2’ 때 조감독이셨거든요. 또한 ‘미씽 사라진 여자’의 이언희 감독님의 남편이세요. 제가 배우로서 시작할 때부터 만난 사이였는데 언젠가는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어요. 또한 내년이면 배우 데뷔 20주년인데 제 자신을 한번 힘들게 해보고 싶었어요.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졌는지 연기하는 게 전혀 힘들지 않고 편해지더라고요. 상업 스릴러 영화에서 오롯이 혼자서 영화를 한번 이끌며 저 자신을 괴롭혀 보고 싶었어요. 아무리 몸과 마음이 상처를 입더라도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제 무덤을 판 거였죠.(웃음) 촬영 내내 감독님을 정말 많이 괴롭혔어요. 아주 오래 된 사이이고 친하다보니 제 의견을 직설적으로 막 이야기했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사이가 나빴다고 오해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공효진은 영화 속에서 연기한 경민은 다소 소심하면서 여린 캐릭터.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범죄의 피해자가 된 그는 주위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공효진은 특유의 현실감 느껴지는 생활 연기로 공포를 극대화한다. 영화를 촬영한 후 후유증에 시달렸을 법하다.

“전 원래 촬영장에서 컷 소리만 나면 금방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스타일이에요. 쫓기는 장면을 촬영할 때 숨을 헉헉 쉬며 과호흡으로 어질어질하다가도 컷 소리만 나면 금방 ‘배고파요. 밥 언제 먹어요?’라고 물을 정도죠.(웃음) 어떤 배우들은 촬영이 모두 끝나도 역할의 여운에 빠져 나오지 못하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금방 잊어먹어요. ‘도어락’을 촬영한 후 후유증이라면 침대 밑에 사람이 숨어있지 못하게 옷으로 가뜩 채워놓은 정도예요. 전 원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과거에는 귀신은 좀 무서워했는데 드라마 ‘주군의 태양’을 찍으면서 그 공포를 덜어냈어요. 어차피 다 가짜라는 걸 깨달은 거죠. 만약 도둑이 든다고 해도 실시간 카메라로 찍으면서 ‘무슨 일이시냐고’ 물을 것 같아요.(웃음)”

공효진은 평소 연예계에서 후배들이 잘 따르는 선배이면서 선배들이 믿고 의지하는 후배로 알려져 있다. ‘도어락’에서 경민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후배 효주를 연기한 김예원과도 한 번 전화를 하면 3시간반을 스트레이트로 수다를 떨 만큼 절친한 사이. 그러기에 영화 속 경민과 효주의 진한 워맨스는 스크린에 훈풍을 불어오게 한다.

“‘질투의 화신’ 때 처음 만났는데 원래 제 팬인데 나를 괴롭히는 역할이어서 괴롭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네가 맡은 역할은 나쁜 게 아니라 욕심 많고 샘 많은 친구일 뿐이니 부담 느끼지 말고 연기하라고 이야기했죠. 감독님이 효주 역할에 예원이가 어떠냐고 물어서 정말 좋다고 했어요. 열렬히 환영해줬죠. 예원이가 촬영장에 오는 날은 왠지 기분이 들뜨더라고요. 정말 어른스럽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친구예요.”

내년이면 배우 데뷔 20주년을 맞는 공효진은 한 달 후면 나이의 앞 숫자가 바뀐다. 올해 초부터 ‘도어락’, ‘뺑반’을 잇달아 찍고 ‘가장 보통의 연애’ 촬영을 준비하며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심심치 않게 들렸던 열애설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나이와 결혼에 대한 초조함은 없는 것일까?

“앞 숫자가 바뀌는데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죠.(웃음)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데 친구들 만나면 자꾸 한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몇 년 전 백지연 아나운서를 우연히 모임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나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니 명쾌한 답을 주셨어요. ‘현재 나이가 돼 보니 서른일곱 여덟 때 늦었다고 포기했던 일들이 그리 후회스러울 수 없다. 아직 젊고 할게 많다고 말씀하시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제 나이를 폄훼하지 않으려고요. 결혼은 엄마나 친구들 모두 꼭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부담 느끼지 말라고 위로하는 말인 건 알아요.(웃음) 아직은 이 자유로움을 당분간 즐기고 싶어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 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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